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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May 25. 2022

에어컨을 켜면 '우리는' 시원해질까?


며칠 전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사무실에 들어와서 일을 하려고 하는데, 시스템 난방이 켜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5월인데 아직까지 추위를 타는 사람이 있구나."


그래서 난방을 그냥 내버려 두고 한동안 다시 일에 매진했다. 그런데 천장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온도가 뭔가 이상하게 시원했다. 다시 한번 스위치 패널을 가까이서 본다. 난방이 아니라, 냉방이다. 


이럴 수가, 5월에 에어컨이라니.






나는 태생적으로 더위를 잘 견디는 체질이다. 타고난 것도 있지만, 몸에 지방량이 그리 많지 않은 이유도 있다. 바깥을 둘러싸는 보온재(?)가 다른 사람에 비해 얇기 때문에 열이 잘 빠져나간다. 그래서 일 년 52주 동안, 내 방의 에어컨 전원 코드가 꽂혀있는 기간은 3주가 채 되지 않는다. 사실 에어컨 없이 살아도 상관은 없다. 기껏해야 한 여름, 몇 주면 끝이다. (1994년, 2018년 이럴 때 말고)


사람들과 같이 쓰는 공간에 에어컨을 생각해보면, 물론 한여름 7, 8월은 당연히 틀 수 있는 것이니 별 고민이 없지만, 5월이나 10월에는 에어컨 바람에 약간의 거부감이 있다. 25도 쾌적한 온도에, 미세먼지도 없겠다, 창문 열면 시원한 바람 들어오는데 굳이?


하지만 세상엔 다양한 체질의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당연히 에어컨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가장 안 맞는 사람은, 일 년 내내 창문을 닫고 지내는 사람. 오직 난방과 냉방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다. 겨울엔 실내에서 반팔을 입고, 여름엔 실내에서 긴팔을 입는 아이러니. 이게 무슨 낭비...




쾌적함의 기준이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맞다, 틀리다를 논할 주제는 아니지만, 이쯤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에어컨을 틀면 '우리는' 시원해질까? '나' 말고 '우리'.


에어컨의 원리는 냉장고와 같다. 열을 특정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작업. 시원해지고 싶은 공간의 크기만큼 열을 배출하는 외부 공간은 더워진다. 냉장고는 크기가 작아서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에어컨이 감당하는 부피는 냉장고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다. 끊임없이 실내로 밀고 들어오는 열을 전기에너지를 사용해 끊임없이 밖으로 이동시킨다. 그 넓은 공간에 에어컨을 가동하는데 필요한 전기에너지 또한 열로 방출되며 그것은 고스란히 실외로 향한다.


어느 한 건물에서 에어컨을 켠다. 그러면 그 건물 외부는 건물에서 빼낸 열에 덧붙여 에어컨의 발열량만큼 더워진다. 허허, 나만 더울 수 없지, 그러면 억울하잖아? 그래서 다른 건물들도 연쇄적으로 에어컨을 켠다. 서로서로 열을 몰아내려고 폭탄 돌리기 경쟁하듯 에어컨을 켜면 외부는 점점 지옥이 된다. 열역학 제1법칙, 세상엔 절대로 공짜가 없다. 그리고 열역학 제2법칙, 인위적으로 '냉기'를 만들면 반드시 그 이상의 '열기'가 발생한다. 그래서 에어컨을 켜면 킬수록 '우리는' 더 더워진다.




에어컨이 늘어난 만큼 지구는 점점 더 더워지고 있다. 그렇게 열이 쌓여가고, 앞으로 일 년 중 가장 더운 날은 점점 더 더워질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쾌적함을 빌려온 것, '대출'한 것이다. 이자는 매년마다 따따블로 쌓이고 있다. 피곤하다고 에너지 드링크를 많이 털어 넣으면 당장은 정신이 들겠지만, 다음날과 다다음날이 마법처럼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쾌적함을 '가불'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대해 각국 정상들이 파리에서 모여서 무슨 대화를 주고받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30도 미만의 저온에서의 과도한 에어컨 사용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을 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쩌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는 이미 많이 갈라져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이라도 멈춘다면 다시 살이 붙을 희망이 생기게 된다.


그러지 못하면, 몇 년 몇십 년 뒤에는 '쾌적한 온도' 자체가 황금이 될 수도 있다.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없다면, 남아있는 황금알은 부르는 게 값이겠지. 소수의 특권층만 쾌적한 환경을 누리고, 나머지 99% 는 지옥불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끔찍한 미래는 결코 허상이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이 경고하고 있다.


일 년 중에 몇 개월 안 되는 창문을 열 수 있는 날,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들이 마음껏 창문을 열고 소중한 온도를 느껴봤으면 좋겠다. 지금 있는 게 당연하다고, 앞으로도 당연히 있는 것은 아니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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