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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모 구거투스 Oct 19. 2016

좋아하는 일을 하며 배려를 배울 수 있는 곳

 영일고에서 내가 배운 것 #03 

글, 김성은(35회. 2016년 졸업)



좋아하는 일을 하는 즐거움


영일고에서 나는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공부’가 가능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분야는 교과 과목에 한정되지 않는다. 입시 위주인 우리나라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깊이 공부하는 것은 일종의 사치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영일고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것이 사치가 아닌 가치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영일고의 시간표에서 금요일은 네 시간이 비어있다. 그 시간에는, 매달 각 주마다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 등 단순한 교과목 수업이 아닌 여러 활동을 한다. 이렇듯 영일고는 동아리 활동시간이 아예 시간표에 마련되어 있고 동아리 수 또한 엄청나다. 게다가 이것은 정규 동아리의 경우고, 토요일에는 사설 동아리 활동도 가능하기에 자신의 관심사와 능력에 따라 여러 개의 동아리에 들 수 있다. 비단 동아리뿐만 아니라 교내 대회, 봉사활동, 예절교육, 1인 1악기 등 활동이 다양하기 때문에 학교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관심분야나 취미가 생길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오고 싶었던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나의 경우, 정규 동아리로 독서토론동아리와 사설 동아리로 경제동아리 활동을 하였다. 1학년 때 독서토론부(이하 독토부)에서 처음으로 개최한 '독서 프레젠테이션대회‘에 참여한 이후로 나는 프레젠테이션이나 강연 등 새로운 관심분야가 생겼다. 그 후 나는 좀 더 나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콘텐츠 구성, 효과적인 발표자료 사용법, 제스처 등을 찾아서 공부하고 익혔다. 운이 좋게, 영일고는 프레젠테이션 중심의 수업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매번 프레젠테이션 과제가 있을 때마다 신이 나서 정성을 들여 과제를 수행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직접 찾은 방법들을 배우고 익히며 나의 프레젠테이션 실력을 향상하였다. 프레젠테이션에 푹 빠져서 약 2년 동안 파워포인트를 사용하는 일이라면 빠지지 않고 나서고 파워포인트를 사용한 과제를 수행할 때는 굉장히 즐거웠다. 그렇게 만든 발표들이 졸업할 때 세어보니 약 50개 정도였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보면서 돌아보니 ‘내가 어떻게 저렇게 했을까?’ 정도로 나도 몰랐던 내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는 나에게도 끈기와 열정이 있다는 것. 금방 싫증 내는 나로서 2년간 프레젠테이션을 즐겨한 것에 놀랐다. 둘째는 나도 나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 나는 늘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면서 포기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영어로 된 프레젠테이션도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고3이지만 난생처음 해보는 영어 스피치 대회도 참가했다. 셋째, 이런 경험들이 나도 모르게 나를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 프레젠테이션 실력이나 말하기는 물론 늘었다.


더 신기한 것은 나의 내면에 여러 습관들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무언가를 할 때 드는 생각은 성적을 따기 위해 애쓸 때 드는 생각과는 달랐다, 좋은 성적을 받으려 애쓸 때는 '높은 성적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할 때는 '내 일을 훌륭하게 해내고 싶은 바람'이 들었다. 오로지 일 자체에 대한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기에 결과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또는 해야 하는 일들을 하면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알려줬다. 게다가 고등학교 때 프레젠테이션 과제를 정성스레 했던 습관이 대학교에 와서 나타났다. 프레젠테이션 과제는 물론 글쓰기조차도 내가 만족할 만큼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애쓰게 되었다. 나는 프레젠테이션이었지만 다른 누군가는 1인 1악기를 하며 어떤 악기 연주에, 다른 누군가는 토론에 새로운 흥미를 갖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주입식 공부를 주로 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면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나의 관심은 입시 뒤로 밀려났을 것이다. 내가 취미활동이 주는 시너지 효과가 이렇게 많이 있는지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나는 영일고를 통해 내가 가진 작은 취미가 가치 있는 것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그 취미와 더불어 나도 성장할 수 있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홍콩 타임스퀘어 앞 영화 조형물 앞에서.


배려를 아는 사람이 되는 기쁨


내가 가장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영일고등학교에서는 여러 사람과 함께 생활할 때, 나와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고 동시에 나를 잘 드러낼 수 있는 법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이 학교에 와서 놀랐던 점은 전반적인 분위기나 친구들의 성격이 긍정적이었다. 내가 나의 의견을 말하면 다들 ‘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라는 식으로 잘 들어주었다. 소심했던 나마저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신 있게 내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영일고의 수업방식은 대부분이 학생 중심이다. 따라서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법, 다른 사람의 의견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뜻을 표출하는 법, 수업에 조금 뒤처지는 친구를 도와주는 법들을 3년의 시간과 경험을 통해 저절로 익히게 된다. 저러한 대화 태도들이 갖춰지지 않을 때는 갈등이 발생하고 문제 해결에도 어려워지기에 적어도 그런 방법들을 익히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나는 수업시간에 빈번한 말하기로 인해 대화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해야 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말을 해야 친구들이 내 말에 공감을 하고, 활동에 참여를 하게 돕고 또 기분 상하지 않게 반대의견을 내야 하는지 등 말하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좀 더 나은 방식으로 내 말하기 법을 고쳤다. 또한 나는 남의 말에 귀를 덜 기울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친구들의 말을 잘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소통에서 가장 기본적인 대화 태도를 익힐 수 있었다.


영일고에는 천사라고 불리는 도움반 친구들이 있다. 도움반 친구들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그 친구들과 함께 수업이나 체육대회 등 여러 활동을 했다. 도움반 친구들과 함께 생활을 하며 나는 소통에는 말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것도 있음을 배웠다. 3학년 때 우리 반엔 도움반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지적장애가 있기에 말이나 행동이 초등학생 정도였지만, 기쁜 일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면 늘 복도 끝에서부터 반으로 달려와서 우리에게 버벅거리며 말을 했다. 어설픈 말을 함에도 우리는 그 친구의 말을 들으려 애쓰고 그 말에 반응해주었다. 말은 어설프지만 그 도움반 친구가 우리를 그만큼 좋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가장 인상 깊은 기억은 그 친구를 중심으로 다 같이 ‘무조건’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일이다. 어설픈 것 같으면서도 맛깔나게 부르는 그 친구의 노래에 우리 반 전체는 손뼉 치면서 노래를 함께 불렀다. 그때 우리의 기분이나 생각에 대한 어떤 말도 없었지만 우리 모두는 무언가 따뜻해지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런 것이 말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소통임을 배웠다.


친구 대학교 축제에 놀러가서.


먹이를 주는 게 아닌,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학교


내가 생각하는 영일고의 장점은 ‘성적 받기가 쉽다’와 같은 것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영일고등학교는 먹이만 물어다 주는 학교가 아니라 먹이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학교다. 선생님들께서는 지속적으로 수업방식을 연구하고 학생중심의 수업방식과 다양한 소양을 길러주는 활동들 속에서 학생들 각자는 스스로 방식을 터득하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받아낸다. 그렇기에 대학에 와서도 그때 터득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남들은 입시를 위한 능력만을 얻을 시간에 영일고 학생들은 배려와 나눔, 협력과 같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태도를 기르고 자신의 능력을 향상할 방법을 만들어낸다.



글, 김성은(35회. 2016년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부에 재학 중입니다. 영일고등학교는 특색 있고 좀 더 유의미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즐거운 학교라고 제 경험에 비추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졸업이 싫었어> 프로젝트는 영일고 졸업생들이 재학 중 미래의 의미 있는 삶을 준비하고, 더 넓고 따뜻한 관점으로 세상을 대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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