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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모 구거투스 Oct 20. 2016

마음이 자란 시간들

 영일고에서 내가 배운 것 #04

글, 최은선(35회. 2016년 졸업)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었을 땐 설레기보단 두려웠다. 마치 대입이 코앞으로 다가온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 입학하지도 않았는데 주변에선 수시니 정시니 농어촌전형이니 잘 알지도 못하는 말들을 해대니 고등학생이 된다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마치 모두가 고등학교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일련의 과정으로만 생각할 뿐이었다.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는 몰랐으나 어쨌든 대학에 가기 위해 다들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물론 나 또한. 결과적으로 좋은 대학에 입학하였나를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글쎄...”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3년 동안 성장하였나를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매우”이다. 그저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선택한 영일고등학교에서 여러 성장과 발전을 이뤘기 때문이다.   

        

즐겁게 말하고 쓰며 타인과 소통하기


졸업 후에 나는 확실히 발표를 즐기는 학생이 되어 있었다. 학교는 학생이 주도하는 분위기의 수업을 정확히 유도하고 있었다. 1학년은 그런 수업에 적응하는 기간이었다. 내 머릿속에 있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많은 용기와 연습이 필요했다. 그동안은 발표식 수업에 대한 의구심이 잦았다. 차라리 선생님이 A부터 Z까지 설명해주시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2학년이 되자 싹 사라졌다. 확실히 친구들은 발표에 노련해져 있었다. 파워포인트(PPT)를 만드는 실력도 뛰어났지만 친구들에게 수업의 내용을 어떻게 해야 쉽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이 고민한 결과가 그대로 나타났다. 자신이 발표하는 주제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선생님의 설명보다도 이해가 잘 될 때도 많았다. 학생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선생님의 자세한 보충설명까지 더해지니 발표식 수업은 알찬 수업이 되었다.


학과 밴드부의 보컬로 소공연 무대에 올랐다(왼쪽). 노래보다도 차진 멘트로 동기들에게 칭찬을 받아 기뻤다. 랩 파트 가사를 통째로 틀리는 바람에  이 사진만 보면 민망하다.


발표식 수업에 익숙하다는 점은 대학에서 확실히 강점이 되었다. 모두가 발표를 꺼려했지만 나는 여러 사람 앞에 서서 발표하는 것에 이미 익숙했고 심지어 그것을 좋아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시간 동안 발표를 하더라도 나는 더 여유롭고 당당하게 발표할 수 있었고 이는 자연스레 좋은 학점으로 이어졌다.   


영고의 토론 수업에서 침묵을 유지하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토론 중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이해에 대해 특히 강조하셨으며 이것은 자유롭고 적극적인 발언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내가 처음 토론 수업에 대해 어려움을 느꼈던 것은 내 의견에 대한 반박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었고 그에 대한 반박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러한 토론식 수업을 통해서는 같은 문제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을 공유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토론도 많이 했지만 그때는 대학교를 다니는 지금보다도 더 많을 글을 썼던 것 같다. 매달 봉사 소감문을 쓰고 독서토론부의 부원으로 활동하며 많은 토론문과 독서 감상문을 썼다. 학교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유도하여 글을 지속적으로 쓰다 보니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이 많이 사그라졌다. 이것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연습이 되었고, 곧 좋은 자소서의 토대가 될 수 있었다.


교내 VR 체험 공간에서 초집중해 있는모습이다. 다 하고 나니 상당히 멀미가 났다.


긍정적 자극을 주는 친구들, 따뜻한 선생님


위와 같은 것들은 나의 대학생활과 입시에 도움을 주었지만 역시 나라는 사람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무래도 친구들과 선생님들이었다. 아무래도 고등학교 3년 동안은 가족보다도 친구, 선생님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수험 생활 중에는 주변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빼놓을 수 없는데 내 경우에는 전혀 그런 스트레스를 느끼지 못했다. 학교에서 친구와 선생님들은 끊임없이 긍정적인 자극을 주었다. 수업시간에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그들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 배우곤 했다.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 야자 쉬는 시간에 기출 한 문제를 더 풀기보단 친구들과 대화를 즐겼다. 남들이 보기엔 잡담으로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작은 대화를 통해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넓혔으며 공부보다 중요한 가치들에 대해 숙고할 수 있었다.


또한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 생기면 망설임 없이 진학실 문을 두드렸다. 진학실 내의 모든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고민을 쉽게 넘기는 법이 없으셨다. 중요한 입시문제부터 사소한 친구들 간의 다툼까지 선생님들께서는 세심하게 신경 써주셨다. 큰 문제에 부딪혔을 때에도 항상 우리가 어려움의 고비를 잘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믿어주셨다. 영고에서 친구, 선생님들은 한 없이 나를 존중하면서도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때론 비판의 말들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 지내면서 주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많이 느꼈고 그들에 대한 신뢰도 굳건해졌다.


독일어 원어 연극 동아리에서 기획부원으로 활동하여 9월 초 연극을 올렸다. 브로슈어에 실은 프로필 사진이다.


마음이 자란, 나의 소중한 고교 시절


작은 키가 싫어서 키가 크기를 원했지만 인생에서 가장 키가 자라지 않았던 3년이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그 대신 마음의 성장을 크게 이룬 3년인 듯하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 중에 가장 나를 성장시킨 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행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하지만 영일고에서는 수업 중이든 쉬는 시간이든 선생님이든 학생이든 어떤 대화에서도 이해와 존중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사람들에 대한 열린 마음도 가질 수 있었다.


사회에는 생각보다 자신의 잇속만을 생각하고 타인을 대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요즘처럼 제 밥그릇 하나 챙기기 힘든 사회에 그런 행동은 쉽게 살아가는 방법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방법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너무 이상적인 얘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서로 배려하고 온정 넘치는 사회를 꿈꾼다. 부유한 사람은 빈곤한 사람을 살피고 몸이 건강한 사람은 몸이 불편한 사람을 살피는 따뜻한 사회. 그런 사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이해와 존중이라 생각한다. 삶에 있어 대학보다 더욱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영일고등학교에서의 생활은 앞으로 남은 내 인생에서 마음을 다잡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글, 최은선(35회. 2016년 졸업)

숭실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정시 농어촌 전형으로 숭실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학급 부실장을, 3학년 때에는 학생회 서기를 맡았습니다. 독서토론부로 활동하며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습니다.


<졸업이 싫었어> 프로젝트는 영일고 졸업생들이 재학 중 미래의 의미 있는 삶을 준비하고, 더 넓고 따뜻한 관점으로 세상을 대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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