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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Jul 19. 2015

노 시크릿

시크릿 책을 28살 때 처음 읽었다. 본격적으로 공무원을 준비하던 때였다. 책은 신선했다. 원하는 것을 리얼하게 꿈꾸면 현실로 이루어진단다. 책의 사례들은 온통 미래를 원해 그것이 현실로 된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떻게 미래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소원을 이룰까?’ 조금 의아하기도 했지만 책에서는 우주의 힘이란 원래 그런 거라고 하였다. 그럴  듯했다. 나는 그때 오로지 공무원 시험 합격 빨리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의심 없이 시크릿 믿었다.


상상 속에서 나는 당시 좋아하는 아이에게 “나 공무원 시험 합격했어! 나 이제  황주사야!”라고 말했다. 엄마가 기뻐하며 아파트와 차도 사주었다. 여자 후배들에게 축하 전화가 이어졌다. 최신 정장을 입고 시청에서 약간 도도하게 일하고 있었다. 


첫 번째 시험에서 떨어졌다. 친구는 내가 더 생생하게 미래를 상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떨어진 것이라고 했다. 내 탓이었다. 난 의기소침했지만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밝은 미래를 상상했다. 그렇게 또 1년을 버텨냈다. 두 번째 시험에서 또 떨어졌다. 그땐 데미지가 커서 회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도 마지막 힘까지 탈탈 털어 밝은 미래를 기대했다. 세 번째 시험에서 또 떨어졌다. 난 진짜 죽을 뻔했다.


몇 년이나 공들인 그 시간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나이는 되돌릴 수 없이 늘어가고, 몸은  쓸데없이 비대해졌다. 내 현재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온몸을 쥐어짜도 더 이상 미래를 바랄 수 있는 힘이 남아있질 않았다. 공무원들을 보면 정말 미칠 것 같았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내 마음을 돌보지 못했다. 아무런 방어막 없이 뾰족한 화살을 그대로 안고 주저앉았다. 난 그제야 시크릿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사귄 애가 생각났다. 그녀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내가 마비될 정도로 그녀에게 집착했다. 마음껏 그녀를 좋아하도록 내 마음을 놓아주었다. 2달 뒤, 그녀는 날  부담스러워했고 결국 헤어지자고 하였다. 집착이 크면 실망도 크다. 나의 그 방임이 그대로 상처가 되어 내게 돌아왔다. 마실 줄도 모르는 술을 자주 마셨다. 술 마시면 그녀에게 전화해서 매달렸다. 그땐 인생이 무겁지도 않았는데 작은 헤어짐에 유난히 힘들었다. 


이후로 나는 문대 여자들과 적지 않는 썸과 사귐을 반복하였다. 쿨하게 헤어진 애들도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프지 않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여자들에게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거리를 유지하면 되었다. 몇 번 아파 보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기대하게 된다. 우리가 삶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그 무엇에도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내가 그것을 잠시 잊고 살았다.


애초부터 시크릿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유인력을 믿으면 마트에서도 주차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을 내가 믿었다니. 경쟁 사회에서는 모두가 다 원하는 것을 꿈꿀 수는 없다. 기대는 아예 안 하거나 적당히 해야 한다. 예스 24 파워블로그 선정될 때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브런치 작가 신청할 때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작가 선정되었다. 세상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아도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오히려 기대가 없을 때 기쁨이 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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