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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Jun 27. 2015

끄적거림

나는 왜 공무원이 되려고 했을까? 난 어릴 때부터 좀 특이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난 그게 내가 외계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싫었다.  '평균에의 일탈'을 항상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공무원이라고 하면 어디에서나 그들을 정상적이고 안전한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가? 난 그런 공무원의 이미지가 부러웠던 것 같다.

 

솔직히 공무원이 되어서 동 사무소에서 '등본' 떼주고 이런 단순한 일을 평생 할 자신은 없었다. 또한 그들의 직장이 안정적인 것과 좋은 연금제도 같은 건 처음부터 바라지도 않았다.  

 

난 어차피 공무원에 합격해도 그것을 계속 못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안에는 분출시켜야 하는 마그마가 가득한데 공무원이라는 직장으로 내 정체성을 위장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안 것일까?

 

사실은 청소년기 때부터 나는 혼자 생각에 잠기는 것을 좋아하여 철학자나 사상가가 나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막상 철학자가 될 거라고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도 좀 우스웠고 내가 생각해도 좀 두려웠다. 요즘 같은 세상에 철학자가 꿈이라니 가당키나 한 소린가?  

 

나는 한 5년 정도는 공무원 하면서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보고 싶었다. 그 이후에는 내가 해야만 할 것 같은 일을 하려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였다.

 

그런데 공무원 3번 떨어지고 나서 그 길이 내 운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준비한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국어, 영어, 국사, 행정법, 사회복지 이런 과목들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고 충분히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다만 시험에 떨어지면서 내 자존감이 많이 상했던 것이 문제였다.

 

내가 고등학교 때, 공부 안 하고 엉뚱한 책만 보고 할 때에도 내가 일부러 공부를 안 해서 성적이 안 나오는 것이지, 마음 먹고  공부하면 남들보다 잘 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존감이 강한 내가 남들보다 능력이 떨어진다고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공무원 공부도 1년 만에 될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에선 쉽지가 않았다. 3번째 떨어졌을 때, 나는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내가 알고 봤더니, 머리도 나쁘고 그저 그런 시시한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이건 첫사랑의 실패보다 더 심각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세상의 모든 실패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 시험에 떨어져서 자살하는 사람들 마음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신이 내게 이런 느낌도 한번 경험해보라고 일부러 그런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마음 추스르는데 시간이 좀 걸린 것 같다.

 

지금 나는 이도 저도 아닌,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백수이다. 아마 4월부터는 뭔가를 하고 있겠지만 공무원을 포기했다는 것 말고는 외형상 분명한 게 하나도 없다. 나이는 많고 결혼은 미지수다 ㅠ

 

수확이 있다면,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내가 이제 뭘 해야 하는 지는 분명하게 알았다는 것이다. 신은 내가 정말 두려워했고 피하기만 했던 그 길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난 이제 배수진을 치고 적을 기다리는 기분이다. 어쩔 수 없다. 내 운명과 자신을 믿고 최선을 다해 싸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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