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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Jun 30. 2015

조선소에서 1

나는 조선소에서 경비를 2년 넘게 했다. 개인 시간이 많아 밤에는 자유롭게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었다. 월급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경비를 낮게 보는 것일까? 사람들 택배 같은 거 맡아주고 인사하는 것 이외에 딱히 하는 일이 없어서 일까? 전문성이 전혀 없는 단순 서비스업이라 그럴까?


조선소에서는 50명이 넘는 경비가 있었는데 2명 이상 함께 근무하는 경우도 잦았다. 같이 일하는 경비들은 대부분 나이가 50대 이상이었다. 나는 그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거의 예전 다니던 회사에서 일찍 잘리거나, 사업 실패 등으로 아픔을 겪고 오갈 데 없어 여기로 온 사람들이었다. 가정도 대부분 파탄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이 사회의 바닥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에게 삶은 맨 정신으로 버티기엔 버거운 것이었다.


그들은 추억 이야기를 자주 하였다. 자신이 잘 나갔던 80~90년대 이야기였다. 어떤‘희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삶의 의미는 오로지‘과거’에만 있었다. 그들은 매일 술을 먹었다. 자신의 신세를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술 먹는 자신이 싫어서 또 술을 먹고 계속 악순환이었다. 술과 도박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있는 여자들이 그들을 위로했다. 세상에서 가장 저질스러운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였다. 난 24시간 내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멘탈이 붕괴되는 것 같았다. 나는 서서히 그 짙은 무기력이 내게도 전염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조선소는 쇠를 깎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한다. 거친 욕설이 난무한다. 현장에 여자들은 거의 없었다. 여기는 남자들의 일터이다. 하루는 경비들과 같이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다. 거기에 처음 보는 아가씨가 있었다. 새로 온 영양사라고 하였다. 20대로 보이는 여리여리 하고 아담한 체구의 내 이상형이었다. 주위에는 거친 남자들만 즐비하였기에 그녀는 더 빛나 보였다. 어쩌면 그녀가 삭막한 내 생활에 가벼운 오아시스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나는 장난스레 추파를 던져보려 했다.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한 아저씨가 밥을 먹다가 내게 이런 말을 하였다. “예전에 라준이가 영양사한테 말 걸다가 정문 보안실에 끌려간 거 아나? 경비 주제에 정규직한테 말 걸다가 찍힌 거지!”난 발끈하여 “왜요? 경비는 여자한테 말도 걸면  안 되나요?”아저씨는 당연하다는 듯이“안 된다. 보는 눈도 많은데 우리 욕한다. 조심해라 니도!”젊은 여직원에게는 눈길도 주지 말라는 충고였다.


아저씨는 괜한 피해의식에서만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난 충격이었다. 나는 문대 졸업해서 주위엔 온통 여자들뿐이었는데, 그 일상적인 존재들에게 말도 걸면 안 된다니. 이곳이 너무 서럽게 느껴졌다. 조금 냉정하게 보니 그녀는 대기업 정규직으로 이 곳에 입사했다. 나는 비 정규직 중에서도 경비였다. 그녀는 나를 볼 때 어두 색채의 경비 복과 밥 먹을 때 찍는 빨간색 계급장을 먼저 의식할 것이다. 만약 내가 시시한 말을 걸더라도 그녀가 대꾸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난 그때 그녀와 내가 서로 다른 존재라는 걸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이 세상이 계급사회라는 걸 그때 알았다. 정규직은 파란색, 우리는 빨간색 사원증을 가지고 다닌다. 빨강과 파랑은 주차장도 다르고 헬멧도 다르다. 월급도 다르다. 문화도 다르다. 무엇보다 일 이외에는 내외한다. 어느 날, 경비를 관리하는 비상계획팀 신입 직원이, 그래 봤자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새파랗게 어린 놈이 경비들에게 근무 시 주의 사항을 알려줬다. 난 그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매일 술만 먹고 정신 못 차리는, 게으르고 무식한, 도저히 구제가 안 되는 인생 실패자들아. 내 말 잘 들어. 내가 너희들 때문에 위에서 조금이라도 깨질 수는 없잖아? 잘리기 싫으면 내가 한번 말할 때 똑바로 해!’라고 말하는 듯한 그 눈을 말이다.


난 경비들이 이런 모욕적인 시선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체념하고, 그들의 기대치 대로 행동하려는 모습에 경악했다. 시간이 지나 나 또한 저들처럼 될까 봐 치가 떨렸다. 우리의 빨간 명찰이 주홍글씨처럼 내 삶에 깊이 새겨져 아무리 씻어내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내게 남은 자존감이 다 털리는 것 같았다. 난 미치기 전에 그 곳을 탈출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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