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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Sep 23. 2015

시험에 떨어진 사람들에게

내 친구가 나름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계약직이었다. 그 곳에서 일을 잘하게 되면 계속 연장이 되고 나중에 정규직까지 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계약 기간이 지나서 그 친구는 떨어지고 그 친구의 동기였던 동료는 계속 연장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 그 친구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 사람은 이 일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내가 떨어진 것 같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말이 황당하게 들렸다. 이건 완전한 자기 합리화잖아? 사실 뭐 그렇게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솔직한 내 마음은 내 친구에게 뭔가 하자가 있었을 것이고, 자신이 경쟁에서 진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고 느꼈다. 


그런데 나중에 몇 년이 지나서 (실제로 다재 다능했던) 내 친구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더 좋은 회사로 취직을 했다. 그때 나는 생각이 좀 바뀌게 되었다. 


'재능이 많은 내 친구는 진짜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 그 곳에 떨어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이것은 논리적으로 따지면 말이 안 맞는 걸 안다. 하지만 원래 세상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깔고 들어가면 답은 쉽게 나온다. 


전에 혜민스님의 말이 떠오르는데 “시험에서 떨어지는 것은 내 실력과 상관이 없는 것이다. 뛰어난 사람이 합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 적당한 사람이 합격한다”고 했다.  



인도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예정되어 있다고 믿는다.(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보면 잘 나와있다) 잘 생각해보면 그것이 진짜 사실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기적처럼 1분 1초 차이로 소중한 인연을 얻었거나 불행을  피하기도한다. 그런 것이 다 우연이었을까? 내 생각에 세상은 노력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제 운명인 것이다. 


처음에 내가 공무원 시험에 떨어졌을 때는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번째 떨어지자 '나에게 공무원 말고 다른 길이 있어서 이렇게 자꾸 떨어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계속 시험을 도전하는 것보다 이쯤에서 포기하고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인생의 고수처럼 느껴졌다. 


경우에 따라 우리가 경쟁에 지더라도 이기는 것보다 더 멋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내가 끝까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는 과정을 보여줄 때, 주어진 불리한 환경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끄집어 내려고 노력했을 때, 졌지만 최대한 선전했을 때 오히려 이긴 사람보다 그 사람에게 더 매력이 가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결국 결과나 상황에 따른 우리의 ‘태도’가 우리의 진정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운명처럼 던져지는 우리의 삶에 수긍하고 더 능숙하게 받아 치는 과정에서 자신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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