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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큼대마왕 Jan 24. 2022

1.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랩

아침에 그랩 오토바이 택시로 출근해서, 업무 중 거래처로 보낼 상품은 그랩 익스프레스 서비스를 이용, 점심은 그랩 푸드 주문 서비스를 통해 맛집 Banh Mi (반 미) 샌드위치와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배달시켜 먹고, 비가 내리는 퇴근 무렵에는 그랩카를 타고 집에 가면서 그랩 마트 서비스를 통해 수퍼마켓에서 장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


                                    <출근길 그랩 오토바이로 출근하는 모습>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 8개국 351개 도시에서는 이처럼 하루의 시작과 끝을 그랩과 함께 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Grab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동남아의 우버(Uber)’라며 아류 정도로 아는 경우가 많다. 말레이시아에서 택시 호출 서비스로 처음 시작한 그랩은 현재 기업 가치가 140억 달러로 (한화 16조여원) 매일 4,500만명 이상이 사용하고 가입자가 1억명이 넘는 거대 기업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한 기업이지만 그랩은 베트남 사회 전반에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사라진 베트남 개인 택시 Xe om>


베트남에는 대중 교통이 부족해서 오토바이 없이는 생활하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시내 버스는 매우 부족하고 전철과 지하철은 호치민에서 아직 한참 공사 중, 그나마 하노이는 내년 개통을 앞두고 있다. 이 때문에 빠듯한 살림에 호치민이나 하노이 같은 대도시로 유학을 온 지방 출신 학생들은 오토바이를 살 수 없어 생활하기 불편했다. 베트남에는 Xe om (쎄 옴)이라 부르는 개인 오토바이로 택시가 있었지만 주변에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 탑승 전에 가격을 협상하고 바가지 요금으로 실갱이 하는 것이 현지인들에게도 여간 불쾌하고 짜증나는 것이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대기 중인 오토바이 택시 Xe om 기사들>


그러던 차에 핸드폰으로 편하게 차량과 오토바이를 호출하고 적정 금액이 사전에 고지되니 바가지 요금 걱정도 없게 되었다. 게다가 그랩이 자체적으로 프로모션을 하느라 할인 쿠폰을 뿌려대니 소비자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베트남 곳곳에서는 생계 수단을 위협 받은 쎄 옴 기사들이 그랩 기사들을 집단 폭행하거나 쎄옴 기사들과 그랩 기사들 간에 집단 패싸움이 벌어져 큰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스마트 폰을 이용할 줄 아는 쎄 옴 오토바이 택시 기사들은 대세인 그랩 기사로 신분을 갈아탔지만 환갑이 넘은 기사들은 몇 개 월치 소득에 해당하는 비싼 스마트 폰을 사지도 못하고 어떻게 그랩 기사가 될 수 있는지 몰라 생계 수단이 막막해졌다. 쎄 옴 기사라고 해서 다 바가지를 씌우는 것도 아니었고 성실한 한 집안의 가장도 있었지만 급격한 사회 변화로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그랩으로 인한 택시 회사의 변화>


택시 회사들도 발칵 뒤집혔다. 택시 요금보다 50%~70% 저렴한 그랩카 때문에 택시 회사들이 파산하기 시작했다. 일반 택시로는 소득이 보전되지 않은 베테랑 택시 기사들은 그랩카로 직장을 옮겨갔고 호치민의 최대 택시 회사 비나선은 그랩의 약탈적인 가격정책 때문에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걸기도 했다. (20년 3월 호치민 고등법원은 그랩이 택시회사 비나선에 48억동, 한화 2억 4천만원을 배상하라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그랩으로 생계 위협 받은 비나선 기사들의 집단 시위 모습>


하지만 소비자들은 택시회사에 전혀 동조하지 않았다. 베트남 택시들은 미터 조작, 엉뚱한 길로 돌아가서 바가지 요금 씌우는 것은 물론이고 불쾌한 악취, 빈대, 벼룩 서식 같은 위생 불량 문제도 있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비난이 거세지자 시장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택시 회사들은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택시 안을 청결하게 하고 오래되고 낡은 택시는 새 것으로 바꾸고 택시 회사 자체적인 호출 서비스 앱을 만들어 고객이 목적지까지 예상 금액을 확인할 수 있어 바가지 요금 시비 거리도 없앤 것이다. 


<그랩, 베트남 중산층 차를 타는 습관을 만들어 내다>


불과 6~7년 전만해도 베트남에서는 시내 10~20분 거리 이동임에도 차멀미 때문에 차를 못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평생을 오토바이만 타는 사람들이다 보니 자동차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당시에만 해도 호치민 시내에 돌아다니는 차 대부분은 외국인 주재원들의 기사 딸린 렌터카였고 택시의 주요 고객 역시 외국인 관광객이나 베트남 거주 외국인들이었다. 


                                  <쇼핑을 마치고 그랩카를 타는 베트남인 가족들>


그랩 서비스가 시행되고 중산층들이 오토바이 대신 차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외국 기업이나 대기업에 다니는 여성 관리자급 직원들이나 해외 유학을 다녀온 젊은 여성 직장인들이 그랩을 선호했다. 특히 비오는 날은 출퇴근하기 힘든데 그랩카의 인기는 더욱 치솟았다


<베트남 중산층의 화장품 사용량 늘어나다> 

 

 상관 관계를 증명할 데이터는 없지만 필자는 그랩이 베트남 중산층들의 화장품 사용량을 대폭 늘렸다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베트남 여성들이 화장을 하고 싶어도 오토바이 출퇴근 길은 40분 ~ 1시간. 출근 시간 동안 무더위로 땀에 젖고, 얼굴에 메이크업을 하면 찐득 거리는 화장품에 고스란히 먼지와 매연이 달라붙는다. 그래도 메이크 업을 하면 매연을 막기 위해 쓴 마스크에 화장품이 묻어 버리니 화장하기가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게다가 호치민을 중심으로 하는 남부 지방은 1년에 절반은 우기라서 비를 맞으면서 오토바이를 타야 하니 화장할 엄두도 못 낸다. 그런데 에어컨이 나오고 비가 쏟아져도 걱정없는 그랩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메이크 업을 할 여력이 생긴 것이다. 


<진정한 배달 국가 베트남에 배민이 뛰어들다>


베트남에서는 커피 한 잔, 쌀국수 한 그릇에서부터 냉장고, 세탁기, 심지어 시골에서는 돼지 1~2마리도 오토바이로 배달이 되는 진정한 배달의 국가이다. 저렴한 인건비 덕에 2km 이내 거리까지는 배달비가 우리 돈 750원, 추가 1km당 250원만 내면 되니 저렴하기 그지없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베트남 음식 주문 및 배달 시장은 2019년 USD, 3,500만 달러 (약 400억원) 규모인데 해마다 20% 이상 성장하고 있다. 


                   <할인 프로모션이 예정되어 있는 카페에서 주문을 기다리는 배민 기사들>


                           <점심 시간 각 배달앱 회사 라이더들이 음식 배달하는 모습>


2019년 그랩은 그랩푸드를 런칭하면서 공유 차량 서비스에서 음식 배달 주문까지 확장했고 한국의 ‘배달의 민족’은 베트남 현지 2위 배달앱 Vietnammm을 인수하면서 베트남 시장에 뛰어 들었다. 치열한 베트남 배달 시장이지만 아직까지는 할인 쿠폰에 따라 고객들이 움직이고 있어 치열한 치킨 게임인 상황이다. 


<공유 차량 서비스 한국은?>


일반 택시와 달리 공유 승차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 고객이 어느 장소로 이동했는지 기록에 남는데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단순하게는 교통량, 방문한 지역의 상권 분석 등을 할 수 있으며 이용한 고객의 연령, 성별에 따라 세분화된 소비, 라이프 스타일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 공유 승차 서비스 업체들의 저렴한 이용 요금의 이유가 이러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함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이런한 확보되는 고객 데이터 뿐만 아니라 전세계 투자자들은 공유 승차 서비스와 자율주행차, 전기 자동차, 수소 자동차 도입 여부와 연결 지어 이들 업체의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이 3,000억원, SK 그룹이 800억원을 그랩에 투자했지만 수 조원의 금액을 일찍 투자한 일본, 중국 기업들의 투자 금액에 비해 너무도 적다.


 현재 미국의 우버, 동남의 그랩, 중국의 디디추싱, 인도의 올라까지 세계 Big 5의 공유승차 서비스 중 4개 업체 모두 소프트 뱅크의 손정희 (손 마사요시) 회장이 최대 주주이다. 그리고 역시 손 회장이 최대 주주로 있는 중국 최대 이커머스 몰 알리바바. 그 알리바바가 인수한 동남아 최대 이커머스 라자다. 온라인 쇼핑몰에 공유 승차 서비스+배달 플랫폼까지 장악한 상태에서 전세계 비즈니스 생태계를 어떻게 장악할지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한국 기업은 어떤 형태로 대응을 해야하는 것은 아닌지 무거운 마음으로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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