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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Feb 26. 2024

시드니에서 여름을 나는 법, 두 번째

나는 매주 다른 수영장에 간다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시작한 것 중 하나는 수영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수영을 배운 기억은 있지만 어째서인지 수영을 하는 방법은 까먹어버린 나는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에도 거침없이 뛰어드는 호주인들을 항상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수영을 못 하지만 물놀이는 좋아해서 비치에 갈 때면 늘 튜브나 부기 보드를 챙기곤 했지만 여러 방식으로 물놀이를 할 수 있다면 그건 분명 더 즐거운 일일 테니까. 그래서 치열한 동네 수영장의 경쟁률을 뚫고 아침 수영반에 등록에 성공했다. 오랜만에 배우는 수영은 여전히 어려웠고 생각만큼 실력이 빨리 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 오리발을 사고 꿈에 그리던 접영을 배우는 날이 오기도 했다. 물론 코로나와 함께 거기서 멈춰버렸지만.


작년에는 3년 만에 시드니로 돌아와서 오랜만에 주말마다 비치에 가서 스노클링을 하곤 했다.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는 삶은 집 근처에 물이 가득한 초대형 놀이터가 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곳의 물가는 비싸고 렌트 비용은 더더 비싸지만 365일 24시간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장소가 많아서 여가 시간을 보내고 놀이를 즐기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 들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친구와 나눈 적이 있다. 그래서 매주 다른 비치에 가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건 시드니 생활의 커다란 즐거움 중 하나다.


Andrew (Boy) Charlton Pool

12월 크리스마스 연휴에 어김없이 비치에 가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문득 어떤 사진 하나가 떠올랐다. 시드니에 살던 분이었는데 수영을 좋아해서 가끔 블로그에 수영장 사진이 올라왔고 그중 멀리 바다가 보이는 한 수영장이 유독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바다를 면한 수영장으로는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본다이 아이스버그가 있지만 그곳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는 수영장이었다. 짙은 회색의 커다란 함선이 있는 곳으로 로열 보타닉 가든 내에 위치해서 마침 집에서도 멀지 않은 거리였다. 생각해 보니 언젠가 이스터 연휴 때 홀리데이를 맞아 놀러 간 지역의 수영장을 가본 적은 있지만 동네 수영장은 가본 적이 없어서 시드니 수영장 데뷔로 그곳만 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방문한 Andrew (Boy) Charlton 수영장은 사진으로 보던 것처럼 정말 뷰가 끝내주는 야외 수영장이었다.


최근엔 거의 바다에서 스노클링만 해서 잊고 있었는데 수영장이 주는 안정감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푸른 타일, 끝이 보이는 레인, 수심을 알려주는 표지판 등등 항상 긴장감을 주는 바다랑은 다르게 그냥 물에 들어가자마자 마음이 너무 편안해지는 것이었다. 물론 수심이 2미터까지 깊어지긴 하지만 1.2미터로 시작해 2미터까지 수심이 서서히 깊어지는 구조이고 맨 가장자리는 일명 따개비존이라 언제라도 벽에 착 붙으면 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야외 수영장은 해수풀이라 물에도 둥둥 잘 떠서 물놀이를 하기 무척 좋다. 이 좋은 곳을 왜 이제 왔을까 잠시 후회하기도 했지만 후회는 잠깐만 하고 신나게 놀았다. 조만간 날이 좋은 날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Ian Thorpe Aquatic Centre

두 번째로 찾은 곳은 호주의 올림픽 스타, 이안 소프의 이름을 딴 실내 수영장이었다. 올여름 시드니 날씨는 다소 극단적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40도를 찍은 후 돌풍과 함께 기온이 뚝 떨어지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다. 최고 기온 40도의 다른 말은 당장이라도 물에 뛰어들고 싶은 날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실내 수영장을 가기엔 더없이 좋은 날을 의미하기도 했다. 호주 햇빛은 정말 뜨겁고 아프기 때문에 이렇게 기온이 높고 구름 한 점 없는 날에는 야외보다 실내로 눈을 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날은 실내 수영장에 왔으니 오랜만에 천장의 선을 따라 배영도 하며 유유히 시간을 보냈다.


Cook + Phillip Park Pool

언젠가 시드니에 딸을 보러 오신 친구의 어머니가 시드니에서 수영장 투어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아마 동네 수영장에서 상급반이셨을 친구의 어머니는 딸을 보기 위해 시드니를 방문하셨다가 곳곳에 물이 있고 수영장도 여기저기 많은 이곳에서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마 꽤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시지 않았을까. 매 계절에 제철 음식을 챙겨 먹듯 그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자주 하는 무언가를 하는 건(필연적으로 이런 것들은 발달할 수밖에 없다.) 여행의 재미를 한층 더 높여주는 일이 분명하니까.


수영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물 밖에 있을 때처럼 호흡이 규칙적이고 안정적으로 되는 때가 있는데 그럼 잠시나마 끝도 없이 몇 바퀴를 돌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기는 순간이 찾아온다. 물론 그건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자신감과 함께 정말 기분이 좋아져서 무척이나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수영장을 가니까 크게 나아질 게 있을까 했는데 오히려 일주일 텀이어서 그런지 그 차이가 더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이 기세를 몰아서 수영장 멤버십을 끊는 걸 어떨까라고 잠시 고민을 했을 정도로.


이렇게 1월부터 시작한 시드니 수영장 투어는 이번 여름 내내 꽤 부지런히 이어졌다. 작년에는 비치, 올해는 수영장을 열심히 돌았으니 내년에는 이 두 가지를 잘 섞어서 여름을 더 잘 즐겨볼까 한다. 시드니에는 못 가본 비치도, 수영장도 아직 너무 많으니까.


Bondi Icebergs Pool & Bondi Beach




 〰️ 시드니에서 여름을 나는 법, 첫 번째는 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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