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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고르 Jan 26. 2022

큰일이다. 에세이가 읽히지 않는다.

내가 책에 빠진 이유

내 주위 누군가는 말했다. 책을 읽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삶의 공허함을 느낀다고. 나도 대학생 이후로 줄곧 책을 읽어 왔고 독서의 기쁨을 만끽할 줄 안다.  


나에게 독서란 내가 직접 갈 수 없는 곳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내 몸이 두 개가 아니기 때문에 내 행동반경 이상의 장소에 가서 무언갈 몸소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물 안에 갇히게 된다는 거다. 책을 읽지 않으면 공허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내가 서식하는 우물 환경이 나에게 지나치게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다를 것 없이 흘러가는 내 하루는 나에게 아무런 자극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자극이 없다는 건 생각할 동기가 없단 뜻이다. 생각 없는 삶에선 성장이 불가능하다. 모든 것이 익숙한 일상이 되어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행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처지에 놓이는 걸 오히려 좋아한다. 자신에게 '안정'이라는 느낌을 주어서다. 


직장을 다닌 뒤로 공허함이 더욱 커졌다. 색다른 경험을 자주 했던 학생 때와는 달리 지금은 감옥에 갇힌 것 같다. 감옥이더라도 여기가 자극을 듬뿍 주는 곳이라면 기꺼이 수감되겠지만 그렇지 않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봉인되었고 나처럼 성장을 목표로 사는 사람은 영적으로 말라간다. 영혼이 삐쩍 마른 나에게 물을 줄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선 독서밖에 없다. 직접 경험하는 것보다 효과는 덜 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작가의 행동반경을 간접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모험 욕구가 해소된다.


이 같은 이유로 나는 에세이를 즐겨 읽었다. 작가가 굳이 셀럽이 아니라도 개개인의 우주는 전부 상이하기 때문에 어느 누가 쓴 에세이도 난 좋다. 차가운 현실만 아니라면 당장 아내와 배낭 하나 메고 여행을 떠나겠지만 아쉬운 대로 작가의 스토리를 여행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런데... 이건 최근 일이다.


"여보. 이 책 한번 읽어봐요. 귀촌 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책인데 이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조금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책은 옴니버스식 에세이 형식으로 구성돼 있었다. 최근에 에세이류를 읽을 기회가 없어서 목말라 있었는데 잘 됐다고 생각했다. 자리에 앉아 독서 태세를 갖추고 목차를 쭉 읽어봤다. 농촌살이를 하고 있는 여성들과 나눈 이야기들이다. 우리 부부는 귀촌을 희망하지만 사실상 시골에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책은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았다. 


첫 장의 제목을 읽고 본격적으로 내용을 읽는다. 여성이 귀촌을 하게 된 배경, 시골에서 뭘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얘기한다. 한 4장쯤 읽고 나니 문득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사람 이야기를 왜 읽고 있어야 하지' 


'이 시간에 경제 지식 하나라도 더 공부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나'


에세이를 읽다 보면 작가가 마치 아름다운 세상에 취해서 쓴듯한 문장이 있어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있다. 내가 사회에 뛰어들기 전, 세상은 맑고 순수하다고 생각했을 땐 작가의 이런 감성 싸지른 글도 좋게 읽혔지만 사회에 찌들어있는 지금은 왠지 읽기 불편하다. 현재 내 주위엔 온통 불만족 그 자체인 사람들밖에 없어서 그런지 '인생은 고통이야.' '남들도 다 똑같을 거야'란 회의주의가 생긴다. 회의주의는 냉소를 만들어낸다. 타인의 스토리를 읽더라도 공감되기는커녕 입가에 희미한 비웃음이 서리는 것이다.


내 인생에 빨간 불이 들어온 느낌이다. 좋은 선율의 음악을 들으며 책으로 작가와 의미 있는 소통을 할 수 있는, 낭만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내 능력이 사라진 걸까. 내용에 심취되지 않고 '이 작가는 이 책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을까'라든지 '이렇게 살면서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어버린다. 작가의 삶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고 생각되자 책을 덮었다.


내가 최근에 읽었던 책 목록을 쭉 본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시골 카페에서 경영을 찾다', '나는 세포 마켓에서 답을 찾았다', '트렌드 코리아 2022', '관점을 디자인하라', '타이탄의 도구들' 등 온통 지식/정보 혹은 자기 계발 도서들이다. 이 목록은 내가 현재 느끼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부쩍 늘어난 돈에 대해 관심을 반영하는 듯했다. 이 책들은 내 지식을 넓혀주었지만 내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주진 않았다. 그래서인지 독서를 꾸준히 해오고 있음에도 공허함을 느낀 것 같다.


모든 것을 멈추고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인 것 같다. 각박한 현실에 지나치게 찌들어서 나를 잃어버리고 있진 않은지 자기 검열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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