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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혜 Apr 14. 2024

한국 이름, 영어 이름, 강아지 이름

세계의 이름 이야기 다섯 번째

실비아는 두 살에 우리 집 막내가 됐다. 원 주인이 한국에 몇 달 다니러 가면서 맡기고 간 것이 계속 미뤄지다 그만 식구가 되어버렸다. 꼬마는 원래 엄마가 한국에서 수술을 받느라 몬트리올로의 귀환이 늦어지는 가운데 너무 적응을 잘해버려서 원래부터 여기가 내 집인 양 살았다. 잠시 차에 태우고 어딘가 다녀올 때마다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에서부터 알아보고 신이 나서 통통 튀었다. 먼저 살고 있는 고양이 언니한테도 주눅이 들지 않고 엉덩이부터 들이밀어 자리를 잡았다. 

처음부터 입양한 아이가 아니어서 이름을 바꿔 부르지 않았고, 털이 실버(그레이) 색상이라 실비아가 어울린다는 느낌도 있었다. (실비아는 그런데 Silver라는 단어와는 관련이 없고 '숲'이라는 뜻의 라틴어가 어원이란다) 사실 실비아, 실비, 멍무, 강아, 귀요미... 부르는 이름이 너무 많아서 별 상관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하는 말, "너무 사람 이름 같지 않아?" 알고 보니 그 친구 아랫집에 사는 사람 이름이 실비(Sylvie)였다. 영어나 불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실비아'는 사람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물론 캐나다에서도 개에게 찰리나 루나처럼 귀여운 느낌의 사람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정말로 사람에게 많이 쓰이는 이름, 예를 들어 제시카나 제임스 같은 이름은 잘 없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외가댁에 있던 치와와의 이름이 '메리'였다. 메리는 아주 흔한 개이름이었다. 얼룩무늬가 있으면 바둑이나 점박이, 털색깔에 따라 누렁이.. 그중에서도 좀 귀엽고 작은 개에게는 '메리'라는 이름이 많이 붙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만약 내가 여기서 강아지를 메리라고 부른다면? 굉장히 불경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메리라는 이름은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여왕의 이름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성모 마리아에서 유래한 이름이니까. (개이름 메리를 영어로 쓴다면 Mary가 아닌 Merry였을 것 같긴 합니다만) 하여간 그런 외국 이름이 당시엔 귀엽고 독특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최근에 와서는 한국에서도 코코라든지 벨라 같은, 이국적으로 들리는 개이름도 있지만, 이제는 영어이름을 쓰는 사람도 많고, 무엇보다 개를 가족처럼 키우는 애견문화가 생기면서 개들에게는 몽자, 달래, 노을이... 개성 있는 이름이 많아졌다.


이제 아홉 살이 된 우리 실비아, 어차피 주변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름이 무슨 상관일까. 다만 영어 불어를 한 마디도 못 알아들으니 다른 집 갈 생각 말고 평생 우리랑 살자. 건강하게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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