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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15. 2022

독일의 가르텐 피싱?

고객님 당황하셨어요?


독일 주택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똑같이 생긴 서너 개 이상의 집들이 나란히 한 줄로 붙어 있는 곳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줄지은 것 같은 모습의 독일 주택을 Reihenhaus 라인 하우스라고 부른다.

라인 하우스 들은 보통 주택들에 비해 크기가 아담하고 울타리 너머 건물과 건물이 떨어져 있는 집들과는 다르게 이웃집과 거리가 더 가깝다.

서너 개 이상의 집들이 마치 깍두기 썰어 놓은 듯  붙어서 크기와 건축양식, 그리고 정원까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지어진 집의 모양새와 크기가 같기 때문에 건물의 색이 다른 것은 마치 머리색만 다른 일란성쌍둥이처럼 보인다.

우리 집 건너편 라인 하우스에 우리의 다정한 이웃 헬가 할머니가 살고 계신다. 위에 대문 사진에 오렌지 색이 헬가 할머니 댁이다. 헬가 할머니 댁 정원은 우리 동네 라인 하우스들 중에 Garten 정원이 제일 예쁜 집으로 유명하다


이웃들은 헬가 할머니의 정원 덕분에 요몇년 사이 라인 하우스 값이 1.5배는 뛰었을 거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한다.

부동산이 드라마틱하게 크게 오르고 내리는 변화 없이 대체로 안정적인 독일에서 드문 일이다.


사진에는 다 담아내지 못했지만 헬가 할머니네 정원은 지나다니다 볼 때마다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패션이 달라지듯 할머니의 정원 은 늘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피어나기 때문이다.



헬가 할머니는 정원 가꾸시는 것이 할머니의 취미 이자 유일한 낙이라고 하신다.

그런 할머니는 일 년 내내 거의 모든 시간을 가르텐에 나와 계신다. 으찌나 부지런 하신지...

어느 날은 꽃들의 위치를 바꾸어 심고 계시고, 다른 날은 꽃들에게 물을 주고 거름도 주고 또 흙을 더해 주거나 시든 꽃잎을 따주고...

꽃들은 그런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을 듬뿍 받아 반짝이듯 피어난다.

헬가 할머니네 정원뿐만 아니라 독일 사람들은 정원을  정성 들여 가꾸는 집들이 많다.

독일 사람들의 정원 사랑은 유별나다.

(*독일 사람들의 봄맞이 소확행)

이웃 또는 지인이라 해도 개인적인 질문은 되도록 삼가하는 독일에서 대놓고 물을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정원 이야기 일 것이다

친절한 이웃들은 담장 이 없는 서로의 정원을 들여다보며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기도 하고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 동네 정원 중에 우리 집 정원은 오가는 많은 이웃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에 충분한 필요조건을 가졌다.

주택 들만 조로 미 있는 동네에서 큰길로 나가려면 거쳐 가야 하는 첫 번째 집이 우리 집이고 코앞에 있는 유일한 대중교통인 버스 정류장과 마주 보는 위치에 있는 것이 우리 집 정원이기 때문이다.


오가는 주민들 중에는 팔 걷어붙이고 같이 정리해 줄까? 하고 진심으로 물어와 준 이들도 꽤 되고 많이 바쁜가 보다며 에둘러 이야기 해준 사람들도 있고 관리가 안되어 있다는 것을 자연보호구역 같이 정감 있다고 표현 해준 이들도 있다.

그러다 언젠가 슈발름 씨네를 마트에서 만났다. 우리의 친절한 이웃은 내 글에도 가끔 출현하시던 그분들 맞다.

슈발름 아주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일하느라 바쁜데 정원일 해주는 업체를 부르면 어떠냐고 하셨다.

찾아보면 취미로 정원 관리해 주는 사람들도 있고 그리 비싸지 않게 일 잘해주는 업체들이 있다면서 말이다

어?그렇지 왜 우리가 그 생각을 못했지? 알아보고 한번 맡겨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집으로 처음 이사 왔을 당시 정원 전문 업체를 부를까? 하고 알아본 적도 있었다. 그때 우리는 정원 울타리가 너무 낮아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안쪽이 적나라하게 훤히 들여다 보여서 여간 부담이 아니었다.

집안 마당에서도 풀 메이크업하고 원피스 입고 나가야 하나 싶게 마당에 서면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우리도 좀 덜 들여다 보이게 울타리를 커다란 나무로 가릴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울타리용으로 사용되는 나무들은 크고 값이 비쌌다(큰나무는 한그루당 백유로가 넘는다)

그리고 우리 정원의 울타리는 길고 넓었다. 그런 나무를 깊이 심으려면 정원에 흙을 까는 공사를 대대적으로 해야 해서 재료비도 시간도 만만찮았다.생각보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업체에서 나온 견적서 에는 나무와 흙을 비롯한 재료비와 작업시간 대비 인건비 포함 6천유로 정도의 견적이 쓰여 있었다.

 

우리는 그 공사?를 하지 않았고 나무 울타리 대신 정원 용품 파는 상가를 돌아다니며 나무와 꽃도 사다 심고 채소도 재배하고 했었다( 그 당시 정원 비포 에프터가 여기 다 나 옵니다. 내 집 마련 하기)


그런데 그 모든 일은 병원을 개원 하기 전이였고 요즘은 병원일에 치여서 퇴근 하고 나면 소파와 한 몸이 된 적이 많아 한동안 정원 가꾸기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신경 쓰는 이 없는 정원은 심란 하기 그지없는 몰골이 되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길 지나가다 커다란 광고 간판이 눈에 띄어 우연히 발견한 정원 전문 업체를 섭외했다.

정원을 보고 견적을 내러 전문 업체 에서 나온 사람은 본인을 대표 라고 소개 했다.

큰 키에 짧은 머리 군인 또는 운동선수 같은 모습의 남자는 앨범 같은 책자를 손에 들고 있었다.

외형과는 조금 다른 여유 있는 속도의 발걸음으로 우리 정원을 한바퀴 둘러보는 남자의 두 눈은 기민 하게 반짝 였다.

마치 내가 넷플릭스 바다에서 재미난 한국 드라나마 영화를 건져 냈을 때처럼 말이다.


그 업체 대표는 들고 있던 책자를 내밀며 우리 정원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꾸며 줄 수 있다고 했다.

보여준 샘플 사진들을 훑으며 별 감흥 없어 보이는 나를 보며 대표는 이외에도 원하는 대로 디자인을 맞춰 줄 수 있노라 활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속으로 나는 '웬 디자인? 흠흠 이거 많이 부르는 거 아니야?...' 하며 왠지 미심쩍기 시작했다.

메뉴판 넘겨 주듯 광고 책자를 보여 주던 남자는 본격적으로 정원 디자인을 하기 전에 정원에 있는 것들을 다 치우고 시작해야 디자인이 산다는 말을 했다.

이건 머리 자르기 전에 먼저 온몸을 때 빼고 광내고 해야 디자인이 산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그놈의 정리를 위해 2인 3조를 투입? 해서 며칠이 거릴지 잘 모르겠으나 그것 부터 하고 보아야 된다는 거다.


우리 정원에는 아직 가져다 버리지 못한 낙엽 치워 담은 봉지들 그리고 고장 난 자전거, 수리한 창문 등이 귀퉁이마다 널브러져 있고 잡초도 듬성듬성 있다.어찌보면 치울게 천지 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건 우리가 하면 되지 그 일에 정원 전문가가 꼭 동원되어야 하는가?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그 순간 남편은 우리가 직접 소각장까지 들고 날라야 하는 낙엽 담은 봉지들도 시에서 하는 분리수거 장 까지 가져다 버려야 하는 자전거 등도 버려 줄 수 있다는 말에 솔깃 했나 보다.

남편은 나서서 이것저것 보여 주느라 보지 못했지만 나는 그 정원 업체 대표라는 남자의 눈빛이 흡사 먹잇감을 앞에 둔 승량이 처럼 변해 가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기여코 남편이 지하 창고에 있는 버릴 가구들까지 보여 주고 나서야 정원 디자인? 전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났다.

내 촉은 이것저것 말만 하면 다 된다는 정원 업체 대표를 이미 수상한 사람으로 등록하고 있었다.


전문 정원 업체 라면서 어떤 꽃과 나무를 어디다 어떻게 심을 것인가 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뭐든지 다 버려 줍니다로 이야기 가 귀결되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스러웠다.

우리는 디자인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정원에 나무 몇 그루 심고 꽃 좀 심고 예쁘게 정리를 했으면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뭔 놈의 정원 디자인을 살리기 위해 그 주변이 그리도 정리 가 딱 떨어지게 되어야 하는가 말이다. 남의 집 정원으로 전시회 준비 하나?

물론 깨끗하게 정리해 놓고 정원을 꾸미는 것이 효과 면에서 더 좋을 것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건 마치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오기 위해 주방을 싹 다 뜯어고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집안 대청소를 지하실까지 구석구석 다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일들을 공짜로 해줄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도대체 정원 주변 정리를 이렇게 살뜰히 하기 위해 얼마가 들어갈 것인가 가 궁금했다.


일이 다 성사되리라 믿어 의심 치를 않았던지 들떠 서는 정원 정리하는 날짜를 먼저 잡자는 업체 대표 에게 나는 마지막 확인을 위해 물었다.

"그럼 그 정원 정리라는 것을 위해 시간과 비용이 정확히 얼마나 들까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대표는 "글쎄요 가져다 버리는 데 개수당 50유로 정도 들고 정리를 위해 두 명씩 서너 팀은 필요할 것이고 며칠은 되겠지요."

고장 난 창문이나 자전거, 안 쓰는 무거운 의자 등을 버리는데 힘 안 들고 생각보다 저렴하게 해결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지 남편은 긍정의 마음을 담아 "그래요?"라고 했다.

넘어갈 듯한 느낌은 아마도 사기꾼들이 제일 먼저 알아챌 것이다.


그 업체의 대표는 자기가 삼대째 내려오는 가업을 이어받은 것이고 자기 아버지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라 고객 만족도가 높다며 자화자찬의 빰 빠레를 울렸다.

나는 남편만 알아볼 수 있게 '아무 말하지 마!'라는 뜻을 담아 눈으로 레이저 한방을 쏜 후에 대표 에게 이야기했다.

"훌륭하시네요 저희한테 정리하는데 들어가는 자세한 비용 견적서를 이메일로 보내 주실래요?" 했다.


이때까지 청산유수로 말을 쏟아 내던 대표가 이삼 초간 말이 없다 그러더니 "아 저희는 견적서 작성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제가 자세히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했다.

나는 속으로 역시나! 그러시겠죠 했다. 독일에서는 서류가 중요하다. 전화 통화로 했던 말로 이야기했던  문제가 생겼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건 서명 들어간 종이뿐이다. 말로 한 것은 법적 근거가 될 수 없다.

즉 말로는 50유로 든다 했다가 막상 500유로 들어도 지불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

그래서 견적서, 계약서 등이 상당히 중요하다.

 "그럼 얼마가 정확히 들어갈까요?"

그랬더니 "음 큰 창문이랑 수거해서 버리고 하는 것들..."하고 시간을 끌었다. 그 아저씨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기다리던 나는 답답한 마음에 "네 아까 개수당 50유로 말씀하셨죠? 다섯 개 버린다 치고 250유로 거기에 말씀하신 정원을 두 명이 세 개 조로 하면 6분이 나오신 다는 거죠? 며칠 이나요?"

라고 물었다.

조금 당황하는 듯하던 대표는 "네... 사람들이 하루 종일 일만 할 수는 없으니 쉬는 시간 포함해서 한 삼일 걸리겠죠" 했다.

몇 명 보내 놓고 세월아 내 월아 해 보겠다 는 그 업체 대표의 속이 빤히 들여다 보여 헛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 시간당 얼마나 드려야 하는데요?"라고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바로 답이 나온다.

"사람당 35유로 정도요.!"

숫자가 눈앞에 떠돌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버려주는데 250유로+ 시간당 인건비 35 곱하기 6이면

210유로씩 8시간 잡고 3일 일하면 대략 5천 유로 나온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럼 그 말씀하신 정원 디자인하기 전에 청소하는데만 대략 5천 유로 나온 다는 이야기 시네요"

라고 했다.

대표는 간사스러운 웃음을 날리며 "거기에 세금도 포함되겠지요 그런데 저 큰 나무 가지 도 잘라야 하고 해서 보통 일이 아닐거에요 했다."


그 아버지 이름을 걸고 일하신 다는 아저씨의 말을 정리하자면 우리 정원에 나무도 심고 꽃도 심고 하기 전에 널브러져 있는 물건 몇 개 치워 주고 나뭇가지 몇개 자르고 잡초 몇 포기 뽑기 위해 전문업체 프로 인력들이 나와서 전문적으로다가 하는데 5천 유로 이상이 들 예정이고 본격적으로 정원을 꾸미기 시작하면 얼마나 더 들어 갈지 모를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지랄도 풍년이지 않은가

30년 가까이 독일 살면서 종류 별로 사기꾼들도 만나 보고 여러 사람 두루 만나 보았지만

이렇게 대 놓고 면전에서 사기 치려는 사람은 보다 보다 처음 보았다.

예전에 재밌게 봤던 개그콘서트의 황해라는 코너에서 나오던 시그니쳐가 떠올랐다.

아마 우리 상황을 그 코너 버전으로 하자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고객님 당황하셨어요?

고객님 정원에 나무 심으려는데 프로패셔널 하게 침대 부터 버려야 된다고 해서 많이 당황하셨죠?

저도 삽으로 땅 파야 하는데 손으로 잡초 뽑아야 해서 많이 당황했습니다.


독일에서 전화로 보이스 피싱이 아니라 면전 에서 가르텐 피싱을 당할 뻔 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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