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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15. 2020

#4.코로나 19로 달라진 독일 일상

주말의 독일 마트 풍경

아들에게 연달아 톡이 왔다.


요즘 같은 때에 면역성을 키우려면 잘 자고 잘 먹는 것이 최고 라며 이게 좋다더라 저게 좋다더라 요거 해 먹어라 조거 해 먹어라 한국에서도 멀리 사는 딸내미네 걱정뿐인 우리 친정 엄니의 말씀대로 오래간만에 솜씨? 발휘해서 양질의 한식으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기름이 자르르 한 갓 지은 밥에 야채 듬뿍 넣은 매콤한 돼지 불고기 그리고 무 납작 납작 썰어 넣고 조갯살 한 움큼 넣어 끓인 시원한 국에 포근포근한 계란찜을 먹고 나니 포만감에 저절로 소파와 한 몸 이 되었다.


그렇게 거실 소파에 몸을 깊이 묻고 쉬고 있을 때였다. 드르륵드르륵 동시 다발로 여기저기서 흔들어 대는 핸디 진동 소리가 조용한 거실 안을 울려 댔다. 저녁을 먹느라 잠시 피아노 위, 식탁 위, 책 고지 위, 소파 위, 로 헤쳐 모여 있던 각각의 핸디는 온몸을 흔들어 대며 가족들에게 톡이 들어오고 있음을 알림 하고 있었다.


마치, 하늘 위로 흩어져 날아올랐다 전깃줄에 줄지어 앉은 참새떼처럼 우르르 일어나 각자의 핸디를 가져다 다시 주르미 앉아서 동시에 핸디들을 확인하는 모습이 우스워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으며 나도 내 핸디를 열었다.


김씨네로 되어 있는 우리 집 단톡 방에는 우리 부부 그리고 멀리 떨어져 기숙사 생활하며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의 전형적인 스타일 큰아들, 알바 틈틈이 하며 연애까지 하시느라 바쁘신 딸내미와 한국으로 하면 올해 중학생 이 되는 어느 때는 눈에 흰자가 더 보이는 사춘기 막내까지 함께 엮여 있어서 누가 사진 한 장 올려도 동시에 핸디들이 울려 대기 마련이다.


어쨌든 간만에 울 큰아들한테 톡이 왔다.

평소에 "잘 지내지 아들?" 하고 톡 보내면 한참 후에 그톡 밑으로 딸내미가 "오빠 뭐해 엄마가 톡 보냈잖아! 가 달려야  "네, 잘 지내요" 한마디가 답으로 올 때가 대부분이요, 혼자 뭐 해 먹고 어찌 지내나 궁금해서 참다가 장문의 톡을 보내면 지가 먹은 음식들 사진 찍어 보내는 것으로 답하는 쿨한 울 아들이 장장? 다섯 줄의 톡을 보냈다.


다들 잘 지내 있는 거지?

준비 단단히 해야 해!

최소한 몇 주는 견딜 수 있게 파스타, 통조림..

장기간 보관 가능한 것들로..

아참, 휴지는?

녀석, 우리 동네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것에 이어 우리 병원 바로 근처인 바우나탈이라는 도시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하니 식구들 걱정이 많이 되었나 보다...

텅텅 빈 마트 안에서 남편과 둘이 장을 보려니 가끔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제벌들이 자주 치는 대사 '너를 위해 통째로 비워 놨어'가 떠올랐다.
달랑 남아 있던 파프리카 한봉지 만이 이쪽이 채소 코너 임을 말하는 듯하다
전 Tegut 후 Edeka 좌 Lidl 우 Netto


아들의 톡을 보고 난 후, 평소 장 보러 가는 것이라면 세상 귀찮아하는 남편이 먼저 한마디 건넨다.

"우리도 장 한번 보러 가야 하나?"

나는 속으로는 '오 예쓰! 어쩐 일 이래' 하면서도 겉으로는 가자고 하니 내 가주마 하는 얼굴로 "그럴까? 가서 채소 몇 가지랑 휴지만 사 오지 뭐,지금 사람들도 별로 없겠지? 하며 장바구니를 주섬 주섬 챙겨 들었다.


우리 집은 시내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대로변과 인접해 있어서, 어느 때는 쉬익 유숙  하는 버스, 자동차 달리는 소리와 길 지나다니는 사람들 의 웅성임이 마치 방 안에서 나는 것처럼 서라운드로 들리기도 하지만 덕분에 장 보러 가기 에는 매우 편리한 곳에 위치 해 있다.


예를 들어 집 현관문 앞에서 앞쪽으로 쭈욱 올라가면 유기농 제품들이 많고 정육점 이 마트 안에 들어 있지만 조금 비싼 테굿이라는 마트가 나오고 뒤쪽으로 내려가면 영업시간이 밤 12시까지 여서 늦게 까지 마음 놓고 장을 볼 수 있는 에데카라는 제법 큰 마트가 나온다. 그리고 왼쪽으로 직진해서 내려가면 과일과 채소가 신선하고 종종 이벤트 물품 들 중에 건질만한 것들이 나오는 대부분 착한 가격에 살 수 있는 리들이라는 마트가 나오며 오른쪽으로 버스 한 정류장 정도 내려가면 조금 작지만 대학 근처 라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보다는 혼자 와서 인스턴트 피자 같은 가공식품들 위주로 간단한 것들 사가는 학생들이 많아 주말이나 공휴일 전에도 비교적 물건이 넉넉하고 남아있고 한가한 편인 네토라는 마트가 있다.

한마디로 전후좌우로 마트가 포진? 해 있다는 말씀.

주말 저녁에 마트를 갔는데...
마트에 감자가 없다 감자가..평소에 종류별로 가득 담겨 있던 감자 칸..
그 많던 파스타는 다 어디로 간 걸까?

우리는 그 마트들 중에 원래도 한가할 때가 많은 편이고 , 때가 때이니 만큼 사람이 더 적을 확률이 높은 네토라는 마트로 갔다.


동난게 휴지 만이 아니였다


요사이 독일도 얼마 전부터 사재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휴지 사기 힘드네 어쩌네 하는 소리가 나왔어도 그렇게 까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조금 외각에 살고 있는 우리 병원 직원 중에 한 명이 휴지 사기 위해 2주 기다렸다는 둥 마트에서 우유랑 빵 등을 빡스로 담더 라는둥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그냥 같이 웃었다.


그럼 독일 사람들은 원래 사재기를 안 하는 사람들 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독일에서 부활절, 크리스마스 등... 긴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마트 가면 난리도 아니다 기껏해야 며칠 시장 문을 안여는 것뿐이데 전투적으로 사는 사람들도 많고 마트마다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난스러운 피크 타임은 12월 31일 그해 마지막 날이라 하겠다. 그날 독일의 마트들은 오후  2시까지 여는데 (시골은 더 빨리 문을 닫는다) 그해 마지막 날 밤에 가족들과 또는 친구들과 모여 파티도 해야 하고 새해를 맞이할 카운트다운도 해야 하고 불꽃놀이도 해야 해서 먹거리가 특별히 많이 필요한 날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어찌나 사람들로 가득 한지 계산대에 가기까지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만 한참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일 년에도 몇 번씩 그런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고...(꼭 그런 날 같이 줄 서 있는 1인)

어린 시절 2차 대전을 겪어 아직 까지도 자기 집 지하에 상하지 않는 통조림류의 가공식품들을 쟁여 두고 시간 별로 체크해서 다시 사다 놓고 하는 노인분들도 계시고 한데.... 뭐,사재기라고 해봐야 얼마나 크게 다르려고? 하며  마트에 갔는데..


마트 안만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 텅텅 비어 있는 진열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곳은 채소 코너와  파스타 코너였다.


내일은 얼큰한 감자탕을 끓여 먹어야지 하고 감자를 고르려는데 감자가 단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감자를 쌓아 두던 장소를 바꾸었나? 싶어서 채소 코너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건만 깨. 끝. 이 비워져 있었다.

감자라고 써져서 빈칸마다 붙어있던 가격표 만이 얼마 전까지 이곳에 감자가 있었음을 증명해 줄 뿐.....


아니, 마트에 어떻게 감자가 없지? 이들의 식탁에 빼놓을 수 없는 주식 중에 하나라 말할 수 있는 그 감자가 없다.

어느 날 인가는 마트에 쌔들 쌔들 한 무밖에 없다 던가, 브로콜리가 떨어졌다던가, 시금치가 냉동밖에 없다 던가 하는 일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독일 마트에서 감자가 없다니...

한국의 마트에 쌀이 없는 것과 같은 상황이랄까?


이런 경우는 독일 생활 25년 만에 처음이다.

설마... 월요일 이면 다시 들어와 있겠지.... 그럼에도 감자가 없다니....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남아 있는 채소는 몇 가지 되지 않고 뜯어먹을 수도 없는 꽃들만 지천이던 채소 코너에서 모퉁이 돌아 스파게티 등을 사려고 파스타 쪽으로 가다 보니 그쪽은 더 기가 막혔다.

평소 수북이 쌓여 있던 그 많던 파스타들은 어디로? 저 텅 빈칸은 무엇?

 

냉동칸에 단하나 남아 있던 냉동피자
휴지가 말하기를 "키친타월 속에 나 있다!"
평소 키높이로 쌓여 있었다면 지금은 무릎 높이도 안 남아 있는 설탕, 밀가루
계산대 앞에서 남의 대사가 떠올랐다.


수프에나 넣어 먹는 알파벳 모양의 파스타 뭐 요런 종류의 작은 파스타 들만 몇 통 남아 있고,, 삶아 데쳐서 소스 해서 먹는 평소 그 많던 스파게티, 페네, 리가토니, 푸슬리 등등 종류 다양하던 파스타 들은 통 조차 없이... 누가 청소 라도 한 듯 진열대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밀가루와 설탕은 물건을 정리하다 말았나 싶게 대충 휑하게 남아 있었고

나라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휴지 칸에는 아직 여유분이 남아 있는 키친타월들 끝에 우리가 화장실 용 화장지 임 이라고 이야기 라도 하는듯 떨어진곳에 열개들이 세 개 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중 우리가 하나 사 왔으니 이제 두 개만 남은 거다. 사실,마음 같아서는 다 들고 오고 싶었으나 밀고 있던 가득찬 카트와 나를 번 갈아 보며 "급한거 몇개만 사오자더니 쓸어 담았네 쓸어 담았어" 라며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편을 보고 살그머니 다시 내려 놓았다.

속으로 "휴지 다 떨어지면 니는 알아서 해라잉"

을 속삭이며....


나는 남편이야 얼굴이 빨개 지건 말건 끊임없이 계산대에 올려 지는 고기,과자,빵,치약,휴지들을 보며 그래 당분간은 괜찮아! 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그러다가...

 아... 감자탕 끓이려고 미리 담아 놓았던 돼지 등뼈를 보며 아..감자....

순간 난데없이 남의 대사가 떠올랐다.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 만 속이 후련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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