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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Apr 19. 2021

립스틱보다 먼저 챙기는 벤토린



나는 외출할 때 화장품 파우치 안에 립스틱보다 벤토린을 먼저 챙긴다. 이 벤토린은 나처럼 기관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아주 유용한 약품이다. 기침이 심해 숨쉬기 힘들어질 때 목 안에 펌프 해 주면 거짓말처럼 기침이 가라앉는다.


내 집에는 의약품이 많다. 병원에 한번 가면 가정용 네블라이저에 들어가는 약도 의사 선생님이 챙겨주고 알레르기 기침이 심할 때 먹는 약과 내가 늘 먹는 약까지 한꺼번에 처방해 준다. 나는 병원 옆에 약국 약사 선생님과 친분이 매우 좋다. 한번 약국에 가면 병원 처방으로 기본 5~6만 원 정도의 약을 받는 내가 눈에 띄었는지 몇 번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친해졌다. 정말 약국에서 보따리에 약을 한가득 싸서 나온다고 말하면 맞는 듯하다.


지금보다 더 어렸던 시절에는 비교적 괜찮게 지냈던 것 같다. 그 시절은 20대 나의 청춘 시절을 말한다. 아마 사람이 가장 건강한 시절이 그 시기인듯하다. 어릴 때부터 약을 달고 살았고 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우리나라에 "알레르기" 개념이 없어서 알레르기 기침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감기약을 일 년 내내 먹었다. 아마 그때 수많은 항생제를 복용해서 이제는 항생제에 내성이 골고루 생겨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감기 걸렸을 때 일반약으로는 잘 낫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나의 주치의 선생님은 항생제를 잘 처방해 주지 않고 나를 꼭 일주일 정도 고생을 시킨다. 나는 의사 선생님에게 늘 이야기한다. "선생님 저는 이미 항생제에 내성이 생겨서 항생제를 먹지 않으면 안 나을 거예요! 약에 제발 항생제를 넣어주세요!"라고.


사람이 코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나는 알레르기가 심해지는 계절에는 잠을 잘 못 잤다. 기침과 더불어 코가 꽉 막혀서 누워있으면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까지는 그렇게 알레르기로 인해 잠을 거의 못 자고 밤을 늘 꼬박 새웠다. 나의 신랑의 말대로 현대의학이 점점 발전해서 몇 년 전부터는 많은 약들에 의존해서 나는 밤에 편안하게 잠을 잔다. 그것도 누워서 코로 숨을 쉬면서!


하지만 계절이 바뀌는 시기나 이렇게 봄, 가을에는 알레르기가 나를 괴롭힌다. 특히 낮보다 밤에 그 증세는 심해지고 대표적인 증세가 기침이다. 잠을 자다가도 갑자기 목이 메면서 마른기침이 난다. 그럴 때 이 벤토린을 뿌려야 해서 내가 잠자는 침대 옆에 신랑이 조립한 이케아 원형의자를 옆에 두고 그 위에 벤토린을 올려놓는다. 내가 잠자려고 준비할 때 신랑은 티슈를 한 장 뽑아 예쁘게 접어서 테이블 위에 티슈를 올려놓고 그 위에 벤토린을 둔다. 그리고 침대 옆에 내가 누워서 자다가 손을 뻗었을 때 바로 벤토린이 손쉽게 닿을 거리에 이케아 원형 테이블을 둔다. 그건 내 신랑이 잠들기 전에 하는 의식 중에 하나가 되었다.





내가 40대 초반에 건강을 크게 잃었을 때에 비하면 기관지 알레르기와 다른 알레르기는 나에게 병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지금은 내 기준으로 어느 정도 건강해진 이후라서 그런지 알레르기에 관한 약을 이것저것 복용하고 목에 벤토린까지 뿌리고 잠을 자려면 정말 울음이 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잠투정이 심한 편인데 바로 잠들지 못하고 이것저것 하려면 매우 짜증이 머리끝까지 난다. 그래서 울먹일 때도 있다.


그러면 신랑이 나를 아기 달래듯이 달래면서 약도 먹이고 목에 벤토린도 뿌린다. 나는 침대에 앉아서 거의 울먹울먹 하는 상태로 신랑에게 "자기야 정말 짜증 나, 이런 약 없이 잠자면 너무 좋을 것 같아!"라고 말을 하면 신랑은


"나는 이 약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우리 자기가 잠도 못 자고 벽에 기대어 앉아서 코도 막히고 기침이 나서 밤을 꼬박 새우면서 고생했었는데 이제는 이 약들이 있어서 우리 자기가 잠을 잘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몰라요!"


나는 신랑의 말을 듣고 멈칫했다. 신랑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잠자기 전에 먹어야 하는 많은 알레르기 약과

뿌려야 하는 벤토린이

귀찮고 짜증 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밤에 잠을 잘 잘 수 있는

귀하고 의미 있는 의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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