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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Dec 11. 2020

그리워 한다면

그리워 하는 마음이 힘이 되어


열 살 때 두 명의 친구를 만났다.


나에게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 두 명이 있다.
그때 나는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가서 전학을 했었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고 나는 천천히 그곳에 적응을 하고 있었다.


한 친구는 짝꿍이었다. 미술시간에 사용할 물을 항상 떠다 주고 내가 앉은 자리가 불편할까 봐 본인 의자를 거의 책상 끝에 두고 앉았던 아이, 내 물건들이 책상 중앙을 넘어가도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던 짝꿍이다.


또 다른 한 친구는 다른 반 아이였는데 나의 등 하굣길에 빈번하게 마주쳤고 운동장에서 나 혼자 있을 때 말을 내게 먼저 걸어서 알게 된 친구다.


몸이 약해서 운동장에서 툭하면 쓰러졌던 나는 체육 시간에 자주 그늘이 있는 계단에 앉아 있게 선생님이 배려하였고 나의 짝꿍은 혼자 앉아 있는 내가 심심할까 봐 종종 나에게 와서 말을 걸어 주고 다시 대열로 돌아가곤 했다.


다른 반 친구였던 아이는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아서

나의 집까지 내 책가방을 자주 들어다 줬다.
나는 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잘 주지 않는 새침한 아이였는데 그 아이와는 학교를 함께 오가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져서 인지 자연스럽게 내 책가방을 주게 되었다.


하교 후 나는 집에서 책만 읽는 아이였다.

나가 놀면 어지러워서 자꾸 앉아 있어야 했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게 부러워서 가끔 나가면 아이들은 나를 "깍두기"를 시켰고 나는 게임에서 죽어도 죽은 게 아닌 사람이 되어서 재미가 없었다.


내가 맘이 상해서 아이들 노는 대열에서 나와 쪼그려 앉아서 나뭇가지나 돌을 들고 흙 위에다가 그림을 그리면 짝꿍과 다른 반 친구였던 그 아이가 내 옆에서 그림을 같이 그려주고 이야기하면서 놀았다.


짝꿍은 흙으로 두꺼비집을 잘 만들어 줬고 그 아이는 작은 돌을 층층이 쌓아서 동화속 공주가 사는 성을 만들어 주었다.


학교 갈 때도 그 아이는 마치 처음부터 우리 집 대문 앞에서 기다린 것처럼 언제나 내가 학교에 가려고 나오면 우연히 만나곤 해서 함께 등교를 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이사를 가게 된 나는 전학을 가야 했고
그렇게 두 친구들 덕분에 나는 그곳에서 보낸 1년이 외롭지 않았다.





삶은 뜻하지 않은 우연과 만남을 준다.


내가 스물다섯 살 겨울에 '아이 러브 스쿨'이라고 동창을 찾아주는 인터넷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나는 그곳 학교에서 1년만 있었고 졸업생도 아니었는데도 우연히 그 모임에 나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다른 반 친구였던 그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아이는 내가 이사를 간 후 칠레로 이민을 갔다가 서울에 있는 한 대학으로 다시 유학을 온 상황이었다.


우린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친하게 지냈다.
나는 한 회사에 인턴사원으로 근무 중이었는데 그 아이가 회사 앞에서 기다리면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나에게 그 아이가 와 있다고 말해 주곤 했다.


마른 체형에 키가 186cm 정도 되며 다 찢어진 청바지와 발목까지 올라온 부츠를 신고 남자들이 염색을 잘 안 하던 그 당시에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한쪽 귀에 귀걸이를 한 그 아이는 멀리서도 눈에 잘 띄었다.


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하면 그 아이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고 우리는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종로에 내려서 인사동 쪽으로 걸어가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시절의 인사동은 지금과 모습이 사뭇 달랐다. 장인들이 직접 만들어서 가지고 나온 수공예품들이 많았고 곳곳에 작은 전시회도 열려 있어서 걷다가 무작정 들어가면 뜻하지 않게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음식도 맛있고 가격이 저렴한 것이 많아서 종종 그 아이와 나는 길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고 그 인사동의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다.


격주로 토요일 근무를 했던 나를 그 아이가 회사 앞에서 기다리면 토요일 오전 근무인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잘 안 가는 것 같았다. 토요일은 그 아이가 나에게 스케이트를 가르쳐 주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워낙 체육을 못하고 또 학창 시절에 빈번하게 체육시간에 참여를 하지 못했던 나는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 매우 부러웠다.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은 마치 겨울 왕국에서 왈츠를 추는 것처럼 보이고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더니 그 아이가 스케이트를 가르쳐 주기로 한 것이다.


그 아이가 다니는 대학에 빙상장이 있었고 그곳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개방을 해서 우리가 가서 스케이트를 타기에 적합했다. 롯데월드에도 스케이트장이 있지만 나처럼 스케이트를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사람들과 부딪혀서 다치거나 위험할 수 있다며 그 아이는 굳이 본인이 다니고 있는 대학교로 나를 데리고 갔다.



스케이트 끈을 매는 것을 어려워하는 나를 위해 항상 그 아이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일일이 끈을 매 주었다.


 내가 추울까 봐 그 아이는 가방에 양말과 겉옷을 챙겨 와서 입혀주고 우리는 손을 잡고 스케이트 장으로 들어갔다.




그 아이는 키가 186cm 정도 되고 나는 163cm 정도 돼서 그 아이가  옆에 서서 나를 감싸 안듯이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한 방향을 바라보며 스케이트를 탔다.



나의 시선은 앞으로 향했고 그 아이의 힘에 의지해 나는 자유롭게 팔과 다리를 움직이면서 처음부터 스케이트를 잘 타는 사람처럼 얼음 위를 몇 바퀴씩 돌았다.



나는 얼음 위에서 마음껏 보고 움직일 수 있는


그 자유로움이 너무 행복했다.



내가 늘 꿈꾸었던 겨울 왕국에서 왈츠를 추는 느낌이 들며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 찰나의 순간을 즐겼다.



밖은 매미가 시끄럽게 우는 한여름이었지만 빙상장 안은 서늘해서 내 뺨을 스치는 바람과 그 느낌이 더 좋았다.


몇 바퀴를 돌고 나면 손을 잡은 채로 마주 보고 나는 그 아이가 가르쳐 주는 데로 스케이트를 배웠다.



스케이트를 타는 중간에 내가 추울까 봐 그 아이는 나를 데리고 스케이트장 안에 있는 매점으로 가서 핫초코와 떡볶이를 사서 우리는 이야기를 하며 맛있게 먹곤 했다.





삶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꼭 이루어지진 않는다.


그 아이는 집에 문제가 생겨서 다시 칠레로 돌아갔고

그 후로도 나와 메일로 연락을 계속 주고받았다.


나는 인턴사원을 마치고 앞으로 어떤 것을 할까 고민을 하며 준비를 하던 시간이었고 그 아이는 집안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던 때였다.



그 후 나와 그 아이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살면서 가끔씩 서로의 생존 확인 메일을 주고받았다.



서로가 잘 살고 있음에 감사하며 늘 행복하게 살기를 빌어주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칠레에 대 지진이 났다고 뉴스에서 보도가 나왔을 때 나는 그 아이에게 다급하게 연락을 했고 그 아이는 잘 있다는 메일을 내게 보내왔다.

본인 집은 다 무너졌지만 가족들 모두 무사하다고 해서 나는 안도했었다.


그런  작년에 또 칠레에 지진이 한 번 더 났었고 그 이후로는 나의 메일에 그 아이의 답장은 아직도 없다.





나의 미래가 불확실했던 그 시절에 다시 만나서 나를 무한정 믿어주고 지지해 주었던 내 친구인 그 아이는 언젠가 반드시 나의 메일에 답장을 해 줄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살면서 우리는 많은 인연을 만나고 또 보내게 된다.


보통은 "시절 인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시절에 만나 서로에게 힘이 되고 불확실한 미래를 격려하며 응원해 주던 '시절 인연'은 누구에게나 있다.



평생을 이어지는 인연이든



한 시절만 스쳐가는 인연이든



삶을 채워주는 소중하고 고마운 순간들이었다.




그 인연이 잘 되기를 빌면서 그리워한다면...


그리워하는 마음이 힘이 되어


그 아이가 걸어가는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간이역

http://brunch.co.kr/@juwelrina/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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