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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Dec 13. 2020

간이역

행복을 찾아 떠나는 지구별 여행

나는 목적지 없이 떠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대학을 다니던 그때 나는 시간이 나면 부산행 기차표를 끊어서 기차를 타고 창밖을 보면서 하염없이 생각에 잠기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탄 기차는 느리게 가는 무궁화호 기차여서 창밖의 풍경이 나의 시야에 천천히 들어왔다. 기차의 규칙적인 소음도 나는 왠지 기차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벗어나게 해서 나에게 주는 자유로움이 컸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노는 것보다는 나는 혼자서 생각을 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날이 좋으면 좋아서 떠났고 날이 좋지 않으면 좋지 않아서 나는 기차에 올랐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맘에 드는 간이역이 있으면 내려서 무작정 걸었다. 그 도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나는 그곳에서는 이방인이었지만 그 낯설음이 나에게 적당한 긴장감과 설렘을 주었다. 도시의 길을 걸어가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그 공간의 분위기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카페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익숙한 향의 커피가 나를 위로했고 나는 가방 안에 있는 노트를 꺼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나 그림을 긁적였다. 그러다 조금 지루해질 땐 내가 늘 읽던 책을 꺼내 아무렇게나 페이지를 열어서 읽어 내려갔다. 여러 번 읽은 책이어서 어떤 면을 펼쳐서 읽어도 나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20대의 시절은 있다. 그 시절은 단 한 번 뿐이라서 찬란하게 아름답고 그 찬란함의 뒤에 가려진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어떤 기대감도 있지만 두려움도 크다.
나 역시 공부하고 있던 전공에 대한 고민과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나에게 주어지는 정해져 있지 않은 미래가 청춘시절에 무거운 숙제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선택을 매 순간 하면서 살아가기에 서로 다른 인생을 만난다.
내가 기차를 타고 마음에 드는 간이역에 내리는 것도 선택이며 뜻하지 않는 우연을 만나기도 했다.



기차 창문으로 보이는 햇살이 유난이도 예뻤다. 고흐의 해바라기 꽃보다 조금은 더 짙은 노란색의 벽에 진한 컬러의 기와지붕을 한 간이역이 마음에 들어서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나는 가방을 챙겨서 재빨리 내렸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바람이 내게 불어왔고 어떤 새 인지는 모르지만 멀리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집으로 돌아갈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표를 미리 끊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끌림에 의해 무작정 걸어갔다.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도 들렸고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도 공기 중에 섞여서 들려왔다. 길을 걸으면서 서점이 있나 찾아봤다. 나는 낯선 곳에 가면 서점에 들러서 그곳 주인과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그 주인이 권해주는 책이나 또는 내가 마음에 드는 책을 사는 것을 좋아한다. 다행히 작은 책방이 있어서 들어갔다. 책들이 정갈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고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서점 주인이 나를 반겼다.

그곳에서 나는 마음에 드는 책을 사서 다시 나와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서 간이역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카페를 찾고 있었는데 서점에서 나올 때 나의 시선에 "cafe" 라는 글자가 들어와서 길을 건너 되돌아간 것이다.



카페 벽은 흰색과 노란색이 적당히 섞인 컬러로 페인트칠이 되어있었고 카페 문과 창문틀이 내가 좋아하는 나무로 되어 있었다.

나는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손님이 아무도 없이 비어 있고 레코드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 보았는데 주인이 보이지 않아서 나는 우선 마음에 드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나는 책방에서 사 온 책을 펼쳐 카페 주인이 오기를 다리면서 조용히 읽고 있었다. 카페는 적당히 소파와 나무 의자가 섞여 있었고 조금은 어두운 커튼이 창문 끝으로 묶여 있었다. 카페 주인이 들어왔고 나에게 주문을 받아 커피를 내려왔다.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인지 카페 주인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못 보던 분인데 여기 사람이 아니지요?"


", 그냥 여행하기 좋은 날인 것 같아서 기차 타고 오다가 마음에 들어서 내렸어요"


"혼자 왔어요?"


", 갑자기 결정한 거라 혼자 오게 됐어요"


그리고 카페 주인은 다시 본인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조용히 읽어 내려갔다.
한참 책을 읽고 있는데 레코드음악이 꺼지고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내가 카페 안에 들어왔을 때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때는 피아노가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실제로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서 나는 조금 놀랐다. 그래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서 찾아보니 한쪽 구석에 조금은 낡아 보이는 피아노가 놓여 있고 카페 주인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가 궁금해져서 읽던 책을 테이블에 놓아두고 피아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먼저 물었다.


"혹시 피아노를 칠 줄 아세요?"


", 조금요"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던 곡 이름을 맞춰 보라고 해서 내가 알아맞혔다. 또 몇 곡을 더 연주했고 나는 연달아 맞추다가 결국 마지막에 말했던 것이 틀린 답이 되었다. 나는 멋쩍어서 웃게 되었고 그도 함께 웃었다.
함께 웃은 후에 나는 낯선 이에 대한 긴장감이 풀렸는지 그가 몇 가지 더 질문하는 거에 대답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무슨 고민이 있어서 보이는데 물어봐도 되나요?"


"이미 물어보셨잖아요"라고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나는 내 삶에 한 조각의 고민을 그에게 털어놓았고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삶은 기대하지 않아도 또 기대를 해도 어떤 힘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같다고 그가 말을 했다.



카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옆을 돌아보니 다른 손님 몇 명이 들어오는 것이 보여서 나는 눈으로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내 자리로 돌아가서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내 커피가 다 떨어질 때쯤 그가 커피를 들고 와서 다시 나의 커피를 채워주었다. 그리고 그도 자리로 돌아가 책을 읽었다. 나는 그곳에 잠시 있었던 거지만 손님이 많이 있지 않은 카페라서 한적해 보였다.

그러고 난 후에 조금 더 시간이 흘렀고 나는 어떤 것을 내려놓은 듯한 편안한 마음이 들면서 그 카페의 시간 속에 함께 있었다.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 되어서 나는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에 섰는데 그가 커피는 선물이라고 한사코 돈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계속 계산을 하려는 것이 조금은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웃으며 고맙다고 말하고 내가 그곳 책방에서 사서 다 읽은 책을 그에게 혹시 읽었던 책이냐고 물었더니 그가 아니라고 말해서 그에게 책을 선물로 주었다.


그는 나에게 행복을 비는 말을 해주었다.


다시 기차역으로 와서 기차를 기다렸다. 아까 지저귀던 새들은 어디 갔는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고요했다.

바람은 조금 차가운 느낌이 들었지만 춥진 않았고 살짝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이 예쁘게 보였다.

기차가 멈추고 나는 기차에 올라가 내 자리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몇 시간 동안만 머물렀던 도시고 작은 카페였는데 나에게 잠시 "쉼"을 주었던 그곳이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난다.
내 기억들의 한 조각에 머물러 있는 곳이고 어쩌면 지금은 그 카페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곳에서 잠시 보낸 시간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나 보다.









그리워 한다면

http://brunch.co.kr/@juwelrina/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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