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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Jan 17. 2021

스페인 친구

그리워 하는 마음이 힘이 되어

독일에서 전공 공부를 들어가기 전 잠시 대학에 속해 있는 어학원에 다녔었다. 처음에 나는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우리 반을 담당한 독일인 선생님의 친절한 마음 씀씀이 덕에 나는 2주 후부터는 그곳 아이들처럼 쾌활한 성격의 아이가 되었다. 나의 변화는 지금까지 나의 가족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세상에서 누군가가 나를 전폭적으로 믿고 지지해 주는 느낌을 나는 독일인 선생님께 받았다. 나를 믿어주는 그 따뜻한 마음의 힘으로 나는 모든 일에 자신만만한 아이로 변할 수 있었다. 물론 부모님께서도 자식을 전폭적으로 믿고 지지해 준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표현력의 차이가 나에게는 다르게 작용했던 것 같다. 나의 부모님은 일반적인 한국 부모님처럼 조용히 믿고 지지해 주는 편이었던 것 같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독일인 선생님은 학생들을 포옹하면서 긍정적인 말을 해주었고 어떤 일이든 잘할 수 있다고 격려를 들으면서 나는 독일인 선생님의 마법 같은 주문에 걸린 사람처럼 긍정적이며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었다.



내가 수업을 받을 때 거의 대부분 내 옆자리는 스페인에서 온 그녀가 앉곤 했다.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그녀는 대부분 함께 앉았고 우리는 서로 마음이 잘 통했다. 그녀와 나는 독일어를 사용하면서 의사소통을 하였다. 그녀는 금발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짧은 단발이었다. 파란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어서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인형이 생각나곤 했다.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이 그러하듯이라고 말하면 어느 정도 선입견이 들어간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내가 만났던 스페인 사람들은 쾌활하고 농담도 잘하고 친절했다. 그녀 역시 활달하고 나에게 친절했다. 우리는 마치 고등학교 단짝 친구처럼 친하게 잘 지냈다.



그녀는 함께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지극히 개인주의 성향을 지닌 그녀는 각자 시간을 보내고 서로 의견이 맞을 때만 나와 함께 하려고 했고 나는 타국 생활에 마음을 의지할 곳이 없어서 그녀와 함께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그녀에게 친구는 함께 다니는 것이 한국 문화라고 말을 하였다. 그녀는 문화의 다름을 인정하고 본인과 다른 한국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었다. 얼마 못 가서 한국에서 유학을 온 다른 언니가 스페인 친구에게 프라하의 별이 유별난 거지 한국 문화가 아니라고 굳이 정정해 주었지만 스페인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일은 아직 추운 겨울이었지만 나는 로맨틱한 일을 벌이고 싶어 졌다. 라인강을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었고 그 라인강의 한가운데 서 있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라인강 위의 다리를 걸어서 건너가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서 그 일을 하기에는 다리의 길이가 상당해서, 

나 혼자서는 너무 심심할 것만 같았다. 나는 스페인 친구에게 라인강의 다리를 함께 건널 것을 제안했고 그녀는 추운 날씨를 염려하면서 망설였지만 나는 괜찮다고 그녀를 설득해서 우리는 결국 라인강 다리 위에 서 있게 되었다.



그날은 바람이 매우 차갑고 거세었다. 나와 그녀는 잠시 망설였고 말을 할 때마다 입 주위 근육이 얼어서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와 그녀는 눈이 마주쳤을 때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났다. "도대체 우리는 왜 여기에 서 있는 걸까?"라는 의미의 웃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눈을 보면서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외치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는 나를 보고 웃으면서 나와 정신없이 그 긴 다리를 함께 걸었다. 오랫동안 걸어온 것 같은데 우리는 아직도 다리 시작 부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날따라 바람이 우리를 밀어내는 쪽으로 불어왔다. 나의 로맨틱한 계획은 라인강과 하늘과 다리를 감상하면서 그녀와 이야기하면서 산책하듯이 걷고 싶었는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외투를 감싸 안고 서로 바람에 날아갈까 봐 걱정을 하면서 정신없이 라인강 다리를 걸어가서 다리 중간 지점에 도착을 하였다.
바람은 차갑고 매우 거세었다. 내 뺨을 때리듯이 불어대는 바람으로 인해 눈을 편하게 뜰 수도, 입이 얼어서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바라던 낭만은 슬프게도 그곳에 없었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지점이 절반 정도 남았을 때 나는 그녀에게 추워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이대로 걸어가면 우리는 얼어 죽을 수도 있다고 다시 되돌아갈 것을 제안했다. 그녀는 내 말을 듣고 뛸 뜻이 기뻐했다.
우리는 걸어온 그 길을 오랜 시간 동안 매서운 바람과 싸워가며 다시 되돌아왔다. 결국 우리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 일주일 동안 함께 아팠다. 너무 무모했지만 그 일 때문에 나와 그녀는 더 친해지게 되었다.



독일인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던 나는 내 또래 친구들과 지내고 싶어서 대학 기숙사를 신청하였다. 그런데 대학 기숙사는 바로 자리가 없어서 어느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가톨릭 재단에서 유학생들에게 제공해 주는 기숙사로 신청해서 들어가게 되었다. 학교와 멀지 않은 곳에 기숙사가 있었고 건물이 옆으로는 길었는데 위로는 3층이어서 높지가 않았다. 스페인 친구가 먼저 홈스테이 하는 곳에서 나왔다. 그리고 기숙사로 들어갔고 나는 조금 더 홈스테이를 하다가 그녀가 있는 기숙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기숙사에 들어갈 때 그녀가 있는 곳에 배치받고 싶어서 상담하는 사람에게 말을 하였고 다행히 자리가 비어있어서 나와 스페인 친구는 부엌을 공용으로 사용하고 각자 원룸처럼 되어있는 그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그곳은 다섯 명이 각자 원룸으로 된 방을 사용하고 공용의 복도와 부엌을 공유하는 구조였다. 따로 요리를 하지만 부엌 안에 큰 식탁이 있어서 그곳에 앉아 함께 밥을 먹었다.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타국 생활이 외롭지 않게 느껴졌다. 나와 친한 스페인 친구가 있어서 다른 세 명의 친구들과도 금방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유럽 아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잘하지 않아서 부엌을 공용으로 사용해도 불편하지가 않았다. 저녁 식사 후 시간 되는 사람들은 부엌에 있는 식탁에 둘러앉아 맥주나 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종종 이야기를 하였다.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또는 되고 싶은 꿈은 무엇인지 미래가 불확실했던 청춘인 그 시절의 나와 친구들은 지금보다도 더 많이 꿈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다.



스페인 친구와 나는 서로의 꿈을 응원해 주고 정말 잘 해낼 거라고 믿어 주었다. 내 생일 때는 스페인 친구의 주도 하에 기숙사에서 친구들이 생일 파티를 열어 주어서 나는 감동을 하였다. 내가 유럽 배낭여행을 혼자 떠난다고 할 때도 스페인 친구와 기숙사 친구들이 유럽 여행할 때 묵었던 숙소의 전화번호와 또 본인들의 친구나 집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미리 나에 대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말을 해 놓을 터이니 힘든 일이 생길 땐 꼭 연락하라고 말을 해주었다. 나는 친구들의 응원 덕분에 50일이 넘는 유럽 배낭여행을 혼자서 잘 다녀올 수 있었다.




혼자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기숙사 부엌의 공용 식탁에서 공부를 자주 하곤 했다. 내가 궁금하거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기숙사 친구들이나 스페인 친구에게 물어보기도 좋아서 나는 주로 그곳에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나와 스페인 친구는 공부를 함께 하는 시간도 많았고 장난기가 많은 그녀는 나에게 스페인어와 독일어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스페인어를 가르쳐 주고 싶어 했다. 말이 많은 그녀 덕분에 나는 스페인어를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지금까지도 스페인과 스페인어는 그녀로 인해 친숙하고 기분 좋은 대상이 되었다.




미래가 불확실할 때 만나 서로를 지지해 주던 스페인 친구와 나는 한 시절 동안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내가 귀국 후에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삶에 바쁘고 변화가 생기면서 핸드폰도 메일도 없던 그 시절에 우리는 연락이 끊겼다.



하지만 그녀가 잘 되기를 빌면서 그리워 한다면

그리워 하는 마음이 힘이 되어

그녀가 걸어가는 삶에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









대표 사진 출처

©  Babienochkaphotography,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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