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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Jan 20. 2021

고등학교 때 첫 번째 만우절 날

그리워 하는 마음이 힘이 되어

중학교 다닐 때와는 다르게 나는 조금 엉뚱한 면을 고등학교 때 드러낼 수 있었다.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시험에 합격해 바로 우리 학교에 부임해서 남자 선생님들은 대부분 27~28살, 여자 선생님들은 25살이었다. 학교가 젊은 선생님들로 가득 차 있었고 다른 고등학교와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선생님들은 대학에서 배운 교육학의 이상을 직접 실천해 보고 싶어 했고 첫 부임지라서 애정이 남달랐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할 당시에 전교조에 가입되어 있던 선생님들께서 교단을 떠나게 되고 그 빈자리를 지금의 선생님들이 새로 채우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 때는 얌전하게 또는 내성적으로 지냈지만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는 선생님들의 마음에 힘입어 내 안에 있던 어떤 개구쟁이 모습도 함께 나올 수 있게 된 것 같다.




문학수업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수업이다. 문학 선생님이 너무 잘생겨서 아이들이 좋아했다. 물론 나도 순정 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의 선생님이 매우 멋있고 좋았지만 문학 과목이 재미있고 또 낭만적으로 설명해 주는 선생님이 좋았던 것 같다. 따스한 햇살이 교실 창문으로 커튼을 드리우듯이 들어올 때 교실 안에만 있기 답답한 아이들과 나는 문학 선생님께 야외 수업을 하자고 졸랐고 결국 우리의 응석에 두 손을 든 선생님은 우리와 함께 학교 뒤뜰 잔디밭으로 나갔다  



©  Alexas_Fotosphotography, 출처 pixabay




우리는 동그랗게 둘러앉았고 선생님은 가운데 서서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바람이 솔솔 불어왔고 공기 중에 퍼지는 선생님의 설명과 빙 둘러앉은 우리들의 미소가 어우러져 기분 좋고 행복한 수업으로 기억이 된다. 암기 위주로 공부를 해야 하는 다른 과목들과 달리 문학 수업은 토론도 할 수 있고 선생님이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에게 시간 여행을 시켜 주어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선생님들의 월급날을 알고 있는 우리는 월급날이 되면 과목별로 선생님들께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응석을 부렸다. 처음에 선생님들은 버티다가도 결국 우리한테 져서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고 매점으로 주번을 보내서  오게 했다. 우리 반에서 한 번 사주면 다른 반도 전부 다 사줘야 한다고 선생님은 곤란해했지만, 결국 우리 반에서 선생님은 월급 턱을 내곤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이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여고 시절에 선생님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듯 완벽해 보이는 어른으로 보였나 보다. 초코파이나 하드 등 선생님의 월급날에 얻어먹은 기억이 있어서 지금도 가끔 그 식품을 먹을 때 그때의 기억이 나서 미소를 짓게 된다. 선생님들과 우리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또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오빠나 언니에게 하듯이 즐겁게 지냈던 것 같다.




어느덧 만우절 날이 되었다. 그 전날 만우절 이벤트에 관한 우리들의 여러 가지 안건이 나왔는데  그중에서 선생님의 실내화를 숨기는 거에 아이들의 표가 몰렸다. 모든 선생님들의 실내화가 현관 입구 신발장에 있었고  우리가 한 번에 움직이기 좋았다. 내가 실내화 한 짝만 숨기는 걸로 제안을 하였고 아이들과 합의가 되었다. 나는 신발이 모두 없는 것보다는 하나는 있고 하나가 없는 것이 더 황당할 것이라고 말을 하였고 아이들이 내 말에 동의하였다.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은 선생님들의 신발 한 짝을 빼내어 선생님들이 오시기 전에 학교 곳곳에 숨겨 놓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우리는 교실로 돌아와서 늘 하던 아침의 일상을 하였다. 몇십 분이 흐르고 선생님의 등교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과 나는 교실 창문으로 가서 선생님들이  신발장 앞에서 신발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들과 나는 선생님들과 눈이 마주칠까 봐 창문턱 아래로 주저앉았다가 다시 고개를 빼꼼히 내어서 보았다가 하는 동작을 반복하였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학교에 등교를 하였고 실내화 한 짝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실내화를 찾으러 화단과 학교 이곳저곳을 다녔다. 일부 선생님들은 실내화 한 짝만 신은채 깽깽이 걸음으로 다른 실내화 한 짝을 찾으러 돌아다녀서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만우절 아침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만우절 이벤트로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30분 정도 늦게 들어왔다. 우선 어느 반이 만우절 이벤트를 주도했는지 선생님은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만우절을 주도한 반은 우리 반이었던 것이다. 담임 선생님은 조금은 근엄한 얼굴 표정을 지으면서 왜 만우절 이벤트를 크게 벌였는지 물었다. 웃음기가 없는 선생님의 얼굴에 겁을 먹은 우리는 당황하여서 약간 머뭇거리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고등학교 1학년의 첫 번째 만우절이고 선생님과 우리가 함께 추억할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싶어서 일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설명을 하였다.




담임 선생님은 그러면 우리 반 안에서만 이벤트를 하지 왜 그 이벤트 범위를 크게 벌여서 선생님까지 곤란하게 만들었냐고 다시 물었다. 우리는 선생님께 모든 선생님과 추억을 함께 하고 싶었다고 말을 하고 선생님의 표정을 살피면서 눈치를 보았다. 뭔가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일이 나쁘게 벌어져서 담임선생님이 곤란해진 상황이라고 짐작이 되어서 더욱 마음을 졸였다. 우리가 정말 잘못했다는 생각에 교실 분위기는 일시에 조용해지고 정적이 흘렀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우리는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어 선생님 얼굴을 살피는데 담임선생님은 우리들을 보고 웃고 있었다. 우리들과 눈이 마주치자 큰소리를 내어 선생님이 웃었다. 그제야 우리는 안도의 표정을 짓고 선생님께 원망 섞인 함성을 질렀다.  선생님은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을 놀리고 싶어서 일부러 연기를 한 것이라고 말을 하였다. 그 말씀에 우리는 더 억울해서 큰 소리로 웅성거렸다. 그리고 다 같이 웃었다.




선생님들이 신발장을 열었을 때 실내화가 하나만 있어서 "무슨 일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만우절이라서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왔는데 실내화 한 짝만 없을 줄은 생각을 못 했고 그래도 실내화 한 짝은 있으니까 그걸 손에 들고 나머지 하나는 근방에 숨겨져 있을 것 같아서 열심히 찾았다고 한다. 쉽게 찾는 선생님들이 나오면 그때까지 못 찾은 선생님들은 왠지 쉽게 실내화를 찾은 선생님이 부럽기까지 했다고 한다. 조금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실내화를 다 찾을 수 있었고 교무실에 다 모인 선생님들은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 황당하기도 하고 재미있어서 웃음이 났다고 했다. 그렇게 선생님들께도 우리들의 깜찍한 만우절의 이벤트가 추억으로 남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 어느 학년 어느 반이 주도한 건지 수사반장처럼 선생님들은 탐문에 들어갔고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여 우리 반이 지목이 되고 담임선생님은 조금은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혼내준다고 선생님들 앞에서 큰소리를 내고 우리에게 와서 화난 표정으로 엄숙하게 연기를 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다음부터는 일을 크게 벌이지 말라고 이야기를 듣는 선에서 만우절 이벤트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왜 교장선생님과 몇 분의 선생님의 실내화 한 짝은 안 숨겼냐고 물었고 우리는 나이가 많으셔서 힘드실 것 같아  '특별배려' 를 해드렸다고 대답을 하였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뜻밖의 말씀을 하였다. 신발이 안 숨겨져 있었던 선생님들이 조금은 섭섭해하였다고 한다.




그 후 과목별로 선생님들이 들어와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실내화를 왜 그곳에 숨겨 놓았냐고 푸념 섞인 이야기를 만우절 내내 들었고 그 다음 날까지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말로는 우리들을 혼내면서도 그 말을 하는 선생님들의 표정은 웃고 있었다.










대표 사진 출처

©  Alexas_Fotosphotography,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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