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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Feb 15. 2021

행복의 의미

행복을 꿈꾸는 그대에게

지금도 그렇지만 청춘 시절의 나는 꿈이 많았다. 그 꿈들은 큰 꿈, 작은 꿈으로 나의 마음의 꿈 상자에 한가득 담아 놓았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면 늘 친구들의 꿈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그 꿈에 대해 듣고 "정말 잘 해낼 거야!"라고 응원을 하였다. 친구로 만난 지금의 신랑에게도 나는 그의 꿈이 궁금했고 그래서 그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난 후 그의 꿈에 대해 물어보았던 적이 있다. 그는 나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나는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꿈이야"라고 대답을 했다. 청춘 시절의 나는 그의 꿈이 너무 작아 보여서 다시 한번 그에게 확인을 하였다. 20대 시절의 나는 그에게 내가 생각하는 큰 꿈에서 한 가지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그의 꿈은 소박하고 작아 보였나 보다.


그는 꿈을 묻는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하였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우선 직업이 있어야 해, 매달 일정한 수입을 내가 가져와야 가정이 안정이 되지 그리고 내가 몸도 마음도 건강해야 가족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건 작은 꿈이지 않을까? 나는 큰 꿈을 물어본 거야, 예를 들면 인류를 위해 공헌을 하는 과학자가 된다던가 아니면 정치를 해서 세상을 좀 더 이롭게 바꾼다던가 하는 그런 거."

"나에게 큰 꿈은 행복한 가정이야, 가정이 행복하려면 가족 한 명 한 명이 다 행복해야 해, 나는 그런 가정을 이루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생각하고 그 어려운 것을 나는 해내고 싶어 그것이 나의 큰 꿈이야."


그때 나는 그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의 꿈을 존중해 주었고 멋지다고 말하며 그 꿈을 꼭 이루라고 말해 주었다. 나와 그는 친구에서 연인이 되었고 그리고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되었다.


나는 결혼할 때 서로 계약을 체결하자고 말을 하였고 그는 어떤 계약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그 내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평생 맞벌이를 할 것이므로 가사분담을 정확하게 반으로 나누어서 하고 양가 부모님에 대한 대우도 공평하게 하고 등등 나의 요구 사항은 일반적인 "남녀평등"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그 계약에 대한 공증까지 받을 거라고 말을 하였고 그는 동의하였다.


결혼해서 우리는 신혼집을 서울에 마련할 수 없어서 그의 회사에서 가까운  기흥에 작은 원룸을 얻었다. 시댁의 보조를 받을 수 없었던 우리는 원룸을 대출로 마련하였고 나는 광화문에 있는 회사로 왕복 5시간이 넘는 거리를 사의 배려로 재택근무하기 전까지 3년 동안 다녔다. 긴 통근 시간으로 피곤한 나를 위해 신랑은 결혼 계약서를 무시하고 가사를 전적으로 맡아서 하였다. 일찍 출근하는 나를 위해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을 차렸고 늦게 퇴근해서 오는 나를 위해 먼저 퇴근한 그가 집안을 말끔하게 청소하고 저녁밥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우리의 계약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그는 "결혼 계약서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꿀 수 있어야 더 행복한 결혼 생활이 되는 거예요!"라고 말을 하였다. 나는 그가 빨래해서 말끔하게 다려주는 블라우스를 입고 회사를 다녔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재택근무를 할 때도 그는 퇴근해서 오면 아이를 본인이 전적으로 돌보았다. 밤에 아이를 데리고 자는 사람은 그였고 내가 웹디자인 업무를 하느라 하루 종일 아이 우유병을 못 씻어 놓으면 그가 아이를 업고 우유병을 씻어서 소독도 말끔하게 해 놓았다. 그리고 그는 집안을 청소하고 부엌을 치우고 나서  나에게  안방에서 혼자 편안하게 잠을 자라고 하면서 그는 아이와 거실에서 잠을 잤다.



개월 수가 어린 아가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우유를 여러 번 먹는다는 사실을 나는 전혀 몰랐다. 몇 년이 지나서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 주말에 "인간극장"을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이 많은 집이 나왔고 새벽에 아가가 깨서 우유를 먹이는 것을 본 나는 그에게

"자기야 저 집 아가는 이상해요, 왜 새벽에 일어나서 우유를 먹지?"라고 말을 하니 그가 나에게 "자기야 우리 아가도 새벽에 일어나서 여러 번 우유를 먹었었어요, 아가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우유를 먹는 것이 당연해요."라고 대답을 해서 내가 너무 놀란 적이 있었다. 나는 왜 나에게 그 이야기를 진작에 하지 않았는지 그를 나무랐다. 내가 밤에도 육아 분담을 해야 했던 것 아니냐고 그에게 말을 했다.


그는 한 사람만 고생을 하면 되는 일을 왜 자기까지 고생을 하게 하냐고 그럴 수 없었다고 말을 했다. 그는 낮에 아가를 돌보면서 회사 업무를 보는 내가 밤에 잠을 잘 자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고 남자는 체력적으로 더 튼튼해서 새벽에 아가를 돌보느라 밤을 새워도 괜찮다고 대답을 하였다.


내가 건강이 나빠져서 맞벌이를 그만두고 3년 정도 병원 치료를 받았다. 그는 내가 병원에 치료받으러 갈 때마다 단 한 번도 혼자 택시를 타고 가게 하지 않았다. 그는 회사에서 어떻게 해서든 외출해 나와 함께 병원에 갔다. 내가 아픈 그 시기에 그는 나를 외롭게 하지 않고 곁에 묵묵히 있어주었다. 지금은 전업주부인 나는 집안일을 내가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그에게 살림을 배워서 열심히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음식물 쓰레기나 재활용 분리수거 그리고 욕실 청소 등 힘들고 지저분한 것은 나를 못하게 해서 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는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고 늘 나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내가 그에게 지금은 맞벌이가 아닌데 왜 집안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물으면 살림은 힘이 더 센 사람이 더 많이 하는 것이 맞다고 대답을 한다. 가족은 어떤 것을 계산해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맞게 상대방을 배려해서 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그는 본인이 힘이 더 세고 튼튼하니 힘든 일은 자기가 더 많이 하는 것이 맞다는 이론이다.



나는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보기에 꽤 괜찮은 것이 큰 꿈이라고 생각을 했고 행복은 그 꿈이 이루어졌을 때 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꿈이라고 말하는 "행복한 가정"에서 행복은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과 비교하고 내가 덜 가짐에 슬퍼하고 더 가졌음에 기뻐하는 행복이 아니라 서로 배려하고 챙겨주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에서 오는 따뜻한 행복이 삶에서 진정한 큰 행복이지 않을까.







대표 사진 출처

©  congerdesignphotography,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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