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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Tree Dec 15. 2021

사막에 내리는 비

드디어 비가 온다.  이런 장대비는 정말 얼마만인가!  


올해 여름 캘리포니아의 가뭄은 126년 만에 최악이었다. 이런 극한의 가뭄은 식수 공급과 작물 생산, 댐을 통한 전력 생산 등을 위협하고 최악의 대형 산불 시즌에 일조를 했다. 


올여름 미국에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미국 역사상 가장 더웠던 1936년의 '더스트 볼(Dust Bowl) 여름'과 맞먹는 더위가 덮쳤고 캘리포니아 역시 올해 역대 가장 무더운 여름을 겪었다. 이런 캘리포니아의 대가뭄으로 8월에는 호수가 말라붙어 수력 발전소 가동이 중단되었고 모든 주민이 물 사용을 15% 줄이는 운동에 동참해야 했다. 타들어갈 듯 뜨거운 태양과 그 건조함 그리고 예전과 다른 습한 더위에 에어컨만 껴안고 5개월간의 긴 여름을 지내야 했다. 


나는 오늘 같은 비를 작년부터 기다려왔다. 


작년 10월 27일, ‘악마의 바람’으로 불리는 샌타애나 강풍을 타고 발생한 거대한 산불이 우리 동네까지 번져왔다. 대낮에도 하늘은 붉어졌고 재가 눈 온 듯 쌓였고 스모그와 연기로 집안에도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다. 일부 도로가 폐쇄되고 급기야는 강제 대피령이 내려졌다. 무엇을 챙겨야 할지 당황한 채 서류가방, 테블랫, 핸드폰, 지갑, 자동차 키만 들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길은 자동차로 꽉 막혀있었고 연기와 재로 가려진 시야를 뚫고 옆동네 호텔로 대피했다. 그리고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와서도 쌓인 재와 메케한 공기로 며칠을 고생했다. 붉은 하늘, 연기와 재 그리고 집안의 매캐한 공기를 씻겨줄 비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나 그때도 비는 오지 않았다. 


차를 타면 흘러간 옛 노래를 들려주는 라디오 스테이션을 듣는데 12월 한 달간 크리스마스 캐럴을 매일 하루 종일 틀어준다. 그런데 내가 사는 곳은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섭씨 32도의 무더운 날씨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에어컨을 쌩쌩 돌리면서 듣는 캐럴은 정말 생뚱맞고 맛이 없다. 눈은 고사하고 비라도 내려주면 캐럴에 나오는 겨울과 눈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조금은 느껴볼 텐데 싶었다. 나는 그렇게 비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오늘 비가 온다.   


비가 오면 모든 게 선명해진다. 창밖 나뭇가지와 잎사귀도 더 가까이 다가온다. 내 안에 춤추던 여러 생각들이 가라앉고 마음이 고요해진다. 그리고 내리는 저 빗소리에 내 마음도 흘러 오랜 기억들과 흩어졌던 날들이 그리워진다. 친구들과 서울의 그 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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