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 율리시즈 Jun 05. 2017

겨울도시 에딘버러

런던과는 또다른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버러 전경


'에딘버러(Edinburgh)'만큼

겨울을 비켜가고 싶은 도시가

어디에 있을까?

겨울에 거기 가보면

무의식적으로 겨울에만 또

가고 싶은 도시가

어디 있을까?


+++
이 스코틀랜드의 수도는 중독성을 품고있다. 에딘버러의 중심가 프린스의 거리에서 고개 올려 바라보는 언덕 위 고적한 고성은 북쪽의 추운 도시 에딘버러의 최고 별미다. 커피를 마시든, 차를 마시든, 술에 취하든, 바로 이 풍경은 이 도시의 상징이며 압권이다. 그래서 살을 에는듯한 추운 새해벽두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든다. 그리고 폭죽과 함께 고성을 바라보며 스코틀랜드 노래 '올드랭자인'을 손에 손잡고 노래한다. 런던은 테임즈 강을 앞에 두고 둥글둥글 멋없는 '런던 아이(London Eye)'에서 수많은 폭죽만 툭툭 터떠리지만, 에딘버러는 언덕위의 고성을 배경으로 해서 몇개의 폭죽을 톡톡 터떠리더라도 운치있다. 굳이 새해의 폭죽을 보지않더라도, 고성 뒤편을 배경으로 한 하늘에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뭉쳐있으면 그것도 볼만하다. 왜냐하면 이 우중충함이 에딘버러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이상하지만 이게 이 도시의 본모습이고 잿빛 하늘은 에딘버러답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거기에다 독한 스카치 위스키를 한잔 걸치면 구름과 성과 건물들은 모두 한 색깔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중독성이 강하다. 이런 우중충한 분위기가 굳이 싫다면 특유의 강한 악센트와 궂은 날씨만큼 무뚝뚝한, 스코틀랜드인의 이미지와는 잘 어울릴것같지 않은, 빛바랜 고색창연한 옛 건물들이 구석구석에 늘어 서있는 좁은 구시가(Old City)를 이리저리 할일없이 걸어도 괜찮다. 귀신이 어느 골목에서 불쑥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니 조심하라. 이 골목들이 적어도 몇백년은 되었으니 말이다.


난 에딘버러를 생각하면 항상 한숨쉬던 기억이 먼저 난다. 시내 중앙의 '웨이블리(Waverley) 역'을 떠나 1시간도 더 가야하는 조그만 타운의 대학으로 떠날때마다 항상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쉬었다. 그리고 에딘버러로 다시 오는 날을 머리속에 계산하며 희망과 위안으로 삼았다. 기차가 떠나기도 전에, 그 기차를 다시 타고 오는 날만을 꿈꾸었으니... 사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기분이 그럴까? 그러나 학기를 끝내고 또다시 에딘버러의 중앙역인 이 웨이블리 역에 기차가 도착하면 안도의 한숨은 절로 터져 나왔다.


"휴..."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성위로 툭툭 날려보내고, 에딘버러 구도시와 성으로 마냥 쏘아다녔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이곳 중국 레스토랑에서 오랜만에 포식하며 거나히 만족감을 느꼈다. 아, 드디어 문명세계에 왔구나! 나에게 에딘버러는 문명의 세계였다. 잘 먹는 것도 문명이라며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배 뿐아니라 정신도 함께 포만감을 느꼈다. 누가 배부른 돼지를 감히 욕하랴? 나중에 중국식 부페가 바로 이 웨이블리 역위에 생겨서 더 좋았다. 마음껏 먹자. 살면 얼마나 산다고! 에딘버러는 그렇게 '포기'를 도와주던 사이코테라피(Psychotherapy)의 도시였다.

‘월트 스콧(Walter Scott)’경의 소설 이름 '웨이블리(Waverley)'에서 따온 이 오래된 역 이름은 사실 영국 식민지 곳곳, 타운과 거리의 이름으로도 지어졌다. 그곳 사람들도 이곳 에딘버러성 아래 계곡에 있는 기차역을 알까? 미국에도, 호주에도, 캐나다에도, 뉴질랜드에도... 심지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도 이 웨이블리라는 이름이 불리고 있다고 한다. 역사소설 이름 하나만으로 잉글랜드 지명의 홍수속에 그렇게 스코틀랜드인의 족적을 전세계 식민지에 남겼다.

작은 주먹돌들이 토돌토돌 깔린 구시가 골목들을 거닐며 가끔 에딘버러와는 뗄레야 뗄수 없는 '이안 란킨(Ian Rankin)'작가의 소설에 나오는 '검사관 리버스(Inspector Rebus. 형사 리버스)'를 떠올렸다. 사시사철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사이코 범인을 쫒던, 육두문자 걸쭉한 이 형사의 어두운 피부처럼 우울한 거리였다. 이렇게 옛 정취가 묻어나는 골목에서 그런 끔찍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난다는 것도 이해가 안갔다. 소설은 역시 거짓말일까? 아님, 날씨탓으로 돌려 버릴까?

에딘버러를 조명하는 많은 영화들은 어떤가? 1996년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이 개봉돼었을 때 보았던 그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인공조미료로 가공되지 않은 날(Raw)영화였다. 그래서 아주 불편했다. 그러나 에딘버러의 거리를 질주하던 마약쟁이 마크(이완 멕그리거 분)는 그 시대 영국 젊은이들의 초상이었다. 정확히는 대처 정권 말기 모든 젊은이들의 우울한 초상이었다. 압제(?)의 대처 시대를 종말하며 '존 메이저' 총리가 나날이 시들어 가던 보수당의 말미를 하루하루 버티며, 곧 새시대 새세상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의 탄생을 기다리던 바로 그해(1996년)였다.

이런 범죄와 마약은 사실 에딘버러의 이미지와는 잘 안 어울린다. 미안하지만, 오히려 인구가 훨씬 더 많고 서민계층이 대다수인 대도시 ‘글라스고’에 더 맞는 것같다. 그래서 20년만에 그 오리지날 영화팀이 다시 뭉쳐 만든 '대니 보일' 감독(런던 올림픽 개폐회식 예술감독)의 '트레인스포팅 속편(T2라고 한다)'의 대부분을 에딘버러가 아닌 글라스고에서 찍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이 두 스코틀랜드의 라이벌 도시들은 그 이미지도 많이 다르다. 지금은 아니지만, 글라스고는 거대한 공업도시였고 에딘버러는 상업과 문화의 도시였다. 에딘버러는 자신만의 스코틀랜드 엑센트를 쓰지만 영국에서 존경받는다. 반면 글라스고 엑센트를 쓰면 은근히 내려본다. 잉글랜드와 달리 계급차이가 별 없는 스코틀랜드에서도 계급은 이렇게 암암리에 존재하고 도시와 도시의 이미지도 이렇게 상이하다. 억세게 잉글랜드와 다름을 강조하는 스코틀랜드인에겐 에딘버러는 그들 수도일 뿐 아니라 자부심의 상징이다. 이런 범죄와 마약은 소설과 영화의 이야기일뿐이라 믿고싶다. 그리고 이 자부심은 지성과 문화로 떠받쳐 준다. '해리포터'의 저자 J. K. 롤링이 런던을 놔두고 '왜?' 에딘버러에 정착했는지... 에딘버러의 카페에서 식어가는 커피를 홀짝이며, 프램의 아기를 가끔 흔들며 '어떻게?' 해리포터의 마법을 썼는지 에딘버러를 가보지 않곤 말할수없다.

고생하더라도 겨울의 에딘버러가 나에겐 운치있다. 하지만, 에딘버러하면 빼놓을수 없는게 사실 여름축제이다. 해마다 한여름 8월에, 그것도 무려 한달 동안이나 열리는 에딘버러 축제는 에딘버러가 전세계에 내노라하는 컷팅에지 문화의 도시임을 알려준다. 이 축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하며 이 기간 동안 호텔방 잡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사실 별을 딸수는 있지만 값이 만만치 않을게다. 매 6월경 열리는 윔블던 테니스 경기대회 중 런던 윔블던 동네와 같다. 말로만 듣고 한번도 가본적없는 이 에딘버러 축제는 텔레비전으로, 신문으로, 잡지로, 한달동안 계속해서 비평을 보탠 뉴스로 쏟아져 나오며 여기의 많은 프로그램들도 동시에 소개되기에 영국 어디 살더라도 이 축제를 피해 갈 수없다. 여기 축제에서 뜬 무명 예술가들과 코메디언들 그리고 나중에 유명해진 작품들도 수두룩하다. 우리나라의 '난타'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18세기 후반부에 에딘버러는 '스코티쉬 계몽주의(Scottish Enlightenment)'의 중심지였으며 세계 지성계를 리더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프랑스 지성 중심이었던 것과 비교된다. 영국 경험주의 학파의 데이비드 흄과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한 '국부론' 저자 아담 스미스 등도 여기서 공부하며 거주했다. 그러고 보니 먹물들은 에딘버러를 사랑한다는 말은 사실이다. 데이비드 흄은 다른 악센트를 쓰는 스코틀랜드인을 언급하며 잉글랜드인과 비교했다. 혹시 그는 우중충하고 우울한 날씨땜에 기존의 '신존재 증명'에 회의를 가졌을까? 어쩔수 없는 라이벌 의식, 우월감과 열등감이 교차하는 이런 묘한 감정은 이 대철학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18세기 에딘버러 지성의 여파는 19세기 후반까지 이어져 미국 철학자 '윌리암 제임스'가 스코틀랜드 대학들의 유명한 '기포드 강연(Gifford Lectures)'초청연사로 강연하러왔을 때, 이 지성의 중심도시에서 강연함이 얼마나 영광스러웠으면 손에 땀이 나며 엄청 긴장하고 떨렸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붙인 에딘버러의 별명, '북유럽의 아테네'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그 지성의 중심에 에딘버러 대학이 있었다. 이 대학은 대대로 포쉬(posh)한 상류층이 가는 대학으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영국에선 이런 금수저 대학생들을  'Ya' 라고 하거나 'Rah'라고 경멸과 질투를 섞어 부른다. 에딘버러 대학은 그중의 하나였다. 구시가(유네스코 세계유산) 곳곳에 있는 이 대학의 고풍스런 건물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관광자원이며, 이곳이 역사가 오래된 대학임을 금방 눈치챈다. 유명한 대학이니만큼 기부금도 엄청 많은(해리 포터의 저자도 엄청 기부했다), 옥스브리지와 맞먹는 영국의 떵떵대는 부자대학이다. 그럼에도 옥스포드와 캠브리지가 영국 성공회 자녀만을 입학시키고 다른 종교의 자녀는 아무리 우수해도 선발하지 않던 중세같은 시절에도 에딘버러 대학을 비롯한 몇몇 대학들은 종교를 따지지도 않았거니와 세계 곳곳에서 온 식민지의 다른 인종들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앞서가고 열린 개념의 대학다웠다. 특히 찰스 다윈이 머문 에딘버러 의대는 명성이 자자했고 의학발전에 이바지한 공으로 치면 어느 의대에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에딘버러 의대의 입학점수는 자주 옥스포드나 캠브리지를 넘어선다. 또 영국이 여러 식민지를 경영하면서 이 대학 특유의 우수한 커리큘럼도 여러 곳에 전파했는데 캐나다에서 제일 유명하고 포쉬한 맥길 대학은 에딘버러 대학을 아예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에딘버러 성에서 내려오면 바로 웨이블리 역 가까이에 우뚝 서있는, 혹 아테네 언덕의 '파르테논 신전'을 그대로 옮겨 놓았나 할 정도로 흡사한, 네오-클라식 건물인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이 보인다. 규모는 런던의 내셔날 갤러리와 비교해 작지만 결코 녹록치 않은 소장품들을 자랑한다. 하여튼 미술사에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은 거의 소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엘 그레코니, 티치아노니, 고갱이니, 모네니 하는 이름만 들어도 알수있는 화가들의 작품들도 어떤 경로를 통해 구입했는지 멀리 이곳 북유럽의 수도에서 전시되고 있다.  철학뿐 아니라 예술도 만만치 않음을 에딘버러는 자랑하려는 것일까?

그래서 에딘버러는 스코틀랜드의 정치적 수도일뿐 아니라 문화의 도시, 관광의 도시 그리고 대학의 도시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게 금융중심지이기도 하다. 영국의 큰 은행들, 특히 빅 4은행들(HSBC-Hong Kong Shanghai Banking Corporation, HBOS-Halifax Bank of Scotland, Lloyds, RBS-Royal Bank of Scotland)이 다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독립투표전에 영국은행들이 진 빚(국민 혈세로 살린 은행들)을 스코틀랜드가 다 갚아야 한다고 잉글랜드인들은 위협했다. 왜냐면 큰 은행들 대부분이 연고지가 이곳이기 때문이다. 루머로만 떠돌았던 말, 즉 잉글랜드인들이 식민지를 정치와 군대로 점령하면, 스코틀랜드인들은 경제적 착취를 담당했다는 못된 낭설이 사실인듯 스코틀랜드인들은 경제에 눈이 밝았고 나라 규모에 맞지않게 영국경제에 공헌을 했다.

이런 잉글랜드와의 정치적, 역사적 그리고 감정적 애증의 관계를 떠올리면 사실 복잡하다. 그런 복잡함이 에딘버러를 더 우중충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그래도 에딘버러는 영국 도시중에도 런던에 여러모로 맞설수있는 도시이며 꼭 가볼만한 도시이다. 런던과는 뭔가 다름을 직접 여기에서 경험하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london/115

https://brunch.co.kr/@london/138


에딘버러 전경
철학자 데이빋 흄
철학자 흄의 동상. 그의 오른쪽 발가락은 로마 바티칸의 베드로 성상의 발처럼 닳아있다. 만지면 그의 명석한 '머리'를 다운로드 받을 수있을까?
에딘버러의 옛 건물들이 즐비하다. 뒤의 왼쪽 탑이 성 자일스 성당이다.
에딘버러 야경.
매거진의 이전글 '번즈 나이트'엔 하기스를 먹고 스카치 위스키를 마시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