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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Mar 25. 2018

당나귀도 귀를 열어두었다...

예루살렘 입성 그리고 성주간의 시작

예루살렘 입성 by Duccio di Buoninsegna

당나귀는 그 날 그렇게 우연하게 목격하게 되었다. 사실, 자신에겐 우연이었지만 선택되어 복된 그 당나귀는 "그" 분을 등에 태우고서 그 날 그 시각, 그렇게 예루살렘 성안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시끄러운 환영 인파속 신비로이 빛나던 오라로 덮인, 사랑을 오롯이 가슴에 품으신 바로 "그" 분을 등에 고이 모시고서 다윗의 도성으로 입성한 그 날이었다.


"호산나..."


종려나무 가지가지 꺾어 흔들며 "그" 분의 입성를 환영하는 인파가 거리거리 흘러넘치던 그 날이었다. 그 시끄럽던 성읍에 몇 일간 침묵이 흘렀다. 너도. 그리고 나도. 그 아무도 소리내지 않았다. 힘차게 종려가지 흔들던 그 손들도 거기에 없었다. 다들 움츠려 어디 숨었을까? 예루살렘 거리엔 공포만이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침묵하고 숨죽이던 손들은 성금요일(Good Friday) 다시 거리에 나타났다. 종려나무 흔들며 따뜻이 환영하던 손들이 이제 핏발세우며 분노하는 차가운 손이 되었다. '십자가에 못박으라' 삿대질해대며 고발하는 주먹이 되어 있었다.


시간은 무죄를 주장한다. 평화와 폭력은 똑같은 손, 똑같은 마음에서 나왔다. 그날 "그" 분이 힘들게 지고 가셨던 그 십자가는 폭력 바로 그 자체였다.


"십자가..."


지상과 천상을 관통하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매듭짓는.

나와 너가 화해하는. 그래서 폭력을 평화로 바꾸는 그 기적의 십자가.


시간은 무죄다. 지상의 예루살렘을 걸어 천상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주간이다. 십자가를 묵묵히 짊어지고 예루살렘의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구비로 돌고돌아 천상의 예루살렘으로 훨훨 올라가신 "그" 분과 함께하는 거룩한 순례이다.


그렇다. 이 성주간은 기꺼이 각자의 십자가를 질 시간인 것이다. 시간이라고 다같은 시간이 아니다. 성주간은 죄에서 무죄로 가는 고통의 여행이며 어둠속에서 빛을 찾아가는 시간여행이다.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건 '임마뉴엘'뿐만은 아니었다. 800년의 장구한 세월이 흐른 뒤 예언자의 예언대로 베들레헴 구유의 구세주를 목격한 그 당나귀는 "알아 보았고", 그 날 그렇게 터벅터벅 걸었던 예루살렘의 그 당나귀는 "알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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