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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Mar 29. 2018

감히 남의 발을 씻겨줄 자격이 있는 것인지?

성주간-성목요일

Boccaccio Boccaccino, Gallerie Dell' Accademia, Venice, Italy


오늘은 성목요일이다. 성삼일(Holy Triduum)의 시작이다. 주의 마지막 만찬(최후의 만찬)이 첫 미사성제가 되고 이후 '이를 행하여라(고린토 전 11:2-26)'란 주님의 분부대로 미사를 계속 올리는 그 기원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다만 미사만 제정된게 아닌 미사중의 '세족례'를 통해 사제의 본분을 다시한번 되새기는 날이다. 봉사와 섬김이라는 거룩한 직무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오늘은 사제의 날이기도 하다.


가끔 세족례 복음말씀 중에 베드로의 강한 부정이 떠오른다. 왜 그는 예수님이 그의 발을 씻기시려하자 "절대로(Never)"라며 안된다고 했을까? 무엇이 그를 또 "절대 제 발만은 안됩니다(You shall never wash my feet. John 13:8)"라며 또다시 강하게 거부했을까? 샌들을 신고 먼지가 풀풀나는 예루살렘의 거리를 걸어서 더러워진 자신의 발을 보여주기 민망했을까? 복음에서 보여주는 털털하고 다혈질적인 그의 성격으로 봐선 아닌것 같다. 그럼 진정 존경하는 예수님의 가까운 제자로, 스승이 가장 미천한 몸의 일부분인 발을 씻긴다고 하니 도리상 절대 안된다고 했을까? 그러나, 곧 세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딱 잡아 뗄 그의 미래를 무의식으로 표현할까? 아님, 그냥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이 세족례의 의미를 몰라서 그랬을까?


베드로의 거부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요한 13:8)” 한국 성서로 자세히 읽어보니 뜻이 좀 이상한 것같다. 특히, '몫(share)'이란 단어가 나와 영적으로 또는 물질적으로 '주고 받는'의 의미로 해석되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다양하게 번역된 영어 성서 구문을 접해보면 본뜻에 좀 더 가깝게 갈수 있다. 대개 그 뜻은 "Unless I wash you, you have no part with me."로 의미된다. 이 세족례를 받음으로서 그리스도가 하신 지상에서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둘 사이에 '공통점과 연결선'이 있으며 후에 사도 바오로가 말씀하신 그리스의 '신비한 몸(mystical body)'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도로서 그리고 첫 교황으로서, 그리스도를 지상에서 대표하는 그분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사제로서, 그 '의무와 책임(duty + responsibility)'을 다해야 하는 '본분'이  여기에 뚜렷이 나와 있다. 영어권 가톨릭 교회가 사용하는 예루살렘 성서에도 "If I do not wash you, you can have nothing in common with me"로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이 세족례를 직접 그리스도께 받음으로 또 다른 이들에게로 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나(그리스도)와 공통점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신 그분의 의중을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렇다. 사제의 직무는 봉사와 섬김이라는 것이다. 미사중의 세족례는 그 고귀한 뜻을 다시 되새기는 것이다. 일년에 한번씩, 혹시나 잊어버릴까 고맙게도 이 세족례는 꼭 치러진다. 살아가면서 제 발도 제대로 씻지 못하는 어정쩡한 날들을 기억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다. 서투르게 앞치마를 두르고 양쪽에 복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나중에 손씻을 물까지 부어주는 편안한 '발씻김'이지만 그 본뜻은 이렇게도 깊고 신비하다.


다혈질적이고 성급한 베드로가 "Never"라고 거부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같다. 내 발은 제대로 씻고 사는지? 그 씻김을 제대로 못해 부끄럽게도 나의 지저분한 맨발을 내밀어 보여주기 싫어 강하게 부정하는 건 아닌지? 어느날 불쑥 그분이 나 앞에서 발을 씻기겠다고 하면 과연 내 발을 내밀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러면...

감히 남의 발을 씻어줄 자격이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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