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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애 Jan 20. 2022

얼른 먹고 쉬어

게임 그만보고 밥 먹어 아들




소파는 무조건 푹신해야지. 새로 들인 소파를 등받이 삼아 기대어 말했다. 신혼살림으로 들여온 소파는 이사 오면서 버린 것도 아니고 3년 전 즈음엔가 처분하고 없이 산 게 더 오래되었지만 남편 기억에는 휘발되지 않고 핵심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나 보다. 소파를 홧김에 버린 거, 인정한다. 딱딱한 소파에서도 잘만 누워있던 남편을 보는 내 속이, 심장이 딱딱해져서 어떤 제스처라도 취하지 않으면 터져버릴 것만 같았고 소파는 그 원흉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결되었느냐. 스포 당하지 않아도 짐작되는 결말이 있다. 우리 집  드라마에 반전이 없던 것처럼.





남편은 티브이와 스마트폰 없이 못 살 듯하다. 물론 나도 그렇지만.. 내가 견디지 못하는 지점은 아이 앞에서 휴대폰만 하는 거였다. 남편은 내 맘대로 게임도 못하냐고 했지만, 쉽사리 양보되지 않았다. 안 보고 말지. 눈 감고 밥을 뜰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집에 들어와 저녁이 차려지기 전까지 거실 테이블 앞에 자리 잡고 리모컨부터 찾았고, 뒤이어 스마트폰 게임 삼매경이니 아이의 눈은 티브이에 한 번 현란한 아빠의 손놀림에 두 번 고정되고 내 눈은 아이에게 고정됐다. 백번 양보해서, 텔레비전 보며 밥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편은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게임을 했다가 잠시 폰을 놓고 밥을 와구와구 먹다가 다시 게임을 하고 TV 좀 봤다가 밥을 또 뜨고.. 자유인가. 그래, 티브이 켜놓고 게임하면서 밥 먹을 자유! 근데 그걸 왜 아내와 아이가 있는 집에서만 할까. 자유롭고 싶다면 시댁에서도 친구들 모임에서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집에서만 그랬다. 아, 아니다. 집은 편안해야지, 그래 그래야지.





잔소리하는 아내 뭐가 예쁠까. 예쁨 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나중에 시간 날 때 탐색해보기로 하고 남편 입장이 되어보기로 했다. 해 뜰 때 출근해서 해지면 퇴근하는 일상. 일에 절고 사람에게 치여서 돌아온 집. 배도 고프고, 피곤하고. 힘들게 일하는데 밥 차려줘야지. 김치찌개를 먼저 내놓고 좀 더 졸여야 하는 닭안심 조림을 위해 주방으로 갔다. 다 된 반찬을 그릇에 담아 거실로 가니 아이가 후다닥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아빠 등 너머로 게임 구경하다가 엄마 눈치를 살핀 거겠지. 너는 게임 보지 마~ 밥 먹자. 다 큰 성인 (누군가의 아들인) 남자에게 게임 그만하고 밥 먹어라는 말은 삼켰다. 해봤자.. 과거의 데이터가 나를 말렸다. 원래 그랬잖아. 계속 저럴 거야. 내버려 두자. 밥을 다 차려도 게임을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얼른 먹고 들어가서 쉬어. 방에 들어가서 편하게 해.





그 말을 듣고 남편은 폰을 내려놓았다. 어제저녁을 먹으면서 함께 뉴스를 보는데 아이가 공학도가 되었으면 좋겠다기에 그러려면 휴대폰부터 내려놓아야 할 것이라고 (이미 어제도 얘기) 했던 터였다. 법륜 스님은 아이 아빠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아빠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엄마가 더 나쁘다고 하셨는데. 그 얘기를 들으며 아이 앞에서 스마트폰만 계속하는 것보다 그걸 나쁘다고 얘기하는 나 때문에 아이가 나쁜 영향을 받을 거라는 논리가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그래도 저건 나쁜 영향을 미칠 거야. 답을 정해놓고 보니 다른 해답이 없다. 어차피 남편은 브롤스타즈의 새로운 캐릭터를 계속 생성할 테고, 그걸 다 깨면 (깨는 날이 올 지 모르겠으나) 다른 게임을 찾을 것이다. 아이가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날이 오는 게 두렵다. 현재를 살지 못하고 시간만 죽이며 나이를 먹게 될까 봐. 아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게임만 할까.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생각하자.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생각뿐이다. 해야 할 일 하고 하면 괜찮지 않나. 육퇴를 하고 유튜브를 보는 나처럼.. 남편도 꼬박꼬박 출근 잘하고 회사 착실하게 다니고 있으니 게임이 뭐가 대수랴. 게임을 죄스럽게 만드는 내 잘못이 더 크다. 내일 저녁 밥상에서도 이렇게 생각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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