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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11. 2020

환상의 4인조를 꿈꾸는, 환장의 4인조!

그래도 축복이고, 행운이고, 기적인 날들

첫째를 임신했을 때, 5개월이 가까워졌던  어느 날 초음파를 보던 의사가 넌지시  아들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말을 해주었다. 사실 의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라도 초음파상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아들임을 증명하는 것이 보였다. 초음파 사진의 각도가 너무 절묘해서 그냥 봐도 아들이구나 싶었다. 나는 아들이든 딸이든 성별에 관계없이 무작정 기뻤지만, 신랑은 내심 딸을 바랐던 건지 아주 짧은 순간에 얼굴에 아쉬움이 비쳤다. (지금은 아주 아들바보가 되어서 아들과 껌딱지처럼 붙어 다닌다만!)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드러내 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첫째가 아들이니 둘째는 딸이었으면 싶었다. 아니라도 상관없이 귀하게 받을 생명이었지만 그래도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초음파를 보는데  '딸이구나!' 싶었다. 두 아이 모두 어쩜 그렇게 절묘한 각도로 자신이 아들이라고, 딸이라고 무언의 언질을 주던지!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기뻤지만, 한편으로 조금 두렵기도 했다. 아들 하나 딸 하나라니, 마음으로 그리던 꿈이 이루어지다니! 이건 뭔가 나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꿈이 아니라 신이 있어서 선물처럼 이루어준 꿈인 것 같아서 기쁜 한 편에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던 것 같다.

'내가 특별히 잘하고 산 것도 없는데 내게 이런 축복이 온다고? 대체 왜?'  

그런 의문 속에서 혹여나 나의 섣부른 기쁨이 신이 준 선물을 앗아갈까 봐 터져 나올 듯한 기쁨을 애써 숨기며 출산을 기다렸다. 봄이가 태어나고 나와 신랑은 각자가 목욕탕에 손잡고 들어갈 수 있는 아이들을 하나씩 얻었다. 나는 그렇게 우리 네 사람이 가족이 되어 환상의 4인조가 될 줄 알았다.



우리가 네 식구가 된 지 오늘로 501일, 우리는 환상의 4인조는커녕 환장의 4인조가 되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신랑은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간 육아휴직을 내어놓았었다. 이미 휴직 중이었던 나에 이어 신랑까지 동반 휴직을 하기로 했던 것은 두 아이 모두 예민하고 섬세한 감정선을 타고 난 아이들이라 양육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육아휴직을 할 계획이 있던 신랑은 두 아이의 육아로 지쳐가던 나를 보며 동반 휴직을 제안했다. 아이가 둘이니 어른도 둘이라면  조금은 낫겠지 싶었다. 또 아이들이 더 자라기 전에 함께 여행도 다니며 더 많은 추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엄청난 마이너스를 안게 되겠지만 아끼고 살면 6개월이니 못할 것도 없겠다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환상의 4인조로 거듭날 기대와 계획을 갖고 동반 휴직에 들어갔다. 하지만 역시나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우리 부부의 계획에는 엄청난 차질이 생긴 것이다.

여행은커녕 현관 밖으로 나서기조차 어려운 시기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집안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나는 네 식구의 삼 시 세끼를 챙기다 지쳐갔고,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더 예민해졌다. 신랑은 처음 하는 온종일 육아에 지쳐 넋 놓고 앉아있는 순간들이 많았고, 나는 그런 신랑에게 자주 화가 났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의 날 선 대화 속에서 아이들은 더 자주 울었고 더 자주 짜증을 냈다. 넷이 함께 있는 것이 기쁜 순간보다 힘든 순간들이 더 많았다.



코로나가 전보다는 잦아들고 정부 방침이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바뀌면서 우리 넷은 무더위에도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여분의 마스크와 손소독제까지 챙겨 매일 집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두 아이 모두 일찍 일어나는 터라 밥만 먹고 집을 나서서 공원이나 동물원, 바닷가를 찾아갔다. 평일 이른 오전이라 그런지 어디에도 사람이 없었다. 두어 시간이라도 아이들은 마스크가 다 젖을 만큼 맘껏 뛰놀고 나면 확실히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지는지 짜증을 덜 냈다.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 내 마음에도 숨구멍이 트였다. 신랑도 집에서 아이들의 짜증을 받아내는 것보다 마스크에 땀이 차도록 뛰고 걷는 것을 덜 힘들어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평화롭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종종 생겼고 아주 가끔은 머지않은 날에 우리가 환상의 4인조가 될 듯한 기대를 품게 되었다.




섣부른 기대는 역시나 독이다.

동생에게 엄마를 뺏긴 것도 모자라 원래 저 혼자 갖고 있던 것을 모두 공유해야 하는 사랑이는 오늘도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봄이가 어제 다이소에서 사 온 제 공룡 피규어를 만졌다며 울부짖었다. 공룡 피규어를 가지고 놀더니 진짜 공룡이 되려는 걸까?


부쩍 호기심이 강해진 봄이는 위험한 일에 마구 뛰어들었다가 엄마 아빠에게 저지당하고는 오늘도 수시로 뒤로 넘어가며 운다. 식탁은 밥 먹는 곳이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왜 잠시의 틈만 생기면 식탁 위에 올라가 있는 건지!


하루에 물놀이는 몇 번을 하고, 몇 번의 옷을 갈아입는 건지 빨래는 산더미처럼 쌓였고, 미처 식기세척기에 넣지도 못한 그릇들이 개수대에 가득하다. 정리 좀 하려고 하면 어찌 알고 엄마 아빠를 찾아대는 두 껌딱지의 소리에 우리 부부는 오늘도 퇴근 없는 육아로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우리 넷은 오늘도 환상 근처에도 못 가보고, 환장할 하루를 보냈다.



그럼에도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이 슬프거나 불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환장할 날들이라도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 넷이 똘똘 뭉쳐 매일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누구 하나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매일 아침을 맞이한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우리 네 사람이 가족으로 맺어져 힘든 순간 속에서도 같이 웃을 수 있는 틈이 있다는 건 대단한 기적이다.


축복과 행운과 기적 속에서 언젠가는 환상의 4인조로 거듭날, 먼 미래의 우리 네 사람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사람 없는 시간과 공간 찾기, 이른 아침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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