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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Nov 03. 2015

브뤼헤에서 만난 암스테르담 여행가 이야기

벨기에의 추억 vol.10


브뤼헤에서 있었던 일이다.



브뤼셀에 도착한 지 두 시간 만에 

다른 도시로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어쩌면 브뤼셀 잘못도 아니었고 그 날의 먹구름 가득한 날씨 탓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무작정 파리에서 브뤼셀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게 아니었다. 어디가 국경인지도 모르게 프랑스를 떠난 버스는 어느새 벨기에에 도착해 있었고 벨기에를 만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나는 그냥 그곳의 도로가, 건물이, 날씨가, 공중전화 박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브뤼셀을 떠나기 위해 기차역으로 갔다.


네덜란드에 하루 이틀 더 일찍 간다고 안 될 것도 없었고 브뤼셀에서 딱히 만날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냥 떠난다고 아쉬울 것도 없었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무슨 마음에서일까 '브뤼셀'하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오줌싸게 동상은 보고 떠나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마음이 동했다.


5유로라는 거금을 주고 기차역 라커룸에 짐을 모두 넣고는 털레털레 시내로 향했다. 시내로 향하는 동안 머리로는 '혹시 갑자기 브뤼셀이 너무 좋아져서 기차표를 환불하게 될지 모르니 그때를 대비해 몇 시까지는 기차역에 와야 하는지'를 계산하고 있었지만 한 시간쯤 걷고 나니 어서 기차에 오르고 싶어졌다.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기차는

내부에 있는 전광판으로 내가 지금 지나고 있는, 그리고 다음에 도착하게 될 도시의 이름을 보여 주었는데 저녁 7시쯤 아름다운 햇살이 들판에 부서지듯 내리쬐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브뤼헤라는 이름이 내 눈에 들어 왔다.


한국에서부터 들고온 여행 책 속 벨기에 지도 구석에서 보았던 브뤼헤라는 이름은 낯설었지만,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짐을 챙겨 기차 밖으로 내린 후였다. 창밖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브뤼헤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로밍이 안 돼서 시계대용으로 쓰고 있는 휴대전화와 바퀴가 부서진 큰 캐리어 하나와 배낭 하나를 맨 채로 기차역에 그렇게 서 있는 동안 지는 노을은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게 물들일 정도로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이날 숙소를 구하기 위해 브뤼헤를 떠돌다 만난 신사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기약하고 그 아름다운 도시의 공원에서 만난 그의 이야기를 계속해야겠다.



 


새로운 곳에 도착하면


그 동네의 공원에 가는 걸 좋아한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오롯이 자기의 역할을 하며 조용한 쉼터가 되어주는 공원은 그 지역의 일부가 되어 자연스럽게 숨 쉬고 있다. 대륙마다, 나라마다, 도시마다 지역의 환경과 삶의 모습, 주요 경제 수단 등 거의 모든 것이 공원에 반영된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에게 있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담소를 나누러 가시는 곳이거나 사람들이 아이를 데리고 산책가는 곳 정도로 여겼던 공원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 날 아침 혼자 공원에서 지도를 보며 마을의 구석구석을 머리에 그리고 있을 때였다. 산타할아버지 같은 수염을 가진 그는 내가 먹고 있던 샐러드를 가리키며 '맛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저 그렇다'고 답했다. 혹시 배가 고프냐고 물어보고도 싶었지만 배고프다고 해서 낯선 사람과 샐러드를 나눠 먹을 정도의 양은 아니었기에 그냥 두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곧 다시 그가 내 카메라를 가리키며 멋진 사진은 많이 찍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다시 '그저 그렇다'고 답했다. 그때 그가 웃으며 다시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나는 파리에서 오는 길이라고 해야할지 한국에서 왔다고 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한국인이고 파리여행을 마치고 네덜란드로 가는 중인데 잠깐 들른 거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한국에서는 공원에서 주로 무슨 대화를 나누느냐고 하기에 나는 공원에 잘 가지도 않고 더욱이 낯선 사람과는 잘 대화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 둘 다 웃음이 터져 버렸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와 불안함을 가진 나와 그걸 지켜보며 웃는 그.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그가 네덜란드인이라는 것과 평생을 여행을 다녔고 지금은 간간이 가이드를 하며 수입을 유지하고 있고 지금은 네덜란드에서 사람들을 모아 벨기에 투어를 하고 있는 데 오늘이 여행 5일째 되는 날이고 사람들이 아침을 먹는 동안 자신은 산책 중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는 내 휴대전화가 로밍이 되지 않는다는 것과 그건 통신사 문제가 아니라 내 휴대전화 문제라는 것, 브뤼헤에도 아무 준비 없이 왔지만, 암스테르담으로도 그렇게 갈 거라는 것, 새로운 곳에서 부딪히고 헤매고 길을 찾는 게 즐겁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참 오랜만에 대화하는 게 즐겁게 느껴졌다.

깊음이 있는 그의 질문과
아직은 어설픈 나의 대답 사이가
그의 관록으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대화하는 동안 어느 중년의 여인이

구걸을 하러 우리가 앉아 있는 벤치 쪽으로 왔다. 불어로 그와 그녀의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졌고, 그는 결국 50유로짜리 지폐를 그녀에게 주고는 다시 나와의 대화로 돌아왔다. 그녀는 그에게 연신 인사를 하며 눈물이 가득 찬 눈을 하고 돌아섰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을 한 뒤 어린아이를 둘 키우고 있다고 했고 아이들 아침밥을 사러 밖으로 나왔는데 돈이 없어서 구걸을 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믿느냐고 그에게 물었더니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도 왜 돈을 주었느냐고 물어보니 그녀가 너무 슬퍼 보였고, 다행히 술에 취해있지 않았고 혹시 있을지 모를 그녀의 아이들과 혹은 그녀 자신을 위해 썼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돈을 주었다고 했다.


과연 나라면, 내가 그였다면 그녀에게 어떻게 대했을까?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도 없었을뿐더러 그저 모른 척 무시하지 않았을 까. 하지만 만약 내가 그녀였다면, 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마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자기의 이야기를 했을까, 만약 그게 거짓이라면 도대체 어떤 상황이 그녀로 하여금 그런 이야기를 거짓으로 꾸며내게 했을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대상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동안 내 주변을 스치고 지나갔던 수많은 그녀들이 떠올랐다. 그때의 기억은 아마도 쉽게 지우지 못할 것 같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 까, 그는 브뤼헤에 있는 몇 안 되는 인터넷 카페와 맛집, 그리고 절대 빠뜨려서는 안 되는 아름다운 성가대가 있는 교회를 알려주었고 친절하게도 그는 일행이 있는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나를 그곳으로 바래다준 뒤 평범한 여행자의 모습을 하곤 돌아섰다.


그와의 기억을, 그때의 감정을 기억해두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고 여기 그의 사진을 남긴다.



사람마다 각자의 기억이라는 공간 속에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마음대로 담아 놓을 수 있다면 그는 그의 기억속에 나를 어떤 모습으로 담았을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담기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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