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비아의 추억 vol.9
"제 이름은 사이먼 이예요. 잠비아 솔로본 마을에 살아요. 소년이라고 하기엔 쑥스러워요. 벌써 고등학생인걸요."
아프리카 중남부에 위치한 나라.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나라. '커다란 수로', '위대한 강'이라는 잠베지 강의 이름을 따 국명을 붙인 나라. 하지만 그 이름이 무색할 만큼 메마른 나라.
잠비아에 사는 사이먼은 홀로 어린 동생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어떻게 하면 닭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가 고민이다.
동생들 학교도 보내야 하고 옥수수가루를 사서 시마도 만들어 먹어야 하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동생들의 옷도 마련해 주어야 하고...
시마는 옥수수가루에 물을 섞어 불에 끓이며 만드는 옥수수 떡 같은 형태의 잠비아의 주식이다.
사이먼과 그의 가족에게 닭은 학교이자, 밥이자, 옷이자. 삶이다.
제때에 사료를 챙겨주기 어려운 탓에 닭 스스로 먹이를 찾아먹을 때가 더 많은 잠비아의 닭들은 키운다기 보다는 스스로 자란다에 가깝다. 사람 먹을 것도 부족한 곳에선 피할 수 없는 닭들의 운명이다. 그럼에도 죽지 않고 잘 살아주는 닭들이 사이먼은 고맙다.
우리도 예전엔 대부분이 농사에 기대어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소를 키워 우리 애들 대학도 보내고, 결혼도 시키고, 맛있는 고깃국도 먹이고... 그러니 소야.. 소야.. 잘 자라라.. 아프지 말고... 응?'
우리 내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닭들아.. 닭들아.. 잘 자라라... 아프지 말고... 응?'
사이먼은 내일 닭을 팔러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닭 팔고 오는 길에는 동생들 간식도 조금 사 와야겠다. 막내가 엄청 좋아하겠지? 다시 작은 병아리도 몇 마리 사고.'
이렇게 닭 판 돈을 조금씩 조금씩 알뜰히 모으면 내년쯤엔 자신도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단 꿈을 꾸면서 바라본 닭들은 그날 따라 유난히 윤기가 흘렀다. '안녕... 닭들아.. 고맙다.'
새벽에 일어나 장에 갈 생각에 일찍 잠자리에 든 사이먼은 마을 청년들의 외침에 잠에서 깨기 전 까지만 해도 그렇게 행복한 꿈에 젖어 있었다.
눈을 떴을 땐 검은 연기가 이미 집안을 모두 채우고 난 뒤였다. 숯을 주 화력으로 사용하는 잠비아 솔로본 마을에선 마을 곳곳에서 숯에 불을 피우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 숯에 불이 붙은 지푸라기가 사이먼의 닭장으로 날아든 거다.
닭들이 채 도망갈 새도 없이 지푸라기에서 시작한 불씨는 건조한 닭장안을 모두 삼켜버렸다. 몇 달을 키운 닭들이 불속으로 사라지는 데는 불과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 동안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이먼은 슬퍼할 겨를도, 주저앉아 슬퍼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툭 털어 내고 다시 일어서야 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으니까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일어서야 했다.
세상에 대한 원망도 기도도 모두 저 밤 하늘 위의 별이 되어 밤 하늘을 하얗게 수 놓을 만큼 얼마나 많은 한숨을 삼켰을 까.
어느덧 그 사건도 일 년 전 일이 되었다. 그렇게 일어선 사이먼은 다시 닭을 키우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알뜰히 모으면 내년쯤엔 자신도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단 꿈을 꾸면서.
또다시 시련이 와도, 다시 일어서면 된다고 환한 웃음을 보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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