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비아의 추억 Vol.8
필요한 게 있을 땐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도시의 밤은 어떤 면에선 아프리카의 낮보다 더 밝고 환하다. 수도인 루사카에서 차로 약 2시간 정도 흙길을 달려야 갈 수 있는 솔로본 마을.
필요한 게 있을 때면 또다시 흙길을 걸어 대로변의 시장으로 가야 한다. 시장이라고 하기에도 무색한, 작다 못해 조촐한 길 위의 노점상은 그들이 필요한 걸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그 흔한 바나나 나무조차 잘 자라지 않는 마른 땅위의 솔로본 마을에선 값 싼 노동력 밖엔 기댈 곳이 없다.
아이들의 일상은 비단 잠비아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말라위 릴롱궤에서도 하루하루 장사로 돈을 버는 아이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에이즈로 두 부모를 잃은 소녀 아니는 구걸을 하며 길 위의 삶을 이어 가지만 아니를 한 번이라도 만나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아니의 행동 하나하나와 그 아이의 눈 빛에서 당당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이 아이는 환하게 빛난다. 당참이 묻어나는 그 얼굴에서는 골목대장의 분위기마저 물씬 풍긴다. 무엇이 아니를 이렇게 키웠을 까.
더욱이 누구 하나 먹고살기 쉽지 않은 이 곳에서 주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거리 위의 삶은 소녀에게 두려울 것도 아쉬울 것도 남기지 않았지만 딱 하나, 학교를 계속 다니고 싶다는 마음만은 아니를 계속 꿈꾸게 했다.
어제 구걸해서 모은 돈을 어제 하루 배고픔을 참아 모으고, 오늘 구걸해서 모은 돈을 보며 오늘 조금 더 참고, 내일 조금 더, 조금 더, 참아 모은 돈으로 큰 시장에 가서 사과를 샀어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아프리카의 여름... 사과를 큰 바구니에 담아 그 작은 몸으로 머리에 이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며 팔았던 그 사과는 사탕수수보다도 달고 더 달았다. 주린 배를 욺켜쥐던 소녀 아니는 머리에 이고 있던, 달디 단 그 사과가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그렇게 참고 참아 모은 돈으로 학비를 냈을 때 아니의 기분은 어땠을 까.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아니가 물었다. "언제 다시 오나요?" 차마 그 질문에 곧 온다고, 꼭 오겠다고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친구가 되고 싶어요"라는 말에 "응, 우린 이미 친구야"라고 말했지만 "마음이 통하는 진짜 친구가 되고 싶어요"라는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 던 내 모습이 당당한 그 눈빛을 가진 아니의 모습 앞에 한 없이 초라해졌다.
밝게 빛나던 그 아이는 지금도 여전히 꿈을 꾸고 있을 까. 그 달디 달았던 사과보다도 더 단 꿈을 꿀 수 있는 날에도 정해진 기한이 있다면 '오래도록' 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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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닭을 키우는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