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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Aug 24. 2019

운동중독자의 변명

나도 다른 직장인처럼 휴일을 좋아한다. 

하지만 휴일을 좋아하는 이유가 조금은 다르다. 휴일에는 ‘당당하게’ 운동을 '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다니는 헬스클럽이 회사 지하에 있기 때문에 ‘회사 안 가는 날’은 곧 ‘운동 안 하는 날’과 같다. 


운동하기 싫으면 그냥 안 하면 되지, 굳이 왜 휴일을 핑계 대가며 운동을 안하려 하는지 궁금할 수 있다. 그건 ‘운동중독’을 모르는 소리다. 

운동중독이라 해서 꼭 운동을 미친 듯이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운동중독은 오히려 운동을 안 하면 정신으로 피폐해져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하기는 싫지만 해야 하고 그 강박관념 때문에 안 하면 미칠 것 같은 느낌. 이런 증상은 보통 ‘제대로’ 운동을 시작한지 1년을 조금 넘으면 시작된다. 


나의 운동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점심시간에 이뤄진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는 미친듯이 싫고, 회사가기도 싫은데 꼭두새벽에 헬스클럽에 가기는 더 싫기 때문에 차라리 점심식사를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그렇다고 점심을 아예 안 먹는다는 건 아니다. 운동 끝내고 간단히..


가벼운 몸풀기와 스트레칭으로 시작한 나의 운동은 프리 웨이트로 접어들면 결코 가볍지 않은 운동이 된다. 특히 3대 운동인 스쿼트,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 중 하나를 시작하면 릴리스 시간 동안 체육관을 뛰쳐나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고, 복근 운동 3번째 세트에 접어들면 속으로만 울부짖던 비명소리가 구슬프게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그러다 마지막 코스, 경사면 인터벌 러닝 중반 쯤에 이르렀을 때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런 말을 중얼거린다.

난 미쳤어. 뭐하려고 이 짓을 해? 왜 돈 내고 스스로 벌 받아?

결국 영혼이 반쯤 달아나거나 유체이탈이 된 상태에서 운동이 끝나고 샤워를 마칠 때면, 점심이고 뭐고 그냥 드러눕고 싶다. 그리고 생각한다. 

오늘 무슨 요일이지? 화요일? 으윽, 주말까지 운동 세 번 더 남았다.

그러다 금요일이 되면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한 번만 운동하면 이틀은 운동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뜨는 것이다.      


얼마나 운동이 하기 싫은가 하면 며칠 전에는 나보다 운동을 늦게 시작한 후배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그 후배는 아침에 집근처 휘트니스클럽에서 새벽운동을 한다. 

“너네 체육관은 언제 쉬어?”

후배는 내 질문에 한숨부터 푹 쉬었다.

“한 달에 두 번요.”

“헐, 그럼 넌 한 달에 두 번만 운동 안 해?”

“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미칠 것 같아요.”

“말도 안 돼. 무슨 체육관이 그래? 한 달에 4번은 쉬어야지. 거기 코치는 주 52시간 안 지키냐?”

“그러게 말이에요. 그냥 법으로 헬스클럽도 주말에는 하지 못하게 정했으면 좋겠어요.”

“아예 청와대 국민청원을 하자. 헬스클럽을 모두 없애 달라고.”     


지지난 주 내가 다니는 헬스클럽은 코치들 여름휴가라며 목, 금 휴관이라는 공지를 써 붙였다. 난 수석 코치에게 엄중히 항의했다. 

“여름휴가를 겨우 이틀만 가는 게 어딨어요? 일주일은 가야지.”     


후배에 비하면 내 운동라이프는 복지가 나은 편이기에 위로를 받는다. 하긴, 나도 비슷했다. 운동 초기, 의욕이 절정에 달했을 때는 주말이라고 운동을 빼먹지 않았다. 헬스클럽이 회사에 있어 웨이트 트레이닝은 안 했지만 러닝복으로 갈아입고 고수부지를 달렸다. 

비가 와도 뛰고, 눈이 와도 뛰고, 폭염 주의보가 발효된 날 땡볕을 달리다가 한남대교 밑에서 턴하며 작열하는 태양을 보는 순간, ‘저리 달려 나갔다가는 더위먹고 그냥 죽겠구나’ 는 공포감도 느꼈다. 실제 영하 10도의 강풍을 맞으며 고수부지를 달리다가 머리가 깨질듯한 두통 때문에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왜 그렇게 달렸냐 하면, 성취감 때문이었다. 고난이 힘들수록 운동이 끝난 뒤 느끼는 성취감은 엔돌핀으로 바뀌어 마약 같은 행복감을 안겨 주었다.

Runner’s high!

그러나, 그런 날은 다 지났다. 자아도취적인 과시에 불과했고 진짜 정신 나간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교훈은 아무 희생 없이 얻어진 게 아니었다. 기력 소진으로 신체 기관 중 한 곳이 고장 났다. 정확한 인과관계를 밝힐 수는 없지만.      


내 운동의 이런 흑역사를 경험하고도 운동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강박관념 때문이 아니라 현실적 문제 때문이다. 이놈의 운동이란 게, 할 때는 표가 안 나도, 멈추면 대번에 표가 난다. 몸이 푸석푸석 부어오르며 주변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선배 요즘 몸이 좋아 보여요.’라는 긍정적인 표현부터 ‘살쪘어요?’라는 극단적인 언어테러까지. 


주5일 운동해도 몸이 더 근사해지지 않는 이유는 매일 치팅데이(cheating day)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날이 좋아서, 오늘은 날이 흐려서, 모든 날이 치팅데이. 

줄여 말하자면 맘 편히 먹자고 하는 운동이라 그렇다. 


그래서 내 운동은 살을 빼고, 체형을 멋지게 만드는 ‘공격적’ 운동이 아니라, 지금 체형을 유지라도 하자는 ‘방어적’ 운동이다. 공격도 아니고 방어만 하는데도 이렇게 힘들다니, 먹는 것까지 규제하기는 싫고. 안 그래도 온통 하지 마라는 것 투성인 대한민국인데, 운동 좀 안 할 방법 없나 고민하다 보니, 회사 안 가는 날만 기다리는 인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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