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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Aug 14. 2019

동성애, 사랑이 죄가 되는 순간

90년대 초반, 서울대학교 학생회관에 동아리 회원을 모집하는 조그만 벽보가 붙었다.   

   

마음002 

동아리 이름만 봐서는 뭘 하는 동아리인지 절대 알 수 없었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서글픔이 몰려왔다. 

'우리 사회에 동성애자와 동성애를 이해하는 사람을 합치면 2%이기 때문'

그 뒤로 잊고 있었는데 학교를 졸업할 즈음 동생이 마음002와 관련된 새소식을 들려줬다. 

동아리 이름이 ‘마음005’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장족의 발전,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과거 동성애는 죄였다. 튜링머신을 발명하고,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은 1952년 동성애 혐의로 체포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튜링은 감옥에 가는 대신 화학적 거세를 선택해 체내에 약물을 주입해야 했다. 

세 가지 충격! 

첫째, 머리가 국보급 재산인 대천재의 몸속에 정신을 몽롱하게 하는 약물을 주입한 나라가 선진국이라 자부했던 영국이라는 사실, 그것도 무려 1950년대에.

둘째, 튜링은 결국 청산가리(시안화칼륨)를 넣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먹고 자살했다. 겨우 41세, 튜링이 20년만 더 컴퓨터를 연구했다면 지금 인공지능은 아이언맨의 ‘자비스’ 정도는 훌쩍 뛰어넘지 않았을까? 그가 한입 먹은 사과가 그 유명한 애플 로고의 모델이었다는 소문. 

셋째, 영국 정부는 2013년에서야 앨런 튜링의 동성애죄를 사면했다.      


카톨릭은 동성애에 엄격해 ‘죄’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동성애가 '자연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단테의 「신곡」을 보면 동성애자는 제7층 폭력 지옥에 갇힌다. 하나님과 자연의 순리에 해를 끼쳤으니 ‘폭력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참고로 폭력 지옥은 이단 지옥 보다 중죄인이 가는 곳이며, 9단계 지옥 중 세 번째로 나쁜 곳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의 법은 알아도 자연법이 뭔지는 모르겠다. ‘법’이라는 것 자체가 인위적인 냄새가 풀풀 나는데 ‘자연’에 ‘법’이 있다니.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브라질 세계청년대회에서 동성애와 관련한 질문을 듣자 이렇게 답했다.

“내가 누구라고 그 사람을 심판하겠느냐”     


동성애를 이해하든 싫어하든 그건 사상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이든 인간이든 동성애를 ‘심판’할 자격은 없지 않을까.  


p.s) 일러스트 출처:  "이졸데가 사랑의 묘약을 마시기 전" 오브리 비어즐리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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