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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May 08. 2022

모멸,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

김찬호, <모멸감>, 문학과 지성사, 2014



모멸감은
나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는 괴로운 감정이며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정과 사회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간다. 이러한 관계의 중심에서 '감정'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며 지옥과 천당을 맛보다.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모멸감>의 저자 김찬호 교수의 말처럼 "감정은 중대한 인간사를 좌우하는 핵심"이다. 특히 일상에서 의식적. 무의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모멸감'은 개개인의 값어치를 위협하며 삶의 질을 좌우한다. <모멸감>이라는 책을 해 그동안 외면했던 '감정'의 응어리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모멸감>'감정'을 주제로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을 조명한다. 한국인의 마음속에 얽혀 있는 응어리의 실체를 개인의 내면과 사회의 지평에서 두루 탐구한다. 세부으로 1장 모멸감,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 2장 한국 사회와 모멸의 구조, 3장 모멸의 스펙트럼 등 총 5장으로 구성한다. 저자 김찬호 님은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다. 사회학을 전공했고, 대학에서 문화인류학과 교육학을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눌변> <사회를 보는 논리> <도시는 미디어다>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작은 인간> <경계에서 말한다> <학교와 계급재생산> 등이 있다. 



모멸,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



일상생활에서는 모욕과 모멸이 거의 동의어로 쓰이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약간 뉘앙스가 다르다. 모멸은 '모욕'과 '경멸'(또는 멸시)의 의미가 함께 섞여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모욕은 적나라하게 가해지는 공격적인 언행에 가깝고, 경멸 또는 멸시는 은연중에 무시하고 깔보는 태도에 가깝다. 모욕에는 적대적인 의도가 강하게 깔려 있는 반면, 경멸에는 그것이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모욕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무심코 경멸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모멸은 후자의 가능성까지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멸은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라고 할 수 있다.(p.66-67)



모욕과 경멸, 모멸이라는 단어그리 달갑지 않은 다. 그 안에 담긴 기억 또한 마찬가지다. 나에게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모멸감에 관한 기억이 있다. 30대에 사회생활을 하며 사람들 속에서 그림자 취급을 당했다. 팀 리더의 강압적인 지시에 순응하지 않아 미운털이 밝혔다. 팀 리더와 나는 갑을 관계나 다름없었다. 쉽사리 일을 그만둘 수 없었던 나는 모멸감을 감내해야 했다.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뒀다. 그때 느낀 수치심은 감정의 응어리로 남아 상당기간 나를 괴롭혔다.



위계 서열과 힘의 우열



사람은 자신의 값어치에 대한 일정한 자아의식을 가지지 않고는 살아가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우리의 값어치(남의 눈에나 자신의 눈에나), 사람의 값은 권력과 부와 지위에 의하여 정하여진다. 이것들은 우리 사회가 믿는 유일한 가치이다. (도덕적 자기 정당성의 느낌도 우리가 남달리 믿는 가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가치의 추구는 사회구조가 오만과 모멸의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 되기도 한다. 오만과 모멸의 사회체계에서 가해지는 수모를 피하며 자존심을 유지하려면 최소한도의 부와 지위를 확보하여야 하는 것이다.(p.135)



모멸감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최소한도의 부와 지위를 확보해야 하는 까. 위계 서열과 힘의 우열이 우선하는 오만과 모멸의 사회구조를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못내 씁쓸하다. 사람의 값어치, 자존심을 유지하는데 자본주의 논리가 적용된다는 사실이 서글퍼진다. 그럼에도 나를 괴롭혔던 감정의 실체를 한국인의 정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너도 그랬어?' '나도 그랬어'라는 공감이 주는 위로의 힘이 있다.




어떻게 하면 모멸감덜 느끼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감정의 실체를 이해하고 자각해 개인적.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는 저자의 고민과 의견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과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적대적인 의도가 깔린 '모욕'에 앞서, 은연중에 무시하고 깔보는 '경멸'에 대한 태도를 자각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처럼, 무심코 드러내는 눈빛, 표정, 말투에 담긴 '경멸' 쉽사리 '모욕'이 되고 모멸감의 몸집을 키울 수 있다. 이해와 자각을 통한 개개인의 노력이 모여 모멸감을 덜 느끼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시작으로, 굴욕의 응어리를 털어내고 인간 존엄의 가치를 고민하게 하는  <모멸감>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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