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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Jul 16. 2022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

김연수, <시절일기>, 레제, 2019


글쓰기 과정을 통해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것은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는 캐서린 맨스필드의 말처럼, 자기이해다. 자기이해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마법과도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19쪽)



글쓰기 과정은 곧 자기이해의 과정이다. 글쓰기에 재능이 있고 없고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 시작이 일기쓰기다. 그래서 학창 시절 내내 일기쓰기가 옵션으로 따라붙었던 까. 방학이 끝날 즈음이면 밀린 일기를 쓰느라 책상 앞에 앉아 끙끙대곤 했다. 일기를 왜 써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날그날의 일들과 날씨를 기억해내느라 급급했다. 지난 에피소드와 감정 끄집어내어 글로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춘기가 되어, 일기 내 안의 감정의 변화와 내밀함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누군가 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읽어주길 바라는 은근한 기대감이 혼재된 마음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역사를 기록했다. 그렇게 자기 역사의 기록으만 생각했던 일기가 확장되어 시대의 역사를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김연수 작가의 개인의 일기이자 작가로서의 기록을 담은 책 <시절일기>를 읽은 후 일기에 대한 관점을 달리했. 




김연수 작가는 1993년 계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2001년에는 장편소설 '굳빠이, 이상'으로 제14회 동서문학상, 2003년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동인문학상, 2005년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제13회 대산문학상, 2007년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황순원 작가상을 수상했다. 그 외 저서로 <7번 국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등의 장편소설과 소설집, 산문집, 옮긴 책 등이 있다.



<시절일기>는 김연수 작가가 지난 십 년간 보고 듣고 읽고 써 내려간 한 개인의 일기이자 작가로서의 기록이다. 40대라는 가장의 무게를 지닌 한 개인이 평범한 자신의 삶과 시대를 살아내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치열하게 고민했던 부분을 기록했다. 저자삶의 한가운데 용산 참사와 세월호의 침몰, 문화계 블랙리스트, 2016년 촛불들 등의 사건들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듣고 겪고 견뎌내고 맞이했던 생각들이 기록되어 있다. 개인의  작은 역사가 모여 국가의 역사가 된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문학은

모호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타자의 고통 앞에서 문학은 충분히 애도할 수 없다. 검은 그림자는 찌꺼기처럼 마음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애도를 속히 완결지으려는 욕망을 버리고 해석이 불가능해 떨쳐버릴 수 없는 이 모호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문학의 일이다. 그러므로 영구히 다시 쓰고 읽어야 한다. 날마다 노동자와 일꾼과 농부처럼, 우리에게 다시 밤이 찾아올 때까지.(49쪽)



소설가란

소설가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

소설가란 소설가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말하겠다. 소설가란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는 얘기다. 소설 쓰기에 영적인 요소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소설가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소설을 쓴다. (...) 소설가는 불꽃이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뒤에도 뭔가를 쓰는 사람이다. 이때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다 타버렸으니까. 이제 그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소설을 쓸 때만 그는 소설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 권 이상의 책을 펴낸 소설가에게 재능에 대해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들에게 재능은 이미 오래전에, 한 권의 책으로 소진돼버렸으니까. 재능은 데뷔할 때만 필요하다. 그다음에는 체력이 필요할 뿐이다.(52-53쪽)



어둠 속에서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

어둠 속에서 우리는 어둠만을 볼 뿐이다. 그게 바로 인간의 슬픔과 절망이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 이 세계를 다르게 보려면 빛이 필요하다. 슬픔에 잠긴 마리아 막달레나와 절망에 빠진 두 제자가 처음에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건, 그래서 당연하다. 그 상황에서 예수를 알아본다는 건 빛을 알아본다는 뜻이고, 이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배운다는 뜻이다.(94쪽)




이렇듯 일기라는 형식에 시절의 역사를 담아낸 김연수 작가의 책 <시절일기>는 동시대 사람들의 지난 기억들을 일깨운다. 그 시절 마음껏 이야기할 수 없었던 이야기 속으로 불러 모아 회고하게 해 준다. 쉽사리 잊혔던 사건 사고들, 누군가의 희생과 참여가 뒤따랐던 일들을 불러와 기억을 재생시킨다. 개인의 역사를 넘어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의미를 되찾아준다. 



<시절일기>를 통해 희미했던 나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고, 더 많은 기록을 남겨두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이제라도 기록에 대한 의미를 확장시켜보마음이 들었다. SNS 공간에 개인적인 서사를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이 시대의 흐름함께 담아내고자 하는 마음이 커졌다.  나와 우리, 사회와 세계로 사고를 확장시키고 연결 지어주 책, <시절일기>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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