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시절일기>, 레제, 2019
글쓰기 과정을 통해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것은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는 캐서린 맨스필드의 말처럼, 자기이해다. 자기이해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마법과도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19쪽)
타자의 고통 앞에서 문학은 충분히 애도할 수 없다. 검은 그림자는 찌꺼기처럼 마음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애도를 속히 완결지으려는 욕망을 버리고 해석이 불가능해 떨쳐버릴 수 없는 이 모호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문학의 일이다. 그러므로 영구히 다시 쓰고 읽어야 한다. 날마다 노동자와 일꾼과 농부처럼, 우리에게 다시 밤이 찾아올 때까지.(49쪽)
소설가란 소설가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말하겠다. 소설가란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는 얘기다. 소설 쓰기에 영적인 요소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소설가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소설을 쓴다. (...) 소설가는 불꽃이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뒤에도 뭔가를 쓰는 사람이다. 이때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다 타버렸으니까. 이제 그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소설을 쓸 때만 그는 소설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 권 이상의 책을 펴낸 소설가에게 재능에 대해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들에게 재능은 이미 오래전에, 한 권의 책으로 소진돼버렸으니까. 재능은 데뷔할 때만 필요하다. 그다음에는 체력이 필요할 뿐이다.(52-53쪽)
어둠 속에서 우리는 어둠만을 볼 뿐이다. 그게 바로 인간의 슬픔과 절망이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 이 세계를 다르게 보려면 빛이 필요하다. 슬픔에 잠긴 마리아 막달레나와 절망에 빠진 두 제자가 처음에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건, 그래서 당연하다. 그 상황에서 예수를 알아본다는 건 빛을 알아본다는 뜻이고, 이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배운다는 뜻이다.(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