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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Aug 01. 2022

"사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문학사상, 2008


사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열다섯 살 소년의 고독한 목소리가 허공을 다. "사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 <해변의 카프카>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익숙한데 노답이다. 

살아가는 날들 중에 고독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순간 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 물음표로 부유하고 맥락 없이 솟구치는 생각의 무게에 짓눌린다. 세상 속에 '나'라는 존재만 덩그러니 홀로 남겨듯한 감정에 휩쓸린다. 시공간 속에 함께 하는 사람들, 그들그저, 나와 무관한 객체일 따름이다. 두 발을 땅에 딛고 있지만, 바람 불면 훅, 하고 지구 돌연 사라져 버릴 것만 . 그렇게 연약하고 불완전했던 감정들 어떻게 털어내었을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언을 곱씹으며 한 걸음씩  내딛던 기억들 되살아난다. 주체와 객체가 더불어 는 세상 속으로 힘겹게 나아오 날의 고독했던 낮과 밤이 떠오른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제81회 군조 신인 문학상을 수상하며 29세에 데뷔했다. 1982년 첫 장편소설 <양을 쫓는 모험>으로 노마문예 신인상을, 1985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1987년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를 발표하여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키며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1994년 <태엽 감는 새>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고, 2005년 <해변의 카프카>로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그 밖에 <댄스 댄스 댄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IQ84> 등 많은 소설과 에세이로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해변의 카프카>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전작과 달리 등장인물을 새롭게 구성했다. 기존 소설에 지적인 젊은 남성과 뚱뚱하지만 매력적인 여성이 주로 등장했다면, 이 책에서는 열다섯 살 소년과 지적장애가 있는 노인이 주인공이다. 

열다섯 살의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소년'이 홀수 장을,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는 노인'이 짝수 장을 이끌며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 내면의 심리묘사, 술술 읽히는 특유의 문장력이 하루키 작품의 맥을 잇는다. 현실과 초현실 세계를 넘나들며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 찾아가는 여정에 쉽사리 빠져들게 한다.



큰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열다섯 살이 된 다무라 카프카는 어릴 때부터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예언한 아버지의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가출을 감행한다. 어릴  누나만 데리고 집을 떠나버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없다. 해변에서 복하게 뛰놀던 사진 한 장 유일한 기억이다. 또 다른 이야기의 축으로 등장하는 노인 나카타는 어린 시절 기묘한 사건을 겪은 후 기억을 전부 잃고 지적 장애인으로 살아간다. 정부의 지원금과 고양이를 찾아주고 받은 돈으로 생활하던 중 기묘한 살인사건에 휘말리고 본능적인 소명에 이끌려 길을 떠난다. 그 길의 끝, 고무라도서관에 다다르는 소년과 노인의 여정에 사쿠라, 오시마, 호시노 등의 조력자들이 도움을 주 세상의 온기를 얹는다.



결함, 불완전함끌어당기는

흡인력

"프란츠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야. (...) 지금까지 여러 다양한 명피아니스트가 이 곡에 도전했지만, 그 어떤 연주도, 느낄 수 없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거든. 바로 이 연주만은 결함이 없다고 할 만한 연주는 아직 없다, 왜 그런지 알아? (...) 요컨대 어떤 종류의 불완전함을 지닌 작품은 불완전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 적어도 어떤 종류의 인간의 마음을 강렬하게 끌어당긴다는 거야. 예를 들어, 넌 소세키의 <갱부>에 마음이 끌린다고 했지. <마음>이나 <산시로> 같은 완성된 작품에는 없는 흡인력이 미완성의 작품에는 있기 때문이지. 너는 그 작품을 발견한 거야. 바꿔 말하면, 그 작품이 너를 발견한 셈이지."(상, 197-198쪽)



세계가 끝나는 그곳

해변의 카프카

해변의 카프카

당신이 세계가 끝나는 그곳에 있을 때
나는 사화산의 분화구에 있고
방문 뒤에 서 있는 것은
문자를 잃어버린 말

잠이 들면 그림자를 달이 비추고
하늘에선 작은 물고기들이 쏟아져 내리고
창밖에는 굳게 마음을 가다듬은
병사들이 서 있네.

(...)

물에 빠진 소녀의 손가락은
입구의 돌을 찾아 헤매네.
푸른 옷자락을 쳐들고
해변의 카프카를 보고 있네.

(상, 402-403쪽)



살아가는 의미

도서관의 서가 같은 방

우리는 모두 여러 가지 소중한 것을 계속 잃고 있어." (...) "소중한 기회와 가능성, 돌이킬 수 없는 감정. 그것이 살아가는 하나의 의미지.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는, 아마 머릿속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을 기억으로 남겨두기 위한 작은 방이 있어. 아마 이 도서관의 서가 같은 방일 거야. 그리고 우리는 자기 마음의 정확한 현주소를 알기 위해, 그 방을 위한 검색 카드를 계속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지. 청소를 하거나 공기를 바꿔 넣거나, 꽃의 물을 바꿔주거나 하는 일도 해야 하고. 바꿔 말하면, 넌 영원히 너 자신의 도서관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거야."(하, 413쪽)




사는 게 뭔지, 다시 한번 숨을 고르고 생각한다. 산다는 건, 불완전한 날들의 경험을 잃고 얻으며 도서관의 서가 같은 기억의 방에 지혜를 차곡차곡 일이 아닐까. 

그렇게 쌓이는 미완성의 순간들이 인간다움으로 숙성되어 오늘의 삶을 지탱해주는 건 아닐까. <해변의 카프카> 책 속에 등장하는 소년과 노인은 각기 다른 스토리 속 주인공이다. 이야기 속의 실제 만남이 없다. 그럼에도 삶의 가치와 사는 이유를 찾아 헤매는 소년이 방황을 끝내고 세상에 안착하도록 돕는 이는 노인이다. 노인은 자신에게 부여된 소명을 본능적으로 완수했을 뿐이다. 그렇게 사람은 더불어 살아간다. 그 안에서 소중한 것을 잃기도 얻기도 한다. 불완전함은 곧 인간다움이다.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고 회복하며 성장하는 가운데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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