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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Aug 10. 2022

굿나잇 책방

이도우,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시공사, 2018


어느 밤, 새벽이 올 때까지 잠 못 들고 서성이다 문득 생각했어. 이렇게 밤에 자주 깨어 있는 이들이 모여 굿나잇클럽을 만들면 좋겠다고. 서로 흩어져 있는 야행성 점조직이지만, 한 번쯤 땅끝 같은 곳에 모여 함께 맥주를 마셔도 좋겠지.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고 그 안에서 같이 따뜻해지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서로에게 굿나잇, 인사를 보내는 걸 허황되게 꿈꾸었다고.(62쪽)




80년 만의 폭우가 쏟아진다. 줄기차게 내리치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읽다 만 소설을 집어 다. 소설 속에 펼쳐지는 시골 풍경 속으로 빠져들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 장편소설 속, 북현리 마을엔 폭설이 내렸다. 함박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기와집에 자리한 굿나잇 책방, 논두렁 스케이트장, 호두하우스, 책방의 독서모임, 얼어붙은 마음을 눈물차로 녹이며 겨울을 보내사람들... 인생에 담긴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이 용서와 치유, 사랑으로 녹아내린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 한파가 봄기운에 사르르 녹아내리듯.




소설가 이도우 님은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그는 라디오 구성작가, 카피라이터로 일해 왔다. 2003년 3월 로망띠끄에 첫 로맨스 소설 '사랑스러운 별장지기'를 연재했다.  책은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잠옷을 입으렴> 이후 6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이다. 어릴 때 살던 동네 뒷산 오두막에서 만난 소년, 인생 첫 단골 서점, 미로 같던 여름날, 야행성인 사람들이 새벽에 올리는 SNS 글 등 삶의 조각 같은 장면들을 모아 소설로 썼다.



이 책의 주요 배경은 북현리 시골 마을 낡은 기와집에 자리한 굿나잇 책방이다. 어느 겨울날, 해원은 학생과의 불화를 계기로 미대 입시학원 강사 일을 그만두고 펜션을 운영하는 이모 집으로 내려온다. 옆집 사는 은섭과의 만남이 잦아지고, 굿나잇 책방에서 매니저로 일하게 된다. 가족과 친구, 가깝고 먼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로 꽁꽁 얼어붙은 해원의 마음이 사랑으로 녹아내린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행복의 문을 연 그녀 앞에 숨겨진 진실이 베일을 벗는데...


  


사랑은 그렇게 오는 걸까

기차역, 가을 새벽, 플랫폼, 단풍나무,

무궁화 기차, 철길, 그녀


은섭은 지나간 어느 하루의 기억을 담담히 꺼내놓았다.
  "기차역에서 해원이를 봤어. 가을 새벽이었고, 플랫폼에 단풍나무가 있었고, 그 옆에 해원이가 서 있었어. 그리고 기차가 철길을 따라 들어왔지."
  장우가 약간 얼빠진 얼굴로 되풀이했다.
  "기차가 철길을 따라..."
  "응. 무궁화 기차였어."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새벽 기차가 멈춘 곳에 해원이가 서 있었다니까. 그런데 어떻게 안 반해."
(207-208쪽)




씨가 좋아지면 만나자고?

상 사람들 다 그렇게 말하면서 살아요

꼭 빈말로 하는 건 아니야


"날씨가 좋아지면 만나자고? 만나지 말자는 소리네."
"왜 또 그런 소리가 돼."
해원이 찌푸렸지만 명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날씨가 언제 좋아지는데. 추위 끝나고 봄이 오면? 꽃 피고 새 울면?"
"그런 거지, 뭐. 겨울 지나고... 따뜻한 바람 불면서 봄이 오면."
"그럼 미세먼지를 끌어안고 황사가 오겠지. 봄 내내 뿌연 하늘이다가 겨우 먼지 끝나면 폭염에 장마가 오겠지. 그냥, 만나기 싫다고 솔직히 말하렴.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 날씨 좋을 때 보자... 난 그런 빈말 싫더라."
해원은 다소 지친 투로 후 한숨지었다.
"세상 사람들 다 그렇게 말하면서 살아요. 꼭 빈말로 하는 건 아니야. 정말 만나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안부도 묻고 싶은데, 막상 바쁘게 살다 보니 잘 안 되는 거지."(296쪽)




꽃은 피어나고 질뿐

그저 계절 따라 피었다 지고 

사람들만 울고 웃는다


알고 보면 사람들은 참 이상하고도 신기한 존재였다. 꽃은 타고난 대로 피어나고 질뿐인데 그걸 몹시 사랑하고 예뻐하고... 꽃말까지 지어 붙인다. 의미를 담아 주고받으며,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기도 한다. 꽃들은 무심하고, 의미는 그들이 알 바가 아니었다. 그저 계절 따라 피었다 지고 사람들만 울고 웃는다. 어느새 봄기운이 완연했다. (407쪽)




'날씨가 좋아지면 만나자'라 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선뜻 만나자고 말하지 못했던  망설임의 감정은 뭐였을까. 진실과 거짓을 적당히 버무린, 인생의 지혜였을까. 그저 빈말었을까. 사람들은 이해와 오해 속에 살아간다. 때론 위로받고 때론 상처 입으며 감정의 줄타기를 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받고 위로받기를 원하며 평행선을 달린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라는 말속에 쉼표를 담는다. 막상 바쁘게 살다 보니 핑계 아닌 핑계를 댈 수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쉼표의 언어에 비축해둔다. 마음은 움직이는 거니까.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쉼표를 걷어내고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러 가고 싶을지 모르는 일이다.


또 한 권의 소설읽으며, 아담하고 아늑한 굿나잇 책방에서 잠시나마 쉼을 었다. 잠 못 드는 밤에 읽기 좋은 책이다.


, 굿나잇 책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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