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우,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시공사, 2018
어느 밤, 새벽이 올 때까지 잠 못 들고 서성이다 문득 생각했어. 이렇게 밤에 자주 깨어 있는 이들이 모여 굿나잇클럽을 만들면 좋겠다고. 서로 흩어져 있는 야행성 점조직이지만, 한 번쯤 땅끝 같은 곳에 모여 함께 맥주를 마셔도 좋겠지.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고 그 안에서 같이 따뜻해지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서로에게 굿나잇, 인사를 보내는 걸 허황되게 꿈꾸었다고.(62쪽)
은섭은 지나간 어느 하루의 기억을 담담히 꺼내놓았다.
"기차역에서 해원이를 봤어. 가을 새벽이었고, 플랫폼에 단풍나무가 있었고, 그 옆에 해원이가 서 있었어. 그리고 기차가 철길을 따라 들어왔지."
장우가 약간 얼빠진 얼굴로 되풀이했다.
"기차가 철길을 따라..."
"응. 무궁화 기차였어."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새벽 기차가 멈춘 곳에 해원이가 서 있었다니까. 그런데 어떻게 안 반해."
(207-208쪽)
"날씨가 좋아지면 만나자고? 만나지 말자는 소리네."
"왜 또 그런 소리가 돼."
해원이 찌푸렸지만 명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날씨가 언제 좋아지는데. 추위 끝나고 봄이 오면? 꽃 피고 새 울면?"
"그런 거지, 뭐. 겨울 지나고... 따뜻한 바람 불면서 봄이 오면."
"그럼 미세먼지를 끌어안고 황사가 오겠지. 봄 내내 뿌연 하늘이다가 겨우 먼지 끝나면 폭염에 장마가 오겠지. 그냥, 만나기 싫다고 솔직히 말하렴.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 날씨 좋을 때 보자... 난 그런 빈말 싫더라."
해원은 다소 지친 투로 후 한숨지었다.
"세상 사람들 다 그렇게 말하면서 살아요. 꼭 빈말로 하는 건 아니야. 정말 만나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안부도 묻고 싶은데, 막상 바쁘게 살다 보니 잘 안 되는 거지."(296쪽)
알고 보면 사람들은 참 이상하고도 신기한 존재였다. 꽃은 타고난 대로 피어나고 질뿐인데 그걸 몹시 사랑하고 예뻐하고... 꽃말까지 지어 붙인다. 의미를 담아 주고받으며,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기도 한다. 꽃들은 무심하고, 의미는 그들이 알 바가 아니었다. 그저 계절 따라 피었다 지고 사람들만 울고 웃는다. 어느새 봄기운이 완연했다. (4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