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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Nov 23. 2022

대한민국 현대사의 그늘, '사법부'에 묻다

한홍구, <사법부>, 돌베개, 2019



요즘 법정 드라마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변호사, 검사, 판사 역할을 맡은 남주 또는 여주가 권력에 맞서 극을 이끌어간다. 이들은 약자의 편에서 소신과 원칙을 가지고 정의 구현을 실현하려다가 보이지 않는 권력의  좌절하고 만. 고진감래 끝에 극적인 반전을 꾀하고 권력의 실체를 밝혀내 거대 악을 물리친.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지 힘든 결말임에도 시청자들이 카타르시를 느끼는 건 왜일까. 법조인이라는 공권력을 지닌 인물이 약자의 편에서 힘이 되어 주고 위로와 대리만족을 주기 때문일까? 법조인은 TV 속에 등장하는 "정의의 사도'가 아닐까 생각해오 에, 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서 <사법부>를 읽게 되었다.




<사법부>를 쓴 한홍구 교수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으며, 평화박물관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현대사를 왜곡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했던 사람들을 기록한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작업에 앞장서고 있다. 현재 '한겨레'에 한국 사법부의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어둠의 역사를 밝히는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를 연재하고 있다. 그는 지난 사건들의 현재적 의미를 밝히고 소개하는 저술 작업과 강연을 꾸준히 해왔으며, <대한민국사 1~4>, <특강>, <지금 이 순간이 역사> 등 다수의 작품을 출간했다.



이 책은 저자가 책임 집필한 국정원 과거사위의 보고서「사법편」에 기초하고 있다. 주로 중앙정보부-안기부의 부당한 개입에 사법부가 맥없이 굴복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는 국정원 과거사위 민간위원 활동을 했을 당시에 국정원 내부 기밀문서를 읽으며 직접 확인했던 자료를 바탕으로, 한겨레 연재와 사법부 강의를 하며 책을 준비했다. 총 5부로, 1부 '권력을 불편하게 만든 사법부'를 시작으로 2부 '유신, 겨울공화국의 사법부', 3부 '군사정권, '회한과 오욕'의 사법부', 4부 '정부기관의 간첩조작과 고문, 조정당하는 사법부', 5부 '민주화 이후의 사법부, 과거는 청산되었는가?'로 쓰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정권의 압력으로 제 구실을 하지 못했던 사법부의 법과 정의에 대해 날카롭게 파헤치며 대한민국의 어두운 현대사를 조명한다.



중정-안기부와의 관계에서 사법부는 분명 피해자였고 따라서 국정원 보고서에서는 사법부를 당연히 피해자로 기술했다. 그러나 사법부와 고문조작 사건 피해자들의 관계, 나아가 사법부와 시민의 관계에서 사법부는 분명 가해자였다.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이 그토록 고문에 대해 호소했건만, 저 높은 법대 위의 재판관들은 끝내 바짓가랑이 한번 걷어보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 뒤에 소장 법관들이 스스로 반성했듯이 한국의 사법부는 “판결로 말해야 할 때 침묵했고, 판결로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했던 것”이다. 그 시절이 아무리 험한 시절이었다 한들 바짓가랑이를 걷어보라는 얘기조차 하지 않은 죄에 대한 책임은 물어야 하지 않을까?(p.22)



저자는 사법부가 중정-안기부와의 관계에서 피해자였지만, “사법부와 고문조작 사건 피해자들의 관계, 나아가 사법부와 시민의 관계에서는 가해자였다”라고 말한다.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이 그토록 고문에 대해 호소했지만, 법대 위의 재판관들이 “끝내 바짓가랑이 한번 걷어보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라며 책임을 묻는다. 당시의 많은 법관이 "당사자의 주장 이외에는 고문을 당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p.22) 무고한 시민들을 간첩으로 만들어버린 데에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판결로 말해야 할 사법부가 침묵함으로써 최소한의 인권조차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씁쓸해지는 대목이다.




<사법부는> 1940년대 이승만 정권부터 2000년 이후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시대별로 날카롭게 파헤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역사서다. 실제 국정원 내부 기밀문서를 토대로 쓰였다는 점에서 읽는 이의 마음을 참담하게 한다. 소문만 무성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그늘진 역사를 실제 자료에 근거해 이해시킨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다만 보고서의 형식으로 쓰이다 보니 단정적인 어조가 강하고, 반복적으로 나열되는 내용들이 어렵고 지루하읽힌다는 점이 아쉽다. 그럼에도 이 책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흐름을 이해하고 싶은 분들과 국민의 알 권리를 추구하는 모든 분들에게 일독 이상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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