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 <사법부>, 돌베개, 2019
중정-안기부와의 관계에서 사법부는 분명 피해자였고 따라서 국정원 보고서에서는 사법부를 당연히 피해자로 기술했다. 그러나 사법부와 고문조작 사건 피해자들의 관계, 나아가 사법부와 시민의 관계에서 사법부는 분명 가해자였다.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이 그토록 고문에 대해 호소했건만, 저 높은 법대 위의 재판관들은 끝내 바짓가랑이 한번 걷어보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 뒤에 소장 법관들이 스스로 반성했듯이 한국의 사법부는 “판결로 말해야 할 때 침묵했고, 판결로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했던 것”이다. 그 시절이 아무리 험한 시절이었다 한들 바짓가랑이를 걷어보라는 얘기조차 하지 않은 죄에 대한 책임은 물어야 하지 않을까?(p.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