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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Jun 07. 2017

내 첫 정원

풀 뽑다 없어진 내 지문이여!

 오늘은 오랜만에 비가 왔다. 농작물이 한참 성장해야 하는 지금 5~6월 강수량이 충분하지 않아 푸성귀들의 가격이 한겨울과 비슷하게 높은 수준이다. 여름의 풍성한 야채들을 갈무리해서 긴 겨울을 나야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점점 여름은 더욱 덥고 겨울은 더욱 추워지는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 그런 건지 노화가 시작이 되어 느끼게 되는 건지 아리송하다. 그런데 밤새 단비가 내려 잔디들이 싱그럽게도 파릇파릇해졌다.


 처음이 집을 보았을 때 정원이 작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풀 뽑고 물 주고 관리하는 것이 어깨에 둘러맨 봇짐처럼 거추장스럽고 무겁게 느껴졌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욕심내지 않는 편이 삶의 밸런스를 잡는데 이롭다. 더구나 봄철 내내 미세먼지 때문에 공기가 너무 나빠 실외 공간의 정원 관리는 부담스러웠었다.


 손바닥만 한 1층 정원도 잠깐 방심하면 풀로 뒤덮여 보기 흉하다. 산이 가까운 지리적 위치 상 작은 정원에도 온갖 종류의 풀들이 자라나고, 억세게 뿌리를 내린 내 화단의 풀들이 바람 타고 씨앗을 옮기면 열심히 정원을 관리하는 이웃에게 민폐가 되니 풀 한 포기도 허투루 볼 수 없다.   

아침 햇살도 꽤 강해, 챙이 넓은 모자는 필수!

https://www.instagram.com/p/BUkjXj0FJTF/


1층은 오며 가며 보니, 그래도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옥상 정원은! 4월~5월 내내 방치했다 미세먼지가 덜 많은 요즘 올라가 보니, 여러 가지 풀들이 잔디를 괴롭히고 있었다. 에잇. 이 나쁜 풀들. 잡초를 제거하는데, 지름길은 없다. 손으로 하나하나 뿌리째 뽑는 것. 그렇게 몇 주 보내니 이제 옥상에 풀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다 보니 내 손가락의 피부는 벗겨져 지문이 없어지고, 허리와 무릎도 시큰거린다. 육체노동은 정직하다.


이사 오고 곧 가을이 되어 풀들을 그냥 방치했던 작년에는 옥상에 각종 벌레들이 많았다. 특히 다리가 많은 벌레는 집안에서도 갑자기 나타나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벌레들이 살 수 있는 곳이라야 사람도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익충만 있는 게 아니라 해충도 있을 테니 이발하듯 잔디도 베어주고, 건초도 제거해 주고 약도 쳐 줘야 깨끗하다.


실내 공기를 위해 키우는 200여 개의 식물들에, 고수와 시금치, 열무와 감자를 길러 먹는 텃밭과 블루베리와 무화과가 기다리는 몇 그루의 화분들, 그리고 1층과 옥상의 잔디밭. 몇 사람 몫의 일이지만, 식물들에게 받는 에너지는 마음과 머리를 여과지처럼 걸러 준다. 잡초를 다 잡아 뜯어 깨끗해진 잔디밭, 노란 잎들을 제거하고 이발해 준 실내 화분들, 산소가 가득한 공기는 개운하다.


어릴 적 우리 집 마당엔 빨간 벽돌로 테두리가 쳐진 작은 화단이 있었다. 분홍 보랏빛 과꽃이 피어나고, 개미 툭 털어내 샐비어 꽃의 꿀을 따먹었고, 명아주나 버들 강아지풀을 따 몽돌로 짓이겨 나물 반찬을 만들고, 빨간 벽돌을 바닥에 갈아 만든 고춧가루, 조개껍질 갈아 만든 소금으로  양념하며 상 차려내던 소꿉놀이. 풀을 뽑을 때엔 자꾸 그곳이 생각난다. 기억 속엔 엄마 아빠도 젊고, 동생들도다 있다.

왼쪽부터 블루베리 2그루, 무화과 2그루, 콩, 수박,  토마토, 시금치, 열무 :)

https://www.instagram.com/p/BUXtUcEFZNZ/

내 정원에는 함께 풀 뽑아 주며 공중으로 물총을 쏘아 대며 풀과 싸움을 벌이는 아들이 있고, 가물었으니 물을 아끼라고 잔소리하는 엄마가 있고, 부지런히 나뭇가지 정리하고 잔디깎아 주는 남편이 있다. 옷상에서 자란 보드라운 열무로 담근 김치는 아들이 또 먹고 싶다 하는 추억에 기록된 맛이 되었고, 고수는 토마토 살사에 투하되어 아들이 연신 엄지 손가락 치켜세우는 한 끼 식사가 되었다. 내 첫 정원은 손가락 지문과 바꾼 일상이다.

수박씨앗 10개를 심었는데 다 싹 틔워 난감하다. 잘 키워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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