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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little cabinet Mar 19. 2023

7. 미술관, 박물관에 가요

외출

 미술관은 취미이자 특기였어요. 매일 미술관으로 출근하면서 주말이면 서울시내 전시장을 누볐고, 작가들을 만나 작품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재미있었죠. 일을 하다가도 종종 전시장으로 올라가서 사람들을 관찰했어요. 더 필요한 건 뭘까 무엇을 어떻게 더 준비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면서요. 그냥 전시장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맘이 편하고 좋았어요. 그러다 영국에 오게 되었죠. 미술관에 대해 더 공부할 수 있다는 기대. 미술관을 가고 또 갈 수 있다는 흥분된 마음. 여행을 오면 허덕이면서 분 단위로 쪼개 보던 전시들을,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찾을 수 없는 찐 정보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신이 났죠. 런던 살이가 고달프고 힘들어도 미술관에 가서 앉아있으면 뭔가 치유받고 보상받는 느낌이랄까요. 미술관을 너무 사랑하는 저에게 영국, 런던은 그저 천국이었습니다. 날이 좋은 날은 날이 좋아서, 날이 흐린 날은 날이 흐려서 미술관에 갔어요. 여유로운 사람들 틈에서 함께 여유를 즐기는 게 좋았어요.

아이를 낳고 초보 엄마인 저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했어요. 제가 택한 공간은 역시 미술관이었습니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고 적정한 온도를 유지해 주는 곳이죠. 수유하고 기저귀 갈기 편하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도 있고, 안전하고 친절합니다. 아이가 유모차에서 잠이 들면 잠시 앉아 커피를 마시며 쉴 수도 있고, 전시장 한 바퀴를 돌며 작품을 볼 수도 있죠. 세상에 이렇게 육아하기 좋은 공간이 또 있을까요? 미술관은 아이에게도 편안하고 더불어 엄마의 나의 욕구까지 적절하게 채워주는 곳이었어요.


런던에 있는 웬만한 미술관 박물관은 아이와 함께 다 가 본 것 같아요. 혼자 다니던 것과는 너무 달랐죠. 아무렇지 않게 타던 에스컬레이터, 걸어 오르던 계단을 유모차를 가지고 이용할 수는 없었어요. 유모차 2대가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엘리베이터는 타이밍이 잘못 맞추면 한참이고 기다려야 해요. 협소한 기저귀 갈이대, 너무 멀리 위치한 어린이 화장실, 수유실  등 배려를 덜 받고 있다고 느껴질 때면 나도 모르게 불평이 터져 나왔어요. 아이가 놀기에 위험하지는 않은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이런저런 것들을 고려하다 보니 미술관을 평가하는 척도도, 좋아하고 자주 가게 되는 미술관도 많이 바뀌었어요.

아이가 어렸을 때는 아이를 데리고 가기 안전하고 편한 곳을 찾았다면 이제는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을 찾아요. 기차에 빠져있는 아들에게 엔진을 보여 주러 과학 박물관에 가요. 공룡 만화에 빠져있는 시기에는 자연사 박물관에 가서 공룡알도 공룡 뼈도 봤죠. 팔을 벌리고 슈우~ 소리를 내며 하늘을 나는 시늉을 하는 아이와 함께 항공박물관에 갔어요. 이번 주는 친구들과 ‘한류’에 관한 전시를 보러 가기로 했어요. 아들은 벌써부터 노트와 색연필을 챙기며 미술관에 갈 준비로 신이 나 있어요.

아이를 낳고, 내가 그동안 참여해 보고 싶었지만, 못해봤던 프로그램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가족들을 위한 투어 프로그램, 방학마다 열리는 여러 이벤트들을 찾아다녔어요.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마음이지만 저도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세상에 내가 모르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그동안의 리서치들은 정말 리서치일 뿐이었죠. 물론 모든 프로그램이 다 좋았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분명한 건 가족 관람객의 입장에서 참여하고 느끼는 미술관은 외부자로 관찰하던 것과 많이 달랐다는 거죠. 지난 시절에는 아이들의 움직임이 작품을 향한 위협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이제는 호기심 가득한 관심과 표현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죠. 자유로운 움직임, 생각이 공존하는 복작복작한 분위기가 전시를 향한 큰 칭찬이란 것도 알게 되었고요. 미술관에서 일하고, 전 세계의 미술관을 다니며 연구하고 미술관을 만드는데 참여하기도 했지만, 나는 꼬마 관람객, 가족 관람객을 충분히 배려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나에게 아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역시나 경험은 중요합니다.

집에서 템스강을 따라 슬슬 걸어 복솔 다리를 건너면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이 있어요. 아이가 어렸을 때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유모차를 밀며 산책 삼아 미술관으로 걸었어요. 아이는 유모차 앉아 세상구경을 하며 신이 나 발을 동동 굴렀고, 바람을 맞으며 흥얼흥얼 노래도 불렀죠. 이제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걸어요. 스쿠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누가 빠른지 시합도 하죠. 빠른 걸음으로는 20분이면 도착하겠지만, 아이와 걷다 보면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그날의 기분과 날씨에 따라 달라져요. 미술관 앞 계단은 오르락내리락 재미있는 놀이터가 되고, 정원에 작은 돌멩이들을 고르고 또 골라요. 입구에 들어서면 문 앞의 경비원 아저씨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자기가 싸 온 간식 가방을 열어 검사를 받아요. 뿌듯하게 입구를 통과하고 제일 먼저 향하는 곳은 카페예요. ‘초콜릿 파우더 뿌린 베이비치노 한잔 주시겠어요? ‘Can I have a Babychino, chocolate on top please?’ 원하는 음료를 주문하고 싸 온 간식 가방을 펼쳐서 허기진 배를 달래죠. 차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봐요. 우리와 같은 처지의 아이와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앉아 차를 마시고 있어요. 별다른 말없이 눈으로 찡긋 인사를 나눠요. 간식시간이 끝나면 회전 계단을 올라 메인 홀로 가요. 동그랗게 말려있는 계단을 불안 불안하게 걸어 오르던 아기는 이제 계단쯤은 성큼성큼, 천정의 돔을 보며 멋있다고 평가할 줄 아는 꼬마 관람객이 되었어요.


시기마다 다른 설치 작업을 보여주는 메인 홀. 높은 층고와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채광. 빛의 색과 온도가 모두 작품이 되는 공간이죠. 온몸으로 작품을 즐겨요. 홀을 걸으며 울리는 발소리를 들어보기도 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천정을 올려다보기도 하죠. 전시 설명서를 한 장 빼어 들고 돌돌 말아 망원경을 만들어요. 작고 동그란 구멍으로 기둥의 장식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해요. 또 어떤 날은 미술관의 그룹 투어를 따라가며 전시를 둘러보기도 해요. 제일 조그마한 꼬마 관람객이지만 투어에 임하는 자세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하죠. 설명을 열심히 듣다가 잘 모르겠으면 무리에서 쪼르르 걸어 나와 엄마에게 질문해요. 힘이 들면 그만 들어도 좋다고 설득해 보지만 끝까지 투어를 마무리해요.


반짝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상을 담는 그 모습이 너무 예뻐요. 아이의 눈은 깊고 넓어요 투명하고 직설적이라 더 마음에 와닿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그림을 읽고 있자면, 무심코 지나치며 보던 작품들도 덕분에 다시 자세히 보게 돼요. 내 눈높이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여요. 어떤 날은 작품 앞에 털썩 주저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나는 이게 좋아. 엄마는 뭐가 좋아?,  “사람들이 기뻐 보여서 좋아.”, “이 그림은 너무 다크 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죠. 얼마 전에는 학교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데이비드 호크니에 대해 배웠나 봐요. 두 작가에 대해 설명하고는 자기는 밝고 화려한 색을 좋아하기 때문에 호크니의 작업이 더 좋다는 거예요. 취향도 확실해지고 있어요. 전시장에 놓여있던 뒤샹의 ‘샘’을 보고 깔깔거리고 웃어요. 크리스 오필리의 ‘성모마리아’를 보고 코끼리 똥을 재료로 썼다는 사실에 눈이 휘둥그레지죠. 이보다 훌륭한 미술관 메이트가 또 있을까 싶어요. 아이가 건네는 솔직한 감상평은 나의 생각을 깨트리고 새롭게 해요. 작품을 진지하게 감상하고, 천장과 바닥의 타일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하지만 아이만의 감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 혹여라도 제가 보탠 몇 마디가 아이의 생각을 네모 상자에 가둘까 걱정되거든요.


두 돌 반쯤 무렵인가 봐요. 여느 때와 같던 어느 날 한가로운 오전 시간을 보내던 그때 지수가 물었죠. “엄마 오늘은 뮤지엄 갈까요?’ 츄츄 뮤지엄 갈까요? 아니면 다이너소어 뮤지엄 갈까요?” 너무나 뜻밖의 이야기에 놀랍기도 하고, 그동안 너도 즐거웠구나 하는 생각에 기쁘기도 하고, 같이 즐겨주는 아이에게 고맙기도 했어요. 재미없단 투정 없이 따라나서 주고, 눈에 담아주고, 온몸으로 즐기고 느껴주는 아이가 그저 고마웠어요. 아름다움을 즐기길, 취향을 가지길, 그리고 그 생각과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봅니다. 엄마의 욕심을 조금 보태자면, 언젠가 아이가 커서 마음이 힘들 때 쉴 수 있는 공간이 미술관이 되길 바라요. 아이와 다니던 미술관 이야기를 돌이켜 보다 보니, 나를 위해 전시장을 찾던 시간이 언제였던가 싶네요. 오늘은 나를 위해 전시를 보러 가야겠어요.


한국의 이야기는... @1of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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