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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little cabinet Apr 05. 2023

12. 사랑하는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글을 마치며_우리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방금 전에도 자는 아이를 품에 꼭 안아보고는 뽀뽀를 잔뜩 해 깨웠어요. 잠결에 귀찮을 법도 한데 엄마를 꼭 안아주는 작은 품이 깊고 따뜻합니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제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 바로 널 낳은 일이다.’라고요. 이제야 엄마의 그 말이 이해가 됩니다. 그때는 그 말이 참 무겁고 싫었어요. 말이 무겁게 느껴졌던 건 당연해요. 사랑이 가득했기 때문이겠지요. 아이를 낳고 나니 부모님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요. 전 제 사랑을 아이가 너무 무겁다 느끼지 않게 가볍게 만들려고 노력 중이에요. 시간이 흘러 아이가 저를 추억할 때 그저 행복하게 웃을 수 있도록요.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아이를 갖기 전 30여 년의 인생은 나 하나만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철이 없었죠.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참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랑도 참 이기적으로 했어요. 미술관에서 일하던 시절 함께 일하던 큐레이터 선생님이 계셨어요. 결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섣부르게 장담을 하고 다니던 철없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그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있어요. 육아란 인생에서 희생을 배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고요. 그게 좋은 건가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죠. 선생님도 행복하다, 좋다고 말씀하진 않으셨어요. 특별하다고 하셨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 결혼을, 육아를 선택할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 모든 과정을 겪고 보니 내 인생에 다시없을 특별한 경험인 건 맞는 것 같아요.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들만 생각하며 앞을 향해 달리다 보니 안타깝게도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영국에서 시작된 새로운 삶은, 내 모든 걸 잠시 내려놓게 했어요. 인생 처음으로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이 어색해서 참 많이 방황했고, 더욱더 무리에 속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주어진 이방인이라는 타이틀이 본의 아니게 제게 적당한 거리를 알게 해 주었어요. 내가 안전할 수 있는 거리, 그 안에서는 편안함을 느꼈죠. 외롭지 않을까 하는 같이 사는 사람의 걱정을 알지만, 저는 요즘 어느 때보다 발 뻗고 잘 자요. 항상 달고 살던 위장약과 두통약을 더 이상 먹지 않아요.


아이 돌 무렵쯤 인터뷰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무례한 면접관 중 한 명이 ‘소위 말해 감이라고 하죠? 떨어진 감을 찾을 수 있겠어요?’라고 물었죠. 지금이라면 톡 쏘아붙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는 마음이 여물지 않았던 시점이라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어요. 아직도 분해요.


경쟁과 긴장 가득한 삶 속에서 인내하고 스스로를 단련해 온 사람들과 어떻게 같을 수 있겠어요. 네 맞아요. 저 경단녀예요. 일에 대한 감은 떨어졌지만, 인생살이에 경험치를 얻었어요. 이제는 알아요. 세상엔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아이와 함께 쌓아온 제 인생 경험이 분명 어디에선가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걸요.  두 가지를 잘 못하는 나는 엄청난 시행착오와 좌절의 시간을 겪었어요. 누군가는 적당히 타협한 인생 아니냐 말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정도는 걸러 들을 줄 아는 굳은살도 배겼답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도 때론 필요해요. 그리고 육아에 푹 빠져 살던 나. 행복했어요.


이제 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불같이 사랑했던 시간을 잘 마무리하고 아이와 나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찾을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스위치를 끄듯이 ‘자 오늘부터야! 딸깍’ 할 수는 없겠죠. 이 글을 쓰며 찬찬히 준비해 보려고요. 조금씩 천천히 나의 삶의 균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시기가 왔어요. 스스로에 대해 참 야박하고 비판적인 사람인데. 잘했다. 고생했다. 칭찬해 주고 싶어요.


사랑하는 지수에게 

사실 엄만 널 품는 10달 동안 많이 두려웠어. 내 욕심에 널 세상에 만들어 내는 건 아닐까, 너는 과연 이 세상을 즐거워할까, 너에게 고단함만 주는 건 아닐까 불편한 마음도 들었지. 그래도 욕심부리길 잘한 것 같아. 네가 태어나던 순간은 아까워서 잘 쳐다보지도 못하겠더라. 세상밖에 나오느라 얼마나 바쁘고 힘들었을까. 고맙고 가여웠어.


엄마는 참 엉덩이 무거운 스타일인데, 네가 ‘잉’하는 소리에 엄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어디서 이런 힘이 솟아나는지 모르겠지만 너의 한마디에 엄마의 몸은 재빠르게 반응해. 작고 연약한 널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모든 일에 용기가 나. 예전 같았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칠 일들도, 너를 위해 소리를 내고, 행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네 덕분에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어. 고마워.


엄마는 참 말 재주도 없고 재미도 없는 사람인데 요즘은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쏟아내. 넌 엄마가 하는 이야기에 까르르 웃어줘. 끊임없이 세상에 대해 묻고 엄마의 얼렁뚱땅 대답에도 눈을  반짝이고 귀를 기울이지. 엄마는 참 낯을 가리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이가 참 예쁘네요’라고 으레 건네는 인사에 묻지도 않은 대답들을 쏟아내. 덕분에 수다쟁이가 되었어. 고마워.


엄마는 참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데 말이야. 너와 많은 곳을 다녔어. 너와의 즐거운 하루,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매일을 계획하고 고민해.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고, 더 많이 웃게 해주고 싶어서 말이야. 힘들 만도 한데 씩씩하게 따라와 주고, 재밌게 즐겨주고, 오래오래 기억해 주는 널 보면서 또 다음을 계획해. 그렇게 보낸 하루하루를 다시 떠올려 보면 엄마의 세상도 넓어졌다 느껴. 넌 날 변하게 해. 변하는 내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어떤 부분은 꾀나 마음에 들어. 고마워.


뱃속에서 10개월, 태어나 6년 남짓. 우리 참 호흡이 척척 잘 맞았어. 엄마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길 바라. 하나부터 열까지 서툰 엄마인데 항상 웃어주는 해피보이. 고마워.


너를 키우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자신해. 행복했지, 하지만 체력이 부족했고 엄마라는 역할에 적응하느라 나를 잃어가는 게 좀 힘들어 툴툴거렸어. 지금 생각해 보니 말이야. 색을 잃고 있다고 슬퍼했던 시간 동안 넌 나에게 여러 가지 색을 더해주고 있었어. 힘들다 투정 부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하루 종일 종알종알 떠들고 방긋방긋 웃고, 흥얼거리는 너. 네 두 눈에는 별이 떠있어.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하는 네가 참 예뻐. 너의 배움을 함께 나누는 건 기쁘고 재밌어. 삶에 매 순간에 진지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만 너에게 많은 것을 배워. 마워.


너는 엄마 배꼽이 세상에서 제일 보드랍다며 만지다 잠이 들어. 엄만 몰랐어 엄마의 배꼽이 이렇게 특별해질 줄. 침대에 누워 하루를 나누는 시간은 정말 행복해. 가끔 자기 싫다고 버티는 너의 에너지가 버거울 때도 있지만 말이야. 너의 하루를, 너의 세상을 나눠줘서 고마워.


엄마는 너와 시간을 보내며 불안이 높다는 걸 깨달았어. 엄마의 불안의 끝은 잔소리로 이어지지. 넘어지지 않을까, 다치지 않을까,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여러 걱정의 마음이 말로 튀어나와. 참아야지 기다려야지 예쁘게 말해줘야지 계속해서 생각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더라고. 아빠가 출장을 가고 우리 둘이서 잠들던 밤에 네가 꼭 잡아주던 손, 무섭지 않게 해 주겠다며 꼭 안아주던 품 너무 든든하더라. 그때 알았지. 이건 나의 불안이라는 걸. 엄마의 불안을 너에게 주어서 미안해. 그리고 알게 해 줘서 고마워.   


우리 서로 마음 상하게 할 때가 있지. 화내고, 짜증 내고, 그리고 사과하고. 너도 네 마음이 마음대로 안되고 눈물이 나고 짜증이 나고 그럴 때 있잖아. 엄마도 그럴 때가 있어. 그래서 화를 안 내겠다 약속은 못해. 살아보니 안 싸운다고 좋은 것도 아니더라. 우리 서로 내 말 좀 들어달라고 화도 내고, 가끔 상처도 줄 테지만, 그 상처 보듬어 주면서 단단해지자. 정말 많이 많이 많이 사랑해. 이 세상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만큼 사랑해. 엄마 아들 해줘서 고마워.


한국의 이야기는 @1of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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