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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little cabinet Apr 02. 2023

11. 떠나요 둘이서

여행

타향살이를 하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기와 여행을 일찍 시작했어요. 무려 50일에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을 날았지요. 따뜻한 온돌방에서 뜨끈하게 몸을 지지며 푹 쉬고 싶기도 했고, 태어난 손주가 궁금하실 할머니 할아버지도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어요. 한국 방문을 위해 영국에서 출생신고도 해야 했고, 여권과 비자도 만들어야 했죠. 시리고 축축한 영국의 겨울날, 바람 들지 않게 단단히 챙겨 입고 여기저기 분주하게 다니며 한국 갈 준비를 했습니다. 목도 못 가누는 아이를 안아 여권 사진도 찍었죠. 모든 일이 만만치 않았어요. 고작 5년 전 일인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용감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50일 드디어 첫 한국행 비행기를 탑니다. 친정엄마와 함께였지만 모든 게 다 걱정이었죠. 잔뜩 긴장한 상태로 12시간을 깨어있었던 것 같아요. 어른도 힘든 비행인데, 50일 아기는 얼마나 힘들까. 공기가 너무 건조하진 않을까? 추울까? 더울까? 비행기에 같이 타신 한국 어른들의 걱정 어린 조언이 가시처럼 돋아 출산으로 예민해진 엄마의 맘을 후벼 팠습니다. 모두의 걱정과는 달리 지수는 ‘잉’ 하는 울음소리 한 번을 내지 않고 먹고 자며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어요. 밤 비행이고 신생아라 오히려 수월했지요. 밤낮으로 계속되는 수유에 따로 시차 적응할 필요도 없었고 가족들의 품에서 푹, 잘 쉬었습니다. 딸내미에 손자까지 챙기랴 고생하는 부모님을 보면 코끝부터 찡해지지만 친정 방문은 언제나 옳습니다!

어찌해서 두 번째 한국 방문은 18개월 아이와 단둘이 다녀왔어요. 첫 번째 한국행과 비교하면 두 번째 여행이 훨씬 힘들었던 것 같아요. 영국에서 한국 가는 비행은 밤 비행이어서 아이를 재우고 편하게 먹고 쉬었어요. 그런데 이제 뭘 좀 아는 나이가 된 아이는 밤마다 아빠가 보고 싶다고 영국에 가자며 울었어요. 낮에 잘 놀고 잘 먹다가도 밤만 되면 불안이 찾아오는 건지 정말 서럽게 울어댔지요. 낮에 신나게 놀아주셨던 할머니 할아버지 보기가 좀 민망하기도 했어요.


문제는 영국으로 돌아오는 비행이었어요. 아침 10시에 한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한창 먹고 놀 시간에 비행기를 타니 아이를 좌석에 머물게 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어떤 간식도 장난감도 통하지 않았죠. 비행시간은 엄마인 저에게 너무도 길었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세상 구경을 시작한 아이에게 비행기는 얼마나 재미있겠어요. 비행기 실내를 이렇게 샅샅이 둘러보긴 또 처음이었어요. 아이와 둘만의 비행이라 일부러 좋은 좌석을 예매했지만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수 없었죠.

캐빈 뒤에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걸 발견한 아이는 복도를 따라 걷고 또 걸어 승무원 이모들에게 갔어요. 인사를 하고 물을 한잔 받아 마시고 돌아오길 반복했죠. 간식을 야무지게 잘 챙겨 먹으니 아이의 기저귀는  계속해 빵빵해졌고 엄마의 일은 더 늘었죠.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승무원분들은 친절하게 아이와 눈을 맞춰주셨고, 아이의 낮잠 시간에는 제 간식을 챙겨주기도 하셨어요. 영국으로 여행 가시는 어머님들과 수다도 떨었고, 지수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아기 엄마도 만났어요. 아이와의 비행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며, 아이와 까꿍 놀이도 해주고 비행을 잘한다며 칭찬도 해 주셨죠.


첫 번째 한국행에서는 신랑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몰랐어요. 아이를 챙기고 유모차를 밀며 짐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오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 말이에요. 욕심내서 잔뜩 챙겨 온 먹을거리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바리바리 챙겨주신 장난감과 책, 덕분에 대형 러기지가 3개에 커다란 상자가 하나 더 있었어요. 그걸 몽땅 실은 카트를 유모차와 동시에 밀고 게이트 밖으로 나오는 건 불가능했어요. 짐가방이 제 키만큼 높이 쌓여있어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고, 무게도 엄청났죠. 친절한 영국 할머니가 도대체 이게 다 뭐냐며 웃으시고는 카트를 밀어주셨어요. 덕분에 무사히 게이트 밖으로 나와 마중 나와 있던 신랑을 만날 수 있었어요.

두 번째 한국 여행에서 돌아온 지 딱 5일 만에, 한국에서 가져온 짐을 풀자마자, 다시 여행 가방을 싸고 핀란드, 투르크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12월에 예정되어 있던 워크숍에 참석해야 했거든요. 함께 하기로 했던 신랑은 바쁜 회사 스케줄 때문에 함께 하지 못했고 지수와 저 둘이었어요. 역시 용감했지요. 12월의 핀란드는 정말 추웠어요. 유모차 방풍 커버라면 칠색 팔 색을 했던 아이도 추웠는지 커버 안에 쏙 들어가 얌전히 앉아있었죠. 낮에 해가 뜨는 시간은 고작 3시간뿐이었고 낯설고, 어둡고, 추운 도시에서 꼬마를 의지해 3일을 보냈어요. 워크숍을 준비하신 분들의 배려로 아이와 함께 미술관도 가고, 도서관도 가면서 새로운 도시를 즐겼습니다.


12월의 핀란드는 아이와 즐길 거리가 많았어요.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있었으니까요. 난생처음 산타 할아버지와 산타할머니 요정들을 만났습니다. 올 한 해 착한 어린이였다고 말하며 장난감 청소기가 받고 싶다고 했지요. 우연히 들어간 성당에서는 ‘gloria in excelsis deo’의 하프 연주가 흐르고 있었어요. 아름다운 소리에 맞춰 꼬마는 흔들흔들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어둑한 성당, 하프 선율과  아이의 움직임이 꿈같던 순간이었죠.


문제는 워크숍 당일이었어요. 가벼운 분위기에서 같은 주제를 가지고 발제를 이어가는 자리였어요. 함께 참여한 한국인 선생님들께 아이를 잠시 부탁했습니다. 예상대로 아이는 엄마에게 가겠다며 발을 동동 굴러댔고, 결국 저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발표를 이어갔습니다. 그 당시 제 관심사는 작가나 큐레이터같이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엄마 아빠들이 어떻게 아를 병행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무릎을 차지하고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아이가 야속하기만 했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 삶의 고민과 무릎에 앉은 아이, 발표 주제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지요.


발표와 일정을 잘 마쳤지만  어디 하나 도움받을 수 없는 나의 상황과 삶이 노골적으로 내 앞에 펼쳐진 여행이었어요. 아직도 가슴 한편에 춥고 당황스러웠던 그 여행의 기억이 남아있어요. 그 당시 상황에는 자신의 일정이 바쁘다며, 따라와 도와주지 않은 신랑이 미웠어요. 모든 걸 왜 나 혼자 감당해야 하나 답답하기만 했지요. 하지만 육아의 극한 상황이 엄마로서 더 많은 경험을 하게 하고 성장하게 했던 건 분명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아이와 우당탕탕 여행의 추억이 많이 생겼거든요. 다시 돌이켜봐도 너 참 용감하다며 칭찬해 주고 싶네요.


새로운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따라와 준 아이 덕분이라 생각했어요. 둘이 한 여행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둘이 아니었어요. 모두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죠?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혼자가 아니었어요. 가끔 아이에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을 보며 왜 저렇게 싫어하는 티를 내는 거지? 하고 툴툴댈 때가 있어요. 하지만, 호의가 당연한 건 아니죠. 미소를 내어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준 모든 인연과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어요. 지나온 여행의 추억이 벌써 그립고 흘러버린 시간이 아쉽기만 합니다. 이번에는 또 아이와 함께 어디로 떠나볼까 고민해 봐야겠어요.


한국의 이야기는... @1of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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