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시민들은 600만 마리 쥐와 함께 산다
프랑스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모두 부푼 가슴을 안고 온다. 에펠탑의 위용과 샹젤리제의 화려함, 노천카페의 낭만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설레임. 말로만 듣던 '로망의 도시' 파리에 드디어 왔다는 벅참. 그러나 그 기대가 당황스러움으로 바뀌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곳이 파리이기도 하다.
오물 냄새가 진동하는 파리 지하철의 악취는 유명하다.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개똥은 또 어떨까. 파리에서 관광을 하다 보면 가장 난감한 문제가 화장실을 찾는 것이다. 식당이나 카페에 일부러 들어가지 않으면 갈 수가 없는 화장실. 그렇기에 거리에는 가끔 노상박뇨 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기도 한다. 공공화장실이 유료인 데다 찾기가 쉽지 않아 화장실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어디를 가나 모든 곳에 깨끗하고 편리하게 갖춰져 있는 공공화장실을 프랑스에서는 찾기 힘들다. 큰 쇼핑몰에서조차 화장실은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고 대형마트에는 아예 공공화장실이 없다.
거리에 박스형 공용화장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관리가 엉망이어서 전혀 청결하지 못하고, 그 주변은 여기저기 소변 흔적과 오물 냄새로 악취가 진동하여 들어가고 싶은 마음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돈 많다는 나라에서 왜 지금껏 무료 공공화장실 문제 하나를 해결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생리 기능에 대한 욕구는 그 어떤 것보다 매우 중요한 ‘기본 인권’ 임에도 말이다. 더구나 파리는 '더러운 도시'라는 오명을 쓴 지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 파리가 이처럼 유쾌하지 않은 타이틀을 갖게 된 데에는 악취뿐만이 아닌 엄청난 쓰레기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파리 거리를 걷다 보면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환경미화원들은 매일 두 차례 쓰레기들을 수거해가는데 왜 거리에는 쓰레기가 넘쳐날까.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담배꽁초도 한몫한다. 파리에서 1년에 버려지는 담배꽁초만 150t에 이른다고 한다. 오죽하면 파리 시는 자체적으로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파리시 '쓰레기와의 전쟁' 기사: http://bitly.kr/yVhVis9OAH)
환경미화원 채용과 도로청소차량 구입, 쓰레기 투기 단속요원과 도시미화 전담부서를 늘리는 방안으로 말이다. 2017년 파리 시장은 ‘도시 청결을 시정의 최우선 과제로 두겠다’며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만큼 사람들이 체감하는 청결도가 심각하다는 말이다. 파리는 이미 매년 5억 유로를 들여 청결사업을 벌인다고 한다. 그러나 상황이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예산을 투입하고 담당 인력을 늘려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에 그렇다. 시민들 개개인의 자발적인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파업의 나라 프랑스는 환경미화원들도 상시적으로 파업을 한다. 그들이 일주일씩 보름씩 파업을 하면 쓰레기 수거는 물론 곳곳의 쓰레기통이며 거리의 오물처리는 올스톱된다. 안 그래도 깨끗하지 않은 거리 곳곳은 쓰레기 천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리에 쓰레기가 넘쳐나고 악취가 코를 찔러도 사람들은 그러려니 한다. 노조의 파업에 관대할 뿐 아니라 파업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의 청결이 달린 문제가 이렇게 돌아가는 것은 썩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이 현재 파리의 또 다른 골칫거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쥐떼 출몰이 그것이다.
파리는 최근 몇 년 사이 여기저기 나타나는 쥐떼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낮에 공원 잔디에 누워있는 시민들 옆을 태연하게 뛰어다니는 쥐들과 밤이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쥐들이 자주 목격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파리시는 ‘쥐 박멸’을 이유로 주요 공원들을 폐쇄하였고 곳곳에 ‘쥐덫’을 설치하였다. 쥐들이 쓰레기통을 타고 올라가지 못하게 디자인 개선 작업을 하고 비둘기나 쥐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폭발적으로 증가한 쥐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뉴욕 다음으로 쥐떼가 많은 도시로 알려져 있는 파리에는 현재 파리 인구의 3배에 해당하는 600만 마리의 쥐가 서식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쥐떼와의 전쟁’ 프랑스 기사: http://bitly.kr/oszDfo6dqs)
더구나 파리는 100년 이상된 건물들이 많고 하수처리 시설 또한 낡아서 지하에 번식하는 쥐들을 사실상 찾아낼 방법이 없다. 얼마나 시민들이 쥐로 골머리를 앓았으면, 올해 초 파리 시장 선거의 최대 쟁점이 ‘쥐 소탕’이었다. 여당에서는 쥐가 접근할 수 없는 쓰레기통을 보급한다 약속했고, 야당에서는 아예 쥐의 위치를 감시하는 앱을 개발해 공개하기도 했다. 그만큼 시민들의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현재 파리에서 목격되는 쥐들은 살모네라균과 급성 열성 질환인 렙토스피라증 전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에게는 오래전 흑사병을 겪은 공포가 있다.
상황이 이 지경임에도 파리시는 적극적으로 쥐를 소탕할 수 없다. 동물보호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쥐 집단 학살 반대 청원’에 2만 5천 명이 서명하면서 사실상 방역이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흑사병을 일으킬 만큼 인간에게 해로운 동물임에도, 동물이라는 이유로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 이것은 '본질을 벗어난 똘레랑스'로 그들의 코로나 대응과 유사하다. ‘사생활 침해 반대’라며 위치추적 시스템을 비난하던 그들은 정작, 비교할 수 없이 많은 국민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손 놓고 지켜봐야 했으니 말이다.
쥐의 개체수 증가 이유로 EU의 독극물 사용 규제를 지적하지만 실제 가장 큰 원인으로는 사람들이 버리는 음식물이 지목되고 있다. 개체수를 줄이는 최선은 먹이가 될 만한 것을 없애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리가 지금처럼 쓰레기로 가득 차 있는 한, 번식하기 좋은 환경을 쥐들이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파리의 쥐떼 출몰 문제는, 파리 거리의 넘쳐나는 쓰레기와 청결하지 못한 환경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봐야 한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7일 쓰레기 무단 투기 벌금을 135유로로 대폭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시민들이 오염된 마스크와 장갑, 티슈 등을 거리에 함부로 버린다는 환경미화원들의 불만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여기에 파리시의 ‘청결 사업’이 실패한 단서가 들어있다. 이것은
아무리 많은 예산을 들여 청결 사업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이유가, 도시 청결의 근본문제는 ‘시민 의식 수준’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말해준다.
유럽과 프랑스가 코로나 앞에 허망하게 무너졌던 이유와 같다. 강한 봉쇄 정책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강압적인 제재가 있지 않으면 시민들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그들 사회의 왜곡된 자유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개인이 자유로울 권리’가 ‘나만 편하면 되는’ 이상한 개인주의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그것이 가져온 결과를 목도하고 있다.
본 글과 연결된 필자의 다른 글
* 파리 공원 쥐떼 사진 프랑스 기사: http://bitly.kr/qH8wLeRWMB, http://bitly.kr/A9Groeb2C8 * ‘쥐 지도’ 앱 가디언지 기사: http://bitly.kr/V172CYCkoW * 파리 '쥐와의 전쟁' YTN 영상: http://bitly.kr/zxhR63LPvz * 파리 '쥐떼와의 전쟁' 기사: http://bitly.kr/bzL2uoaYEO * 파리시 ‘쥐 소탕작전’ 기사: http://bitly.kr/ICmLM3Krnq * 쥐떼 ‘퇴치 반대 운동’ 기사: http://bitly.kr/iLZKUPnm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