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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Jun 25. 2020

흑사병에 점령당한 프랑스,
무지와 어리석음의 끝은?


 멋진 옛 건물들이 즐비하게 서있는 파리의 거리. 그 안에는 넘치는 쓰레기와 쥐떼들이 있고, 화려한 중세 귀족들의 옷 아래에는 벼룩과 악취가 진동하는 몸이 있었다. 겉모습은 낭만적지만 속살은 그렇지 않은 것. 프랑스의 모순된 두 가지 모습이다. 천년의 세월 동안 오물과 악취가 범벅된 삶을 살아온 프랑스인들과 유럽인들. 거리가 더럽고 사람들 몸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올바른 위생 개념이 없던 그들의 삶 속에는, 자연스럽게 온갖 병균들이 함께 했었음을 뜻한다. 
 
 2014년 프랑스의 한 소도시에서 하반신 마비인 14살 소녀가 집에서 잠을 자다 밤새 쥐떼들의 공격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손가락이 문드러지고 225군데에 상처를 입은 경악스러운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중요한 것은 쥐떼 문제가 비단 파리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는 것이고, 쥐들이 살아있는 사람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또한 쥐 문제가 프랑스 도시들의 오래된 건물들과 낡은 하수 처리 시설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도 시사한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할 수 있다. 과연 흑사병은, 인류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질병일까.
 
 14세기 흑사병으로 사망한 파리 시민들만 도시 인구 절반인 5만 명에 이르고 당시 유럽 인구의 반이 사망하였다. 거리에 시체가 넘쳐나 강물에 시체를 버렸고 가족끼리도 서로를 버리고 도망갔다. 흑사병의 주범은 쥐들이었다. 정확히는 쥐의 털에 기생하는 쥐벼룩이었다. 왜 하필 그 시대에 쥐떼가 출몰했고 사람들은 맥없이 무너져 갔을까.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그것을 촉발시킨 원인이 있다. 중세 시대 유럽에서만 더욱 처참하게 쥐떼들이 나타난 이유는 그들의 청결하지 못했던 삶과 당연히 관련이 있다. 그것도 천년을 이어온 ‘오래된 관습’이라면 말이다.

'검은 죽음'으로 묘사되었던 흑사병은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들로 표현되곤 했다
거리에는 끔찍한 모습의 환자들이 여기저기서 신음하였고 시체들이 즐비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유럽인들은 제대로 된 의학 지식이 없었고 공포를 조장한 종교적 훈시로 무지한 행동들을 일삼았다. 의사들은 공복인 채로 화장실에 들어가 몇 시간 동안 악취를 맡게 했고, 팔에 피를 내는 사혈요법으로 체력을 소모해 병을 더 악화시켰다. 수도사들은 ‘하나님의 형벌’이라며 자신의 몸을 채찍질하는 고행을 했는데 이들의 고행은 노략질과 방화와 강간으로 이어졌다. 더구나 개와 고양이가 균을 옮긴다며 보이는 대로 잡아 죽이기까지 했다. 
 
 가장 큰 무지는 마녀사냥이었다. 유럽인들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유대인들에게 화살을 돌려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루머를 퍼뜨렸고 무고한 유대인들을 죽였다. 당시 집단 화형과 집단 교수형으로 학살된 유대인들만 수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유대인 학살의 시초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피해가 적었던 이유는, 그들이 손발을 자주 씻어 위생을 청결히 했기 때문이고 조금이라도 병세가 있으면 곧바로 환자를 격리시켰던 지혜 덕분이었다. 자신들의 더러운 환경과 잘못된 지식이라는 무지를 보고 싶지 않던 어리석음의 결과였다. 
 
 흑사병이라는 전염병에 사람들이 취약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1315년부터 1322년까지 계속되었던 유럽의 ‘대기근’이었다. 굶주림으로 이미 수백만 명이 사망했으며, 사람들은 고양이, 말, 개, 심지어 쥐, 벌레, 동물의 배설물을 먹었으며 나중에는 공동묘지에서 시체를 파내어 먹었고, 어린이를 유괴하여 인육을 먹는 일까지 발생하였다. 만연해 있던 혐오감으로 흉악한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흑사병 이전>의 저자 브루스 캠벨은 ‘흑사병은 50년 앞서 발생한 대기근의 결과’라고 진단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생명의 위협과 면역력의 감소로, 몸과 정신이 이미 피폐해진 상태에서 흑사병이라는 재난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혈로 피를 빼내는 황당한 처방을 하였던, 무지했던 중세의 유럽 의사들
청결했기에 피해가 적었던 유대인들을 집단 학살했던, 광기의 마녀사냥이 시작되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사람들의 행태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코로나의 원인균으로 지목되는 박쥐가 생각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몇십 년간 유럽인들이 온갖 짐승들과 쥐와 썩은 시체들까지 먹었을진대, 그것들로부터 과연 사람들은 안전하였을까 라는 것을 말이다. 


결국 비위생적인 분뇨 처리와 청결하지 못했던 몸, 위생적일 수 없던 극단적인 식문화 상태가,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과 온갖 전염병의 원인이었을 것임은 충분히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동양 탓’을 했다. 1347년 몽골과 전쟁이 한창일 때, 몽골군이 흑사병에 걸린 시체들을 자신들의 성벽 안으로 쏘아 보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지금도 모든 기록에는 흑사병이 유럽에 유입된 근거에 대해 그렇게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과연 그렇기만 할까. 설사 그 이야기가 맞더라도 흑사병은 이미 유럽에 존재했었다. 6세기에 이집트에서 시작된 흑사병이 지중해를 통해 유럽에 상륙했다는 연구 결과들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허물을 보지 않고 남의 탓으로 돌렸다. 거리에 넘쳐나는 오물과 자기들 몸에 가득한 이와 벼룩을 외면하면서 말이다. 현대의 전문가들은 분명히 말한다. 흑사병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원인은 도시의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이었다고. 실제로 흑사병이 자취를 감출 무렵인 17세기의 유럽은, 온갖 전염병의 학습으로 공중보건 정책이 자리를 잡고 시민들의 건강 상태가 충분히 좋아진 후였다.


소빙하기로 접어들면서 시작된 '대기근'으로 이미 수백만명이 사망한 14세기초 유럽
페스트를 일으켰던 쥐와 쥐벼룩 그리고 죽음의 춤으로 불렸던 흑사병의 참혹함

 
 역사학자 수잔스콧과 동물학자 크리스토퍼 던컨은 흑사병은 인류에게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1860년 중국, 1890년 인도, 1910년 만주, 1994년 영국과 인도, 2002년 미국 등 새로운 흑사병 발병 사례가 매년 수천 건씩 보고되고 있으며 그 수치는 계속 증가한다고 한다. 특히 최근 발병된 변종 흑사병은 기본적인 위생 수칙들을 잘 따르지 않으면 여전히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2월 20일 '빈대 예방법과 상처 치료법'이라는 '빈대 퇴치 캠페인'을 시작했다. 빈대들이 파리의 주택과 호텔 등에 창궐하여 골칫거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파리 시장에 출마했다 사퇴한 한 후보는 100일 이내에 파리의 빈대를 박멸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파리 시장 후보들은 '쓰레기와의 전쟁' '쥐 박멸' 공약에 이어 빈대 박멸까지 들고 나왔다. 21세기 최대 문명국 수도에서 연출되고 있는 풍경이다. 몇 년 전부터 파리는 출몰하는 쥐떼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흑사병이 생겨난 원인은 청결하지 못한 환경과 잘못된 위생 관념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쥐가 있었고 쥐벼룩이 있었다. 

 그렇다면, 파리의 현재는 충분히 청결하고 현대의 프랑스인들은 충분히 위생적인가. 돌아온 쥐들과 빈대는 과연 시민들의 건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까. 프랑스인들은 이제 코로나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걷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많은 이들이 축제와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는 여전히 하루 400명대의 신규 확진자가 나오고 있고, 6월 23일 하루에만 517명의 확진자가 있었다. 그리고 파리에 다시 빈대가 창궐하였다.
 
어쩌면 프랑스를 덮쳐 오는 건 지금, 코로나뿐이 아닐지도 모른다.






* 필자의 다른 프랑스 글

https://brunch.co.kr/@namoosanchek/207


https://brunch.co.kr/@namoosanchek/205


https://brunch.co.kr/@namoosanchek/175


https://brunch.co.kr/@namoosanchek/217


https://brunch.co.kr/@namoosanchek/206



* 참고 자료 : <흑사병의 귀환 > 수잔 스콧. 크리스토퍼 던컨 http://bitly.kr/d3vuyYW9rz, < 질병의 역사 > 프레데릭 F. 카트라이 트마이클 비디스 http://bitly.kr/JvX2gyf5At4, < 흑사병 이전 > 브루스 캠벨, 유튜브 강연 자료 http://bitly.kr/LxhFnw99Y9v, < 기후의 문화사 > 볼프강 베링어 http://bitly.kr/hYyYkFWHEG, < 동서고금 의술 이야기 > 강선주. 이문필 등 http://bitly.kr/lv7TMtwYpU, 위키백과 ‘대기근’ 영어 문서 http://bitly.kr/wJh61Ue3yq  위키백과 ‘흑사병’ 한글 문서 http://bitly.kr/PJRgBJu6WQ  
6세기 유럽 흑사병 창궐 위키문서 http://bitly.kr/EhBr7F3oPe  프랑스 장애인 아동 쥐떼 습격 사건 프랑스 기사 http://bitly.kr/X51lYdoAPj 한국어 기사 http://bitly.kr/LYKYrvYeqz 프랑스 코로나 확진자수 기사 http://bitly.kr/30v7VLK8ya 프랑스 2020년 빈대 창궐 가디언지 기사 http://bitly.kr/lGk8nfcUDd프랑스 빈대 한국 기사 http://bitly.kr/EJpxhBX0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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