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공기식당
조선왕조 최초의 궁궐이자 법궁(法宮)인 경복궁의 서쪽에 자리 잡았다 하여 <서촌>이라 불리는 이곳의 골목은 시간이 비껴간 듯 느리게 흘러간다. 청와대가 지척에 있어 자유당 시절만 해도 효자동에서 외지인이 자고 가려면 신고를 해야 했을 만큼 개발의 수혜를 받지 못해 여전히 골목 곳곳 한옥이 펼쳐져 있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가회동, 안국동, 계동과 재동을 아우르는 북촌은 사대부 집권 세력의 거주지였던 터라 옛 모습을 간직한 크고 웅장한 양반댁 한옥이 멋들어지게 남아있다지만, 서촌은 조선시대 역관과 의관 등 중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니 이곳의 한옥은 작고 소박하면서도 정감이 간다. 주민들이 살던 집이 소박하니 골목 역시 그러하다. 얽히고설킨 골목을 보물찾기 하듯 구비구비 다니다 보면 사람 냄새와 커피콩 볶는 냄새, 맛깔스러운 음식 냄새 폴폴 풍기는 좋은 식당과 카페를 만날 수 있는데 이 또한 골목 여행으로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이다.
통인시장 뒤쪽 골목에 자리 잡은 카레 파는 집, <공기 식당>도 이렇게 우연찮게 만나게 되었다.
맵고 얼큰한 음식을 즐기는 우리네 입맛에 호불호 없이 고루 사랑받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카레>이다.
서울과 지방 도시의 차이는 있겠지만, 카레가 널리 대중화된 시기는 상온에서 보관 가능한 레토르트 제품 형태의 <3분 카레>가 보급된 1980년대 경이다. 한국 카레의 역사는 <오뚜기>가 첫 페이지의 대부분을 장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보니 한국 카레는 카레 종주국인 인도의 마살라와는 전혀 다른 음식이고, 한국으로 카레를 전파한 일본의 카레와도 맛과 향, 먹는 방식 등에 있어 결이 약간 다른 측면이 있다.
한국 카레는 각종 야채가 이미 소스에 첨가된 상태로 묽게 끓여내어 <밥>에 비벼먹기 좋은 농도로 조리된다.
인도 마살라와 비교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 카레에 비해서도 굉장히 맛이 순한 편인데 이는 한국인의 밥상에 꼭 오르는 <김치>를 곁들여 먹을 때 비로소 맛의 강렬함이 완성된다는 점에서 아마 <한국화>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일본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쌀이 주식인지라 밥에 <비벼먹는> 형태로 개량되었는데, 덮밥 문화가 발달해서인지 카레 역시 낫또, 돈카츠, 알새우, 함박, 시금치 등 <토핑> 메뉴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인도의 커리는 고수, 커민, 육두구와 정향 등 십여 가지의 각종 향신료 페이스트를 믹스하여 조리한 음식으로 현지에선 <마살라>라고 한다. 카레 종주국은 분명 인도이지만, 세계화시킨 장본인은 정작 대항해시대의 <영국>이다. 음식이 대중화되고 보편화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어느 누구라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조달과 조리의 간편성>인데 상기 설명했듯이 십여 가지의 향신료를 개별적으로 가정에서 구비하기도 어렵거니와 조리 시마다 배합을 한다는 것은 복잡다단한 행위이다. 냉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대항해시대 유럽인들에게 커리는 냄새나는 고기의 잡내를 감춰주는 훌륭한 식재료였고, Curry Powder를 상품화함으로써 세계 곳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의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서촌 골목의 작은 카레 식당을 리뷰하며 거창하게 세계 각국의 카레 특징을 열거한 것은 사실 간판과 운영 형태만 보고 <일본 가정식 카레>를 상상하고 들어갔다가 <인도풍 카레>를 만나 먹는 내내 <카레의 정체성>에 대해 골몰하였기 때문이다.
식당 간판에도 일본어가 표기되어 있고, 사이드 메뉴 역시 일본 미야자키현의 향토 음식인 <치킨난반>이 준비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카레는 인도 커리처럼 <포트>에 담겨 서빙되는데 맛과 향 역시 인도 커리 전문점인 (강가)와 일본 커리 전문점인 (코코이찌방야) 중간 지대 어디메쯤에 자리한다.
음식의 정체성은 둘째치고 맛만큼은 굉장히 훌륭했다. 단맛이 강조된 전형적인 일본 카레에 비해 매콤하고 산미가 있는 것이 개성있게 느껴졌고, 정갈하고 단아한 플레이팅에서 골목식당 주인장의 솜씨와 내공을 엿볼 수 있어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