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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Jul 12. 2021

토종닭 오마카세와 신동막걸리

서울특별시 마포구 용강동 신세계

2019년 여름,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로 촉발된 Boycott JAPAN 캠페인은 우리네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일본 제품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2019년 BOYCOTT JAPAN 운동 (출처 : 뉴시스)

편의점 매출 효자 상품이었던 일본 맥주(아사히, 삿포로, 기린)의 자리는 국산 맥주로 대체되었고, 겨울 시즌 할인 행사를 할 때마다 긴 대기줄을 만들어내던 유니클로는 수십 군데의 지점이 폐업하였다. 멀게는 임진왜란, 가까이는 일제 강점기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 한민족 DNA에 새겨진 반일 정서에 Boycott JAPAN 운동이 트리거 역할을 하며 일본으로의 여행객은 급감하였다. 여기에 다시 코로나가 더해지니 일본은 이제 <가지 않는>을 넘어 <가지 못 하는> 지역이 되어버렸다.


“금단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인지 일본과 민간 교류가 급감하며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식문화는 오히려 우리네 삶에 깊숙이 들어왔으니 최근 미식 트렌드의 주요 Key word는 <오마카세>, <야키토리>, <텐동>을 빼놓을 수 없다.

미슐랭 야키토리 시대를 연 연남동의 <야키토리 묵>

실제 미슐랭이 발표한 <2021 빕구르망>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야키토리 식당 분류가 추가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백숙과 치킨

그러고 보면 한반도의 닭고기 정통 레시피는 탕반 문화에 기반한 백숙이고, 주로 소비되는 방식은 치킨이다. 즉, 우리에게 익숙한 닭고기 조리 방식은 <끓이거나> 혹은 <튀기거나>라는 두 가지 방식 중 택일의 형태일 뿐 닭고기를 <굽는> 형태는 낯설기만 하다.


그래서 그런지 국내에서 닭고기 구이 전문점은 대부분 일본 선술집인 <이자카야>의 형태로 존재한다.


우리가 닭에 대해 알고 있는 부위라곤 기껏해야 쫄깃한 닭다리와 퍽퍽한 가슴살 정도인데, 야키토리를 방문하면 근위와 안심, 껍질, 넓적다리와 종아리살 등 굉장히 세분화된 부위를 경험할 수 있다.

세분화된 돼지고기 특수부위 (출처 : 룰루룰루 블로그)

재미있는 현상은 한국에서 주로 소비되는 돈육의 경우 국산 돼지 삼겹살과 목살로 주로 소비되었으나 2010년 이후부터 버크셔, 듀록, 이베리코 등 품종도 다양해지고, 모서리살과 꼬들살, 가브리살과 항정살, 덜미살, 뽈살 등으로 부위가 세분화되었다는 것이다.


대중의 기호가 상향 평준화된 만큼 보다 희귀하고 독특한 미식을 찾는 수요 역시 증가하였는데 부위의 세분화는 바로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했다고 본다.

마포 용강동에 자리잡은 닭고기 오마카세 레스토랑, <신세계>

닭을 세분화하여 부위별 특성을 경험하고자 하면 야키토리에 방문하여 사케와 함께 즐기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는데, 마포 용강동에서 <우리네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굉장히 훌륭한 식당을 만났으니 상호처럼 <신세계>라 부를만하다.

30호 닭을 17 부위로 해체한 신세계의 플레이팅

상식적으로 닭을 세분화하여 부위별로 해체하려면 당연히 닭이 커야 한다. 우리가 삼계탕으로 즐기는 닭의 크기는 보통 5호(500g) 안팎인데, 이 집은 무려 30호(3kg) 사이즈를 사용한다. 내가 알기로 야키토리로 인지도 높은 쿠이신보가 15호를 사용하는데 이와 비교하면 이곳에서 사용하는 닭의 어마어마한 사이즈를 가늠할 수 있다.

닭고기 오마카세 식당, 신세계의 이박사 사장님

<이박사> 모자를 착용하신 사장님이 직접 닭을 해체하시는데 무려 17 부위로 나뉘어 제공된다.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안심과 가슴, 근위 외에도 쇄골과 종아리, 뽈살, 목살, 오돌, 허벅지, 종아리, 꽁지, 목 껍질과 식도, 간과 심장 등 닭고기에도 이런 부위가 있었어라는 생각이 들만큼 플레이팅이 감탄을 불러일으킬 만큼 풍성하다. 닭고기 해체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독학으로 부위를 해체하는 것을 배우셨다는데, 이 정도면 당연히 경지에 오른 <박사급>이다.

칠곡양주장에서 빚은 신동막걸리 (바나나향이 난다)

이 집의 음식과 찰떡궁합은 경북 칠곡양조장에서 주조한 <신동막걸리>이다. 바나나향이 입 안을 감도는 매력이 일품인데 적당한 감미와 산미의 밸런스가 아주 좋았다. 수도권에서 신동막걸리를 접할 수 있는 장소는 오로지 여기뿐이라고 알고 있다.


사장님의 재치 있는 입담도 술자리를 빛내주었지만, 직접 담그셨다는 석박지, 갓김치와 마늘종 장아찌 등 반찬 역시 일품이다.

신세계의 곁들임 메뉴 (위로부터 냉제육, 배추전, 호박전)

배추전과 늙은 호박전, 냉제육도 주문해봤는데 제대로  경상도 음식을 서울 하늘 아래에서 만났다는 것이 자못 신기할 정도이다. 부침개를  정도로 얇게 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기술이 아니나  정도 얇은 지짐이를 가생이가 타지 않게 전체적으로 동일한 굽기로 완성시켰다는 것은 요리 내공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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