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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Aug 20. 2015

좋아하는 일이 밥벌이라고
느껴질 때

좋아하는 일이 밥으로 느껴질 때

요가 선생은 인도의 신이 아닙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많이 지치고 힘든 날이 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업(業)으로 삼으면 평생 일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충분히 공감했던 말 이여서인지 기억에 남아 있나봅니다. 그러나 일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기운이 쏘옥~ 빠져 즐겁지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린아이나 학생들처럼 등 떠밀려온 학원은 아닐 텐데, 해석하기 어려운 얼굴 표정에 힘이 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빠진 기운과 쳐진 기분을 끌어 올리고 나오지 않는 목소리까지 끌어내어 요가를 하고 난 날은 나도 모르게 어깨가 땅에 끌리는 기분이듭니다. 아마도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수업을 마친 모양입니다. 걸음걸이도 몸도 가뿐하지 않고, 마음까지 무겁습니다. 앞에서 강의를 할 때, 수강생들의 반응, 뭔가 해보려고 몸부림치는 의욕에 한 번 더 시연하게 되고,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신이 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한 해 한 해가 지나가면 갈수록 무표정한 수강생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살이 빼고 싶다해 강도를 높이면, 힘이 들다 야단이고 약하게 하면 하는 것 같지 않다고 불만입니다.  


    

    ‘만족’ 은 누군가가 만들어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것입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며 편하게 바뀌는 생활 속에서 오는 문제점들이기도 하죠. 자동차로 이동하고 쇼핑도 인터넷으로 합니다. 다리 근력이 떨어지니 누워서 자신의 다리를 드는 것도 힘이 들어 끙끙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뱃살을 빼거나 다리 근육을 만들려면, 지방이 분해되기까지의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거기까지 도달할 체력이 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하지만 반드시 수를 늘려가며 참아야 만들어지는 게 근육임에도 열만 넘으면 여기저기서 바닥에 쌀자루 패대기치는 소리가 납니다. 힘이 든다는 걸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세상입니다.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요?

       

저는 그럴 때마다 다 아이들의 엄마인데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훈육을 하는지 마법의 유리구슬로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모락모락 올라옵니다.      

학원에 보낸 자녀들의 눈에서는 별빛이 쏟아지고, 선생님 말씀에 귀를 토끼처럼 세우고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 가지를 응용하며 학원에 가라고 성화부리지 않아도 제 시간에 기다린 듯이 가는 자녀를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세요. 아이들은 보지 않는 것 같아도 부모의 언행을 보고 배웁니다. 부모가 뭘 배우던 열심히 하고, 자신의 원하는 바의 목표를 이루어내면 (뱃살이라도) 아이들은 표현하지 않아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식이 잘 되는 것을 위해 열 마디 스무 마디 잔소리보다 지금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이나 배우고 있는 것에 성과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짓고 있는 표정과 행동이 밖에서 생활하고 있는 내 자녀의 모습이 아닐까! 단 한 번이라도 바꾸어 생각한다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행동이 활기차게 변화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오랜 시간과 노력의 필요성을 다 무시한 채, 빠른 시간 내에 적은 노력으로 효과를 보려하기 때문에 재미가 없고 점점 힘이 들어 합니다. 이런 다중 문화의 현대사회에 이런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요가를 가르치는 일은 더욱 힘들어지는구나! 안타까움만 가득합니다.  


이런 무거운 마음과 잡생각들이 봄 햇살에 고개를 내미는 고사리 순처럼 뾰족이 나올 때 나의 마음을 다 잡아주는 한 분이 계십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두 번이나 뇌경색으로 쓰러지셔 왼쪽이 마비되신 사진 속의 인물입니다.


이 분을 처음 만났을 때, 걸음걸이도 많이 불편하셨고, 근육이 다 경직되어 있었습니다. 그 분의 등을 만졌을 때, 느낌이 아직도 선명하네요. 제가 등에 손을 대는 순간, 초등학교 때로 돌아갔습니다. 마당 구석구석이 깨져나가면 사람을 부르지 않고 그 시대는 아빠들이 시멘트 몇 포대를 사와 반죽을 해서 발랐습니다. 그리고 남은 포대가 굳었는지 손으로 만져보고 딱딱하면 그제야 옳거니! 하고 포대에 뛰어 올라가 놀았던 그 기억이 났습니다. 가끔 굳지 않은 포대에 올라가 뛰다가 포대 귀퉁이가 펑하고 터지면 시멘 가루가 날려 야단을 맞곤 했으니까요. 그 경험이 없으신 분은 시멘트가 굳은 느낌이 와 닿지 않으시겠죠? 아무튼 근육이 시멘처럼 굳어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앉아계시다가, 동작 하나하나 흉내만 내셔도 빠지는 일이 없이 꾸준히 오셨습니다. 지금은 그 딱딱하던 등이 많이 풀려 등 구르기도 하십니다. 많이 좋아지셨어도 절대 되지 않는 동작은 ‘활자세’ 라고 양 손으로 뒤로하고 다리를 구부려 발등을 잡아 무릎을 떼는 일입니다. 굳은 어깨 때문에 손이 발쪽으로도 가지 않았고 경직된 허벅지는 땅에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긴바지를 입는 겨울이면 바지 끝단이라도 잡고 하려고 노력을 하시는 모습에 늘 빨리 회복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반바지를 입는 여름, 저는 그 분에게 다른 분들이 ‘활자세’를 하는 기분이 어떤가를 느껴드리기 위해 요가 보조 도구 밴드를 이용해 발목을 당겨 드디어 바닥에서 1센티 정도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옆에서 보던 동료 분들은 박수를 치고 저는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저 힘이 든다고, 건강을 위해 하긴 하는데 하기는 싫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건 마치 굶주린 사람 앞에서 배가 터질 것 같아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배부른 사람이 있어보이지도 않고 부러워 보이지도 않습니다. 일반사람들에게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동작도 그 분에게는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사진 속의 얼굴색과 팔의 색을 비교해보시면 느끼실 겁니다. 저는 저 분의 붉은 얼굴을 보고 다시 힘이 솟아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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