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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Sep 25. 2019

휴직한 아들 퇴사한 아빠, 스페인에 가다 - 1편

아빠와의 여행 계기, 그리고 그와 함께한 여행이 좋았던 이유


I. 아빠와의 스페인 여행


이번 추석아빠와 단 둘이 스페인을 갔다.

14일을 여행했다.

마드리드로 들어가서 바르셀로나에서 나왔다.

도시는 마드리드(톨레도)- 세비야- 론다(자라하)-그라나다(엘 토르칼)- 바르셀로나 순으로 방문했다.


20대 아들/50대 아빠 단 둘이 여행을 다고 하면 대부분 흔한 경우는 아니라고 한다.

세비야에서 만난 가이드님도, 엄마랑 온줄 알았는데 아빠랑 온 걸보고 놀랬다고 했다.


내가 어쩌다 아빠와 단 둘이 여행을 가기로 했는지, 아빠랑 가면 좋은 점은 무엇이, 여행 신경썼던 원칙, 도시별 느낀점을 써보려고 한다.

글로 남겨놓으면, 두고두고 추억할 것 같다.


론다 누에보다리 앞, Air BnB 숙소에서 먹었던 컵라면/와인/하몽/샐러드. 그때까지 먹었던 미슐랭 음식점은 비할바가 못 됐다.


II. 여행 계기


아들은 휴직했고, 아빠는 퇴직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바쁘다고 소문 난 회사고, 2주 휴가는 신혼여행이 아니면 어렵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월급쟁이의 장기 휴가는 쉽지 않다.


그런데 나는 대학교 재학 중 시험에 합격하여 미필 상태로 일했어서,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했다.

그래서 지금 휴직 상태다.

아빠는 퇴직 상태다. 제 2의 직장에서 일하기는 하는데, 월급쟁이 아니 일정이 자유롭다.

나도 아빠도, 지금이 아니면 언제 장기 여행을 함께 갈 수 있을지 몰랐다.


특히 내가 그랬다. 회사에 복귀하면 나는....

엄마도 동생도 한달 전에 유럽을 다녀온 터라, 아빠와 단 둘이  아쉬워 하지 않았다.


물론 혼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젊은 애가 혼자 유럽 가면, 재밌는 일 많다.

호스텔에서 외국 애들하고 술 마시 놀거나, 동행을 구해서 다양한 사람과 만날 수도 있고.

외국에서 낯선 사람 이야기하는 건  재밌다.

그리고 혼자면 얼마나 편한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가고 싶을 때 가고.


그런데 뭐.. 몇 번 유럽을 다녀오면서 그런  다 해봤고, 언젠가 또 그럴 기회가 있지 싶었다.

면에 아빠가 더 늙고/나도 복직하면 같이 여행을 가기는 더 어려워질 성 싶었다.

특히 “자유여행”으로 말이다.


남들과 부대끼면서, 일정 맞춰가면서 따라가는 "패키지여행" 정도는 갈 수 있겠지.

근데 그건 내가 싫다.

나는 게으르.

아빠도 일정이 힘드실거다.


그래서 결심했다.

널널한 일정을 짜 아빠랑 스페인을 가보자고.

결과는? 대만족이다.

부모님과 자유여행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면, 나는 가라고 추천할 것 같다.

아빠 여행가서 좋았던 점을 써보려고 한다.


자하라(Zahara)라는 언덕위 마을을 가는 드라이브 코스. 스페인 렌트카 여행은 또 다른 맛이 있다.


III. 아빠랑 가면 뭐가 좋을까?


1. 평생의 추억거리를 들다


가장 친한 친구와 3주간 유럽을 갔었는데, 우리는 이 추억을 평생 우려먹을 느낌이다.

죽기 전까지 우려먹을 듯 한데, 이런 식이다.


만약 와인을 마신다고 치자, 그러면

로마에서 먹었던 싸구려 와인이랑 그때 먹었던 스테이크가 훨씬 나은또 언제 가지?“

이러면서 여행 이야기 시작된다.

그러다가 싸웠던 이야기 나온다.

“에라이 x새끼야, 유럽에서 그러고 싶었냐? 체코에서 하루종일 자는 여행객은 너 밖에 없을걸. 패 죽이고 싶었는데.

미안해, 몇 년째냐~ 나도 많이 바꼈어. 그래도 길 찾고 영어하고 이런건 했잖아.”

러고 웃으며 투닥거리면 한 두시간 금방이다.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함께 만들었다.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쉽사리 분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쉽게 친밀해진다.

이별을 고하는 상대방을 주저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말은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봐”다.

(물론 나빴던 기억만 있다면..)

기억의 힘은 서로를 하나로 결합시킨다.

마법의 접착제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빠와 소중하고 특별한 추억을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 뜻깊고 행복한 일이다.


중산층 4인 가족의 가부장인 우리 아빠.

그는 평생을 일하 살아오셨다.

유복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난 그.

 부양 본인 성공를 위해서 열심히 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집에 있는 시간은 적었다.

그렇지만 이번 여행에서, 父子지간에 평생을 간직할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세비야의 새벽, 술 마시 거닐었던 거리와 피웠던 맞담배.

바르셀로나 공항, 몇십분 간 뛰어다닌 후 구석에서 주무시던 아빠를 가까스로 찾아깨워 겨우 탑승한 비행기.

그라나다 중앙 광장, 분위기 좋다며 들어간 아랍 음식점에서 한 입도 못드신 아빠, 그리고 그게 마냥 재밌어서 맛있게 먹으 아빠를 놀 나.

소소하지만, 재밌고 흐뭇한 기억이 많다.


서로 살짝 서운했던 기억도, 한국서 엄마와 동생에게  이야기 하니 이내 웃프닝이 된다.

사실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나와 아빠는 앞으로 스페인을 회상할 때, 얼마나 재미있고 행복할까?

남은 몇 십년을 공유할 행복 기억이다.


당신이 아빠와 여행을 간다면, 평생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둘 만의 그림 수 있다.

이건 정말 큰 거다.

각자 기억하는 개성이 넘치는 스페인, 그리고 그 기억에 함께 각인된 날 키 사람.


아빠와 흠뻑 취하고,  무려"맞담배"까지 피웠던, 평생 잊을 수 없는 세비야 뒷골목. 세비야의 밤은 안전하고 따뜻했다.


2. 아빠의 자랑 올라갔다


다 큰 아들과 아빠의 단독 유럽 여행, 흔치 않다.

그것도 자유여행으로? 더 흔 않다.

자유여행으로 간다는 말은, 자식이 1 to 10까지 대부분을 짜야한다는 의미다.

각오를 해야한다. 나는 가이드다. 나는 가이드다. 나는 가이드다...

하지만 아들이 이렇게 계획을 짠 후 갔다오면, 아빠의 자부심은 엄청나게 커진다.


생각해보라, 아빠 입장에서 얼마나 뿌듯하.

키워놨더니, 유럽애들하고 의사소통 하지, Air BnB라는 '요즘 것'의 숙소도 잡지.

자동차도 운전하고, 좋은 곳 데려가고, 맛있는 거 먹고. 심심할 때쯤 가이드 투어도 있다.

아빠가 좋아하실 때마다, 나는 정말로 뿌듯했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다. 론다였나? 그라나다였나? 여행 중반이었다.

잠들기 전, 갑자기 아빠가 내 방으로 찾아오셨다.

(나는 아빠와 각방을 쓰기 위해 모든 숙소를 에어비엔비로 잡았다. 숙소 제 1원칙이다)

“아이고 우리 아들!! 일로와 포옹 한번 하자, 야 이게 무슨 호사냐!!!”

나름 큰 시험에 붙었을 때도, 이 정도로 행복하시지는 않았던 것도 같은데...

그 정도로 좋아하는 아빠의 모습을 봤다.


내가 뭐 특출난 효자는 전혀 아니다.

정말이다. 오히려 엄마 아빠 말은 신경 안쓰는 "지 마음대로 하는 놈"이라고 남들은 볼 수도 있을 거다.

부모님에 대한 나의 기본 스탠스는 이거다.

"내가 알아서 다 해요."

난 효자가 아니다.


이런 나차도 아빠가 좋아하는 걸 보니,  좋다.

효자가 아니어도 느낄 수 있다.

이 뿌듯한 감정.

사실 당연한 거다.

누구보다 친하고 가까운 사람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한건 당연하다.


이 행복은 이제 아빠의 자랑으로 전환될 거다.

아빠의 친구들은 앞으로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스페인 여행에 대해 “들어야 할 것”이며, 아빠는 그들의 부러움 섞인 인정을 받으실 것이다.


사람이 인정을 갈망하는 동물이라는 걸 생각하면, 나는 아빠에게 꽤 큰 인정 요소를 드렸다.

물론 나도 어디가서 자랑한다.

"친구랑도 가보고, 혼자도 보고 했는데, 아빠랑 가는건 또 다르더라? 꼭 가봐"

효자소리 듣는건 덤이다.

효자? 걍 같이 간 것 뿐인데.

Funding마저도 아빠가 다 하셨구만..

바르셀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 정말 독특하고 신비롭다.

              

3. 아빠에 대해 더 알게되고 친해


나랑 아빠는 나름 좀 친.

고등학생 때 온 가족이 미국에서 1년간 살았는데, 여행도 다니고 같이 뭘 많이 해서 친해졌다.

그 전에는 평일 밤에 아빠를 본 기억이 많이 없다.

그렇게 사셨으니까 미국에 갔었겠지?

그때가 아빠랑 친해진 계기다. 내 기억은 그렇다.


잔소리를 많이 하는 스타일도 아니신지라, 아빠와 대화 거부감이 없다.

가끔 잔소리, "아 됐어요, 내가 알아서 해요. 아니 내가 나이가 얼만데"라고 맞받아치면 "네놈은 어떻게 한번에 예 하는 꼴이 없냐"하고 끝내신다.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나 정도면 아빠랑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빠와 같은 공간에서 2주동안 함께 지내본적이 없다.

그리고 이십 몇년동안 몰랐던 걸 이제서야 발견했다.


아빠는 부지런하다. 할아버지가 가고 계신가?

전날 12시간을 걸어도 아침 8시에 일어나, 산책을 한다. 나는 10시까지 자고 있는데..

아빠는 스마트하다. 생각보다 더 그렇다.

구글 지도를 보고 늦은 밤 유럽을 혼자 돌아다닌다.

연륜도 있으시다. 수십년 간 축적된.

운전할 때 네비를 따라 가도,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하면 그 길이 아니다.

출국 심사를 할 때, “여기가 아닌 것 같은데..”하면 그 곳이 아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깨달음.

아빠는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배고픔이 많으시다.

그에게 제일 중요한 건 맛있는 음식이다.

누가 그렇지 않겠냐마는, 아빠에게 맛있는 음식과 포만감은 정말 정말 중요하다.


아빠가 느끼는 도시에 대한 호감, 경치에 대한 감동은 그의 뱃속에 얼마나 많은 영양분이 축적되어 있는지가 큰 영향을 미친다.

아빠게 가장 중요한걸 난 이제야 깨달다.

음식, 음식, 간식, 간식!


나는 좀 굶어도 잘 참고 편하게 있는다.

아빠는 아니다. 같은 가족이라니!

허기에 대처하는 유전자 백프로 엄마꺼였다.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에 있는 국영호텔에서 먹었던 맛있는 음식. 이때 흡족해 하셨던 표정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아빠에 대해 많은 걸 새롭게 알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도 본인이 생각하는 각자의 부모님이 있을 거다.

그런데 본인이 생각하는 부모님과 진짜 부모님은 다를 수도 있다.

부모님과의 여행은 부모님의 “진짜” 모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다.


IV. 글을 마치며


"아빠"에 초점을 맞춰서 글을 썼다.

"그럼 여행은 어땠는데?" 궁금해할 수도 있다.

여행? 당연히 좋다.

혼자가는 여행, 친구랑 가는 여행, 모든 가족 구성원과 가는 여행. 아빠 가는 여행.

매력느낌이 다 다르다.


것도 다 했다.

밤 늦게 혼자 클럽 비스무리한 펍도 가고,

유명한 언덕에 올라가서 야경도 보고.

젊은애들 하는 어떻게든 다 했다.


이번 여행은 언제나 재밌고 행복했다.

그리고 아빠가 있어서 더 좋았다.


원래는 짧게 쓰려고 했다.

그런데 글은 못쓰는데 하고픈 말은 많아서, 나눠서  수밖에 없게 됐다.


(1) 내가 세웠던 아빠와의 여행 원칙

(2) 스페인 도시별 느낌

(3) 스페인 인종차별

로 쓰려고 한다.


인종차별은 쓰면서 열이 좀 받을 것 같다.

미국/캐나다/뉴질랜드/영국/프랑스/독일/체코/스위스/오스트리아/헝가리/이탈리아/네델란드 등 나도 나름 여기저기 많이 쏘다녀봤다.


그런데 동양인에게 대놓고 “치노”라고 소리치거나 가게 주문 무시하는 걸 보거나/경험한  없다.


웬걸, 스페인에서는 종종 봤다.

직접 경험은 안해봤지만.

열받았던 점, 내가 꼬장 피웠던 일화도 써보고 인종차별에 대한 내 생각써보려고 한다.


나는 사람에게 "미개"라는 단어를 쓰는게 싫다.

싫은데, 진짜 "미개"가 어울리는 인간을 종종 봤다.

감히 너 우리에게?


그럼에도 2주간의 스페인은 꿈만 같았고, 정말 후회없고 원없이 재밌었다.


※ 아빠에게 보여드릴 용도로 제출한 여행 계획을 첨부한다.

나와 아빠는 '공'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 이런 형식으로 보는게 편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익숙치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 명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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