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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Oct 02. 2019

휴직한 아들 퇴사한 아빠, 스페인에 가다 - 2편

아빠와의 여행 원칙, 그리고 미리 알았다면 더 좋았을 것들

※ 본 글은 약 2주간 다녀온 아빠와의 스페인 여행기 2편입니다. 지난 편에서는 왜 아빠와 여행을 갔는지, 무엇이 좋았는지를 썼습니다.(https://brunch.co.kr/@simsimhae/36) 이번 글에서는 아빠와 여행을 하면서 세웠던 원칙, 그리고 여행 전 미리 알았으면 더 좋았을 점들을 쓰려고 합니다.


※ 부모님과의 해외 여행을 망설이시는, 혹은 준비하시는 분들. 꼭 한번 다녀와보세요! 저도 유럽 가서 싸우고 오는건 아닐지, 안 좋은 기억을 더 만들어 오는건 아닌지 걱정을 했었습니다만, 아빠와 평생을 안줏거리 삼을 수 있는 이쁜 추억을 만들고 왔습니다.


이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I. 아빠와의 여행 원칙


1. 따로따로 자야겠습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윤세아, 김병철 부부. 그들은 부부임에도 침대를 각자 쓴다. 편하니까 그럴꺼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윤세아-김병철 부부의 침실. 각 방 안쓰는게 다행이라고 할 정도다.

나는 아빠와 부부가 아니다. 우리는 건장한 두 명의 성인 남성이다. 같은 침대를 쓴다? 침대가 아무리 커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생활 패턴도 반대다. 60을 바라보시는 나의 아빠.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무언가를 하신다. 나? 나는 조금 늦게까지 잔다. 7~8시 기상하는 아빠와 10~11시에 기상하는 나. 생활 패턴이 맞지 않는다.


여행은 상당히 소모적인 활동이다. 일과가 끝나고 집에 오면, 그 다음날 까지 푹 쉬어야 한다. 서로 다른 패턴으로 수십년 간 살아왔다면, 같은 공간에서 서로 적응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독립된 공간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게 낫다.


그래서 나는 아빠와 따로 자고 싶었다. 그것도 문이 있는, 완벽하게 구분된 공간에서. 그래서 선택한 게 바로 에어비엔비다. 일반 호텔과 달리, 객실 서비스라는 게 따로 없고, 체크인이 세련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 가정집을 빌리는 거니까 1 개의 거실 + 2개의 방이 있는 집을 고를 수 있었다.

 

단, (1) 리뷰 300개 이상 (2) 베드버그 등 심각한 내용의 리뷰가 있다면 거르는 등 나름의 필터링 기준을 세웠다. 숙소가 불편하면 여행 기분 잡친다.


루프탑이 있었던 세비야의 숙소. 호텔에 비해 비싸지도 않다. 1박 15만원 내외. 중심 거리까지는 걸어서 10분


마드리드를 제외한 모든 숙소가 깔끔했고 쾌적했다. 결과는 대만족. 만약 24시간을 아빠와 께했다면, 그곳이 최고급 호텔일지라도 우리는 싸웠을 수도 있다. 원래 많이 같이 지낼수록 많이 싸운다.(아빠와 싸운다는 개념이 어색할 수는 있겠지만)


하지만 신나게 밖을 돌아다닌 후 각자의 방에서 유튜브, 카톡, 넷플릭스 등 “각자의 사생활”을 "각자의 방식으로" 완전하게 누리며 재충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빠와 나는 그 다음날 체력적으로/정신적으로 재충전을 하고 재밌게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아빠와 나는 생활 패턴이 다르다. 일과 후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다르다. 그리고 하루 종일 같은 사람과 대화하고/함께하고/심지어 잠까지 같이 잔다는 건(그것도 2주간)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대부분의 경우 엄마-딸은 친하지만, 아빠-아들은...?


가장 친한 친구와의 유럽 여행에서 서로 가장 날이 섰을 때는, 전날 같은 공간에서 잤을 때고, 서로 가장 애틋(?)했을 때는, 전날 얼굴도 잘 안보고 다른 방에서 잤을 때다. 인간에게는 “사생활”이 필요하다. 2주 이상의 여행이었던 지라, “사생활 확보”는 내가 세운 제 1원칙이었다.


아빠도 계속 함께였다면 분명 답답해하셨을 거다. "너 이제 너 방가라~ 귀찮다"라고 말하셨던 아빠.


2. 숙소에서 적어도 2박은 해야겠습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1박 짜리 도시”로 불리는 곳이 있다. 바로 론다나 그라나다. 이곳에서 시간을 세이브서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에 오래 머무르거나, 조금 더 욕심을 부려 포르투갈까지 가는 거다. 체력이 넘치는 20대는 괜찮다. 하지만 50대의 아빠는 조금 힘이 달리신다.


아, 그리고 '나'라는 사람 자체가 그렇게 부지런하게 여행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숙취 때문에 자느라 오사카 성도 못들어 갔고, 프라하에서 집에서 유튜브 보느라 거의 하루를 날리는, 뭐 그런 스타일이다. 여행은 좀 쉬엄쉬엄하자라는 스탠스.


그래서 나는 “숙소에서 최소 2박”을 원칙으로 했다. 행복한 여행은 충분한 체력/시간과 정신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1박은, 오늘 캐리어 들고 숙소에 갔다가, 내일 캐리어를 들고 다시 나온다. 2박은, 오늘 캐리어 들고 숙소에 갔다가, 내일 손에 뭐 없이 편히 면서 돌아다니고 그 다음날 캐리어를 들고 나올 수 있다.

오늘도 캐리어 들고 내일도 캐리어 들고 움직이면, 아 이거 쉽지 않겠다 싶었다.


1박 짜리 도시인 론다 숙소. 국영 호텔보다 위치도, 뷰도 더 좋다고 생각한다. 1박 하기에는 아깝지 않을까? 물론 이곳도 거실 1 + 방 2 원칙을 충족했다.


급하게 여러 도시를 이동하는 것 대신에, 체력적·정신적·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도시를 더 느낀다는 것. 과거보다 체력적으로 연로하신 아빠와 즐겁게 여행고자 세웠던 원칙이었다.     

아빠는 당신의 대학 친구가 아니다. 마음은 그러실 수 있어도, 그의 몸은 아니다.


바쁘게, 그러나 쉬엄쉬엄 여유있게 다녔다.


3. 애매한건 무조건 상의드려야겠습니다


아무리 놀러가는 거여도, 선택은 필요하다.

출국일, 이동 수단, 방문 도시, 액티비티 등등.


다 큰 성인과 아빠가 여행을 가면, 계획은 아마 자식이 짤 거다. 하지만 계획을 짠다는게, 독단적으로 결정해도 된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최대한 민주적으로 상의를 드리고 “보고” 드리려고 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그라나다, 세비야에서 플라멩고를 본다. 나는 아빠와 상의한 끝에, 바르셀로나 까탈루냐 음악당에서 오페라&플라멩고를 봤다. 결과는 대 만족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 아빠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고 책임은 분담할 수 있다. 우리는 부모님이 뭘 원하는지 잘 모른다. 남들이 A가 좋다고 해도, 부모님은 A를 싫어하기까지 하실 수 있다. 남들 따라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즐거운게 여행의 목표라고 한다면, 애매한건 부모님의 의사를 물어보는 게 좋다. 이러면 만약 뭔가가 잘못되어도,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다(비겁하지만).

아빠, 아빠가 이렇게 하라고 하셨잖아요!"


둘째, 아빠의 이해도 증가다. 여행은 결국 아빠와 함께 간다. 여행 계획을 논의해나가는 과정에서, 여행지에 대한 부모님의 이해도는 증가한다. 같이 공부를 해나갈 수 있다.

"아 그때 너가 말한게 이거였냐? 신기하네"가 "이건 당췌 뭐냐?"보다 훨씬 좋다. 자식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여행 계획을 짜며 설레임은 커져나가고, 대화는 풍부해진다. 이 자체로도 좋다.


4. 가끔은 따로 다녀야겠습니다


누구에게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낯선 나라에 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그간 본인이 살아왔던 삶을 고찰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그러다가 멍때리면서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고. 내킬 때 움직이고. 이런게 여행의 참 묘미다.


게다가 유럽에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이성 관계를 차치하고 새로운 사람과 얘기하는건 어쩔수 없이 재밌다. 나는 젊은 한국 남자만 봐도 궁금증이 샘솟았다. “저 사람은 대학생일까? 친구랑 왔을까? 직장인이면 휴가를 내고 온 건가? 어디가 제일 좋았을까? 나는 가우디 별로였는데, 저 사람은 어땠을까? 나보다 형일까? 대학생이면 전공이 뭘까? 스페인어 잘하는데?”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얘기를 나누는 것도, 여행의 묘미다.


아빠와 따로 다니는 시간에 대해 미리 합의하고, 혼자 멍을 때리든 동행을 구해 놀든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확하기로 했다. 이건 친구끼리 가도 똑같다.(약 3주간의 유럽 여행, 1주일은 따로 다녔었다)


혼자만의 시간, 바르셀로나 항구에서 유람선을 탔다. 그림에나 나올법한 석양과 바닷가.


아빠도 본인이 하고싶으신 일, 가고싶으신 곳이 따로 있으실 거다.(아빠는 엄청나게 맛있는 초콜릿 집을 찾아내셨다!)

동일한 시공간을 계속 공유하고 있다면, 하루 혹은 반나절 정도 온전한 각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나는 한국에서 미리 아빠에게 말씀을 드렸다.


"아빠 저는 아빠도 아시는 그 친한 친구 아무개랑 갔어도 1/3은 따로 다녔습니다.. 아빠 영어도 잘하시고... 아빠도 저랑 계속 있으면 싫증 나십니다... 저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빠 저는...."

"알았다니까, 나도 너랑 계속 같이 있을 생각 없다니까?"

'Yes, Father!'


다만 부모님은 의사소통의 문제도 있고, 지리를 찾는 게 어려우실 수도 있다. 지리를 익히기 쉬운 곳이나, 지리가 어느정도 몸에 익은 다음, 따로 다니는 걸 추천한다.


5. 기다리는건 최소화해야겠습니다


마드리드 왕궁, 프라도 미술관, 세비야 대성당, 알함브라 궁전, 가우디 대성당. 각 도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다.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곳에 모인다. 사람, 정말 많다.


스페인의 태양은 상상 이상으로 뜨겁다. 기온을 40도까지 올버린다. 근데 이 관광 명소를 밤에 가나? 아니지. 아침부터 저녁 전까지 입장한다. 퇴근 시간이 칼 같은 유럽 사람들이다.


만약 예약을 미리 하지 않았다면? 재수없으면 아예 입장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40도에 육박하는 태양 밑에서 한 두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된다.


이건 뭐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다. 재밌게 돌아다녀도 힘든게 여행이다. 태양 밑에서 가만히 기다린다면..

부모님의 체력은 급속도로 소진된다. 젊은 애들도 땡볕에서 1~2시간 기다리다 입장하면, 힘들어서 뭘 제대로 느끼기 힘든데 부모님은 오죽할까?


게다가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은, 한 두달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표도 없다. 알함브라 못갈거면 그라나다를 굳이 왜 가나?

9월 기준, 10월 매진, 11/12월 매진일 다수인 상황. 빨간색이 매진이라는 의미다.


부모님과 여행을 한다면, 주요 랜드마크의 입장권 예매는 필수다. 인터넷 어딘가에는 이런 글이 있다. “막상 가보니 사람도 별로 없고 해서, 10분 정도 기다리고 입장했어요.” 나도 이걸 믿고 마드리드 왕궁, 프라도 미술관은 예매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웬걸, 대기줄이 뱀 꼬리 마냥 길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원래 왕궁과 미술관을 방문하기로 한 날에 톨레도를 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바로 인터넷을 키고 세비야 대성당 등 예매가 가능한 랜드마크들은 싹다 예매했다.


프라도 미술관 대기줄. 나는 아빠에게 자랑스럽게 이렇게 외쳤다. "아빠 우리는 여기 아니에요, 저 따라오세요!"


다시 한번 느꼈다. 부모님과 여행할 때는, 무계획도 적당해야 한다는 점을. 예약이 가능한 명소는 꼭 예약을 해서, 시간과 체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


6. 가이드 투어를 활용해야겠습니다


가이드 투어는 아주 유용하다. 두 가지 측면서다.


첫째,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고, 양질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만약 버스 투어라면, 편안함에서 나오는 아빠의 흐뭇한 웃음은 덤이다. 가이드 투어 특성상 짧은 시간 내 여러 명소를 방문고, 세심한 설명이 곁들여진다. 인물/역사/철학 등 "의미"를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의미"는 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체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가우디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가우디 대성당을 보는 것, 콜럼버스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콜럼버스 기념비를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엄청난 차이다. 0과 1만큼의 차이가 아닐까? 역사가 깊은 도시에서의 가이드 투어는 가치가 높다.


둘째, 자식의 부담이 경감된다. 가이드 투어가 있는 날, 식은 부담이 없다. 가이드님을 만나러 가는 장소만 기억하면 된다. 가이드님은 이동 경로도 마련해놨고, 필요다면 맛집 알려준다. 게다가 재밌는 설명을 듣다보면 어느새 반나절이 지나가 있다. 부모-자식간 여행의 경우, 자식이 실질적인 “가이드”의 역할을 담당한다. 가이드 투어는 자식의 의무를 행해줄 타인을 구하는 것과 동일하다. 자식은 아무 생각없이 쫄래쫄래 움직이면 된다. 걱정이 없는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다.


나는 세비야/바르셀로나에서 가이드 투어를 하기로 신청했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II. 미리 알았다면 더 좋았을 껄


1. 콘텐츠를 더 알고 갈 껄


자유 여행의 큰 단점이다.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떤 곳에 있는지 그 의미를 모고 있을 수 있다.


나는 론다가 정말 좋았다. 숙소가 누에보 다리 바로 앞이라, 2유로 와인 한병, 10유로 이베리코와 야경만 있으면 세상에 이런 호사가 없었다. 신선이 된 느낌이 이런걸까? 왜 그런 상황이 가끔 있지 않나, 가만히 있어도 실실 웃음 나면서, “아 미치겠네, 미쳤네” 이런 말만 되풀이 하는 그런거.


와인, 라면, 이베리코, 그리고 론다의 야경


근데 내가 보고 미칠뻔한 이 누에보 다리, 슬픔의 역사가 있다. 그렇게나 아름다웠던 이 다리는, 스페인 내전 기간 중 감옥으로 혹은 고문 장소로 사용되었다. 누군가에게 트라우마틱한 다리인 것이다.


나중에 알아서 다행이지만, 내 경우처럼 본인이 보고있는 유적지, 본인이 밟고있는 대리석은 각자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 수 있다.


요즘엔 유튜브가 대세다. 누에보 다리라고 쳐보면, 다양한 설명 동영상이 나온다. 이런걸 먼저 보고 다리를 봤다면, 성당을 갔다면, 왕궁을 갔다면, 나의 여행은 좀 더 벅차고 감동적이고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다.


능력자 유투버들이 정말 많다. 감사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아는 만큼 재밌다. 아는 만큼 슬프다.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다. 조금 더 알고 갈걸 그랬다.


2. 직항으로 갈 껄


자유 여행을 다니는 젊은이가 99%의 확률로 설치해놓을 어플리케이션. 바로 스카이스캐너다. 전 세계의 비행기 티켓을 가격순으로 정렬해서 여준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나. 그간 유럽 여행 같은 장거리 여행 시 상당히 높은 가중치를 줬던 기준은 바로 항공권의 가격이었다.


난 이 기준을 아빠와의 여행에도 동일하게 적용했다. 그리고 살짝 아쉬움이 남았다.


KLM/에어 프랑스를 탔다. 서비스는 좋았다. 다만 스페인에 입국 할때는 암스테르담에서, 출국 할때는 파리에서 환승을 해야 했었다. 3~4시간 가량 걸리는 환승 시간. 상당히 피곤했다. 특히 귀국날은 기진맥진한 날이다. 3~4시간 기다려야하는 건 상당한 짜증과 지루함을 동반한다.


추석이 낀 점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가격으로 항공권을 구했다.(80만원 초반) 하지만 시간을 되돌렸을때, 만약 직항권과 20~30만원 정도 차이라면? 직항권으로 구매했을 성 싶다. 그 정도로 피곤하고 짜증난다.


아 물론, 환승 때문에 가능했던 아빠와의 추억이 있다. 귀국날 완전히 기진맥진하셔서 어디선가 주무시고 계신 아빠를 몇 십분간 뛰어다닌 끝에 겨우 찾아서, 겨우 비행기에 승한 에피소드. 심장이 쫄깃해지는 이런 일화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나쁘지 않지만, 직항으로 편하게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특히 부모님과 함께라면.

아빠 사랑합니다.


3. 우버를 알려드릴 껄


이번 여행의 기본 스탠스는 이거였다.

“저만 믿고 따라 오세요 아빠”

그래서 내 핸드폰에 우버, Free Now(스페인 카카오 택시), 렌페(스페인 고속열차), 렌트카 등등 여행 관련 앱이 다 깔려 있었다. 아빠 핸드폰에는? 딱히 뭐 없었다. 걱정 마시라고 소리쳐놨으니..


다 상관없다. 다만 한 가지, 우버를 깔아드릴걸..하는 아쉬움이 있다.


부모님과 가는 길이 달라지는 경우가 분명 생긴다. 가령 아빠는 집 가서 휴식을, 나는 더 관광을. 정 반대일 수도 있고. 이때 부모님에게 대중 교통을 타시고 가라고 한다면? 쪼끔 불안해진다. 난 아빠를 믿는다. 무슨 일이 발생해도 잘 처리하실 거다. 그래도 자식된 도리로서 알아서 가시라고 말씀 드리는 건, 쉽지가 않다.

“아빠 나 더 놀다 갈께요, 버스/지하철 타고 조심히 가세요”

대한민국에 용감하게 이런 말을 건넬 자식이 얼마나 될까?


우버가 있다. 우버는 우리에게 다가온다. 목적지로 가는 길, 그 과정에 필요한 요금도 투명하게 공개된다. 운행 상황도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제일 속 편한 이동 수단이 바로 우버다.


해외에서는 USIM 문제로 인해, 우버 앱을 바로 설치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인증을 다 끝내놓고 가야 편한데, 그걸 안했던 거다.


그날의 컨디션, 여행 욕구에 따라 부모님과 나의 이동 경로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부모님이 가시는 목적지로 직접 모셔다드리면 베스트겠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우버를 깔아드리자. 그리고 언제든 본인을 대신해 부모님의 발이 되어주는 택시를 불러보자. 나도, 부모님도 편해질 거다.


4. 사진을 더 찍을 껄


돌아와서 보니 아빠와 둘이 찍은 사진이 많이 없다. 찍어달라고 부탁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성인 남성 두 명은 사진을 같이 잘 찍지 않는다. 평소에도 안 찍는데 여행간다고 미친듯이 찍겠는가? 아니다. 피곤하니까 사진도 귀찮다. 적어도 나와 우리 아빠는 그랬다.


그런데 여행 중에는 사진을 많이 찍었는지 적게 찍었는지, 괜찮은 사진이 얼마나 있는지 잘 모른다. 피곤하니 앨범을 잘 들여다 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느꼈다. 몇 천장 찍었는데,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이 몇 십장도 안 된다. 대부분 풍경사진이고 간혹 셀카, 아빠 찍어드린 게 전부다. 아빠와의 여행을 자랑하려고 해도, 좀 잘 나온걸로 해야지. 이건 뭐 흔들리고, 각도도 별로고..

(이쁜 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필히 한국인에게 부탁해야 한다)


인생샷 획득 확률은 모집단의 크기에 비례한다. 아빠와 더 많이 찍었어야 했다. 이쁜 곳이 정말 많았다. 아빠가 귀찮아 하셨어도 더 찍었어야 했다.




※ 아빠에게 보여드릴 용도로 제출한 여행 계획을 첨부한다.

나와 아빠는 '공'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 이런 형식으로 보는게 편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익숙치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 명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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