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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신 Mar 16. 2018

디자인하기와 프로포즈하기

디자이너에 대한 '믿음'은 종종 기적을 낳는다

더 정확하게는 "디자인 제안하기와 결혼 제안하기"


영화 License to wed 에는 만난지 얼마 안 되어 사랑이 빠진 두 젊은 커플이 결혼을 하기 위해서 예약을 하려고 여자의 엄마가 예전에 결혼을 했던 교회에 찾아옵니다. 로빈 윌리암스가 분한 그 교회의 목사 프랭크는 그 교회에서 결혼을 하려면 몇 가지 테스트를 받고 합격해야 한다는, 좀 이상한 조건을 겁니다. 아니면 다른 곳에 가서 알아보라고. 결국 그 커플은 실제의 결혼 생활을 시뮬레이션 한 몇 가지 독특한 테스트를 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들이 정말로 사랑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고, 헤어지기 직전에 진정한 사랑 - 애정과 의무가 함께하는 - 을 발견하고 결혼을 하게 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영화는 쉽게 만나고, 쉽게 사랑을 고백하고, 쉽게 결혼하고, 또 쉽게 헤어지는 오늘날의 결혼 문화에 진정한 사랑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되새기게 해 줍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실제 생활 시뮬레이션에는 다소 억지스럽고 과장된 면들이 있기는 하지만, 만일 이런 방식으로 결혼을 할 수 있는 라이센스가 주어진 커플들만 결혼하게 된다면 45%에 육박한다는 우리나라의 이혼율을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르죠. 아니면 그렇지 않아도 낮은 결혼율이 더 낮아져버리려나요?


License to wed의 포스터 이미지


디자이너는 기본적으로 문제의 발견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이 기회에 맞는 디자인을 개발해서 이를 제안하는 일을 합니다. 디자인 과정의 모든 단계가 중요하지만, 이 마지막 단계, 즉 디자인 제안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유하자면 오랜 시간 썸도 타고 연애도 하다가 결혼으로 넘어가기 바로 전의 프로포즈와 같은 순간과 비슷합니다. 여러 사람들과 썸을 타는 것은 과연 이 디자인 방향이 맞는지 아닌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구상해 보는 단계와 비슷하고, 연애는 대략의 방향이 맞는 상대와 과연 결혼을 해서 살아갈 만한 상대인지를 알아가고 노력하는 것이므로, 디자인을 구체화해 나가는 단계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고 나면 영화에서 종종 보듯이 대개 남자가 멋진 이벤트를 준비해서 분위기를 띄운 다음 상대방에게 반지를 주면서 - 때로는 무릎도 꿇고 - 결혼하자고 하면 이 감동적인 분위기에 젖어서 대부분 결혼을 승낙하게 되는 프로포즈로 연애에서 결혼으로 넘어갑니다.


일생에 (일반적으로) 한번밖에 없는 이러한 로맨틱한 장면과 디자인 제안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질문할 수 있지만, 사실 프로포즈와 디자인 제안은 똑같습니다. 한쪽 (프로포즈에서는 대개 남자, 디자인 제안에서는 대개 디자이너)이 다른 한쪽 (프로포즈에서는 대개 여자, 최종 디자인 제안에서는 대개 회사의 최고 경영자 혹은 클라이언트)에게 자신의 생각 (프로포즈에서는 결혼, 디자인 제안에서는 디자인의 선택)을 제안하는 거니까요. 결혼이 실패하는 이유와 디자인 제안이 안 받아들여지는 이유 (또는 받아들여진 후에 제품이 시장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신기할 정도로 똑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 보고, 또 디자인 제안을 어떻게 하는 것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인지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프로포즈는 대개 이런 식입니다 (난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아마도 멋진, 기억에 남는 프로포즈는 아니었을 겁니다. 이벤트를 잘 하는 편이 아니라서). 위에 잠깐 이야기했듯이, 대개 남자가 자신이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야기하고, 자기와 결혼하면 행복하게 살게 해 주겠노라고 이야기하는 식입니다. 물론 반지가 들어있는 예쁜 박스는 필수지요.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상대방도 자기도 얼마나 상대방을 사랑하는지 이야기하고, 자기도 결혼해서 행복하게 같이 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주변에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환호와 박수로 마무리가 지어지는 이 프로포즈는 일견 아름답고, 로맨틱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습니다. 아마 이 때문에 이혼율이 그렇게 높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포즈를 하는 사람이 “If you would marry me, I will make you the happiest woman in the world!”라고 하면, 상대방은 “I do!” 하기 전에 어떤 방법으로 프로포즈를 하는 사람이 자기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인지, 또 자기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겁니다. 대개 프로포즈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젊고 또 아직도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임을 감안한다면,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5개년 계획” 또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만드는 계획”같은 걸 만들어서 파워포인트 같은 걸로 보여달라고 해야 합니다. 좀 지나치다고 생각될는지는 몰라도, 이 과정이 생략되고, ‘사랑’으로 뭉뚱그려져서 잘 해주겠지 하는 추측으로 대략 받아들이고 넘어가기 때문에 나중에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나중에 “당신이 날 사랑한다고 했잖아!” 해봐야 이미 늦었습니다.


디자인 제안도 비슷한 식입니다. 어떤 과정으로 디자인을 했는지, 경쟁 제품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디자인의 특징과 장점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설명하는 식이니까요. 흔히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흥미롭게도 미국의 (아마 다른 나라에서도) 유치원 아이들이 자기 집에서 뭔가를 가지고 와서 같은 반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이야기하는, Show and Tell이라는 것과 흡사합니다. Show and tell은 보통 아이가 뭘 하나 가지고 앞으로 나와서, “우리 아빠가 출장가셨다가 사 오신 장난감인데 여길 누르면 저게 나오고, 저길 만지면 이런 소리를 낸다,”라고 자랑하는, 뭐, 그런 거든요. 그러면 같은 반 아이들이 “Wow, awesome! Cool!” 하면서 훈훈하게 마무리됩니다. 이 두 가지의 큰 차이점은 show and Tell에서는 이야기를 듣는 같은 반 친구들이 대개 친하고 또 그 물건이 어떤 것이든 별 상관이 없는 반면,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을 받고 디자인의 선택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사람들은 딱히 그 디자이너에게 우호적일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며, 디자인의 좋고 나쁨에 대해, 또 그 디자인을 채택한 후 개발된 제품의 성공 여부에 대해 엄청나게 높은 관심이 있다는 점입니다. 디자이너들이 쉽게 간과하는 이 부분은 사실 전체 디자인 프로세스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아이들의 Show and Tell 장면


프로포즈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프러포즈, 즉 제안을 받아들이는 여부에 따라 어떤 인생이 펼쳐질 것인지가 결정되는 것처럼, 디자인 제안을 받아들이는 여부에 따라 엄청난 투자가 들어갈 제품의 성공 여부, 종종 회사의 성공 여부에 까지 큰 영향을 주게 되므로 단순히 디자인이 얼마나 아름답고 쓸모 있는지를 설명하는 Show and tell 만으로는 안 되는 겁니다. 학교 과제였다면 그 디자인 과제의 수준에 맞는 적당한 학점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실전에서의 디자인에는 A와 F만 있을 뿐이거든요.


결국 디자이너는 여러 가지 필요한 실력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디자인을 넘어서 그 프로젝트에 대한 진지함이 경영진이나 클라이언트만큼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다면 장난으로 프로포즈를 하는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고, 이게 제대로 될 리 없지요.




1988년 기아자동차 디자이너 시절 세피아를 디자인할 때입니다. 이때만 해도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을 때이므로 회사의 경영진은 영국, 이태리, 일본, 미국의 디자인 용역회사들에게 디자인 용역을 주었고, 다른 디자이너들보다 영어를 잘하던 내게는 용역을 관리하는 정도의 일이 맡겨졌습니다. 여기에 성이 안찬 저는 당시 디자인 실장이던 윤 모씨에게 용역 관리 업무는 그대로 하겠지만 내 팀 (팀이라고 해 봐야 갓 대학을 졸업한 후배 디자이너 포함 2명)도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해 달라고 강하게 어필을 해서 우리 팀도 디자인을 진행하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가능성은 없지만, 신경을 안 쓸 테니 꼭 해 보고 싶으면 해 보라는 식이었습니다. 우리 팀은 숱하게 밤을 새웠고 스케일 모델을 평가해서 디자인 방향을 정하는 프레젠테이션 날이 되었습니다. 우리 팀의 디자인 안 2개를 포함, 전체 8개의 모델을 공평하게 평가하기 위해 같은 크기, 같은 색으로 만들고 또 누가 만든 거라는 표시도 없이 전시하고 결정을 하는 자리에 당시 회장이던 분도 참석을 하고 여러 관련 중역들도 참석을 했습니다. 물론 결정권은 회장에게 있었지요.


한데, 회장이 프레젠테이션 장소에 들어오면서 기다리고 있던 중역들에게 “이번에 이태리에서 만들어 온 것이 어떤 거지?”하고 묻는 겁니다. 그러자 “딸랑이” 중역들 몇몇이 이태리 디자인 용역사에서 만들어 온 것을 회장에게 보여주었고, 회장은 역시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사실, 이태리에 온 디자인들은 구닥다리였는데, 모델을 만든 솜씨가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잘 만들었다’는 평은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회장의 이 말을 그 디자인이 뛰어나다는 말로 해석한 중역들이 다른 디자인들은 다 건너뛰고, 그 모델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어딘가 익숙한 장면 같지 않나요?


세피아의 이미지 스케치중의 하나


나는 우리가 만든 디자인들이 아예 평가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아연했고, 디자인 실장을 비롯한 중역들은 회장이 칭찬한, 이태리에서 만들어 온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만 하면서 거의 결정이 나는 분위기였는데, 여기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회장이 “나는 잘 모르겠으니까 당신들이 결정하라”라고 하면서 그 자리를 떠나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회장이어도 만일 디자인 선택이 잘 못 되었을 때의 실패에 대한 부담을 지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나름 현명하던 그 회장은 알고 있었던 겁니다. 기아자동차로서는 최초로 고유의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므로 디자인 선택 여부에 따라서 회사의 운명이 판가름 나게 되니, 엄청난 부담이지요. 최고 결정권자인 회장도 결정을 못한 것을 그 아래 중역들이 결정할 수는 없었으므로, 세피아의 주요 수출 지역으로 계획되었던 미국에서의 소비자 대상 디자인 평가를 받아보자는 방향으로 급하게 선회되었고, 이어진 여러 차례의 디자인 전개, 시장 조사의 결과, 마치 준준결승전, 준결승전, 결승전을 거쳐,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결국 우리 손으로 만든 디자인이 선택되어 다시 숱하게 밤을 새운 끝에 결국 1992년 세피아로 탄생되어서 엄청난 성공을 가져온 자동차가 된 겁니다. 그 이후로는 해외 디자인 회사로의 용역이 급격히 줄고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이 만든 자동차들이 속속 개발되게 되었지요. 이 세피아의 디자인 개발은 단순한 하나의 자동차를 만들었다는 것보다, 우리나라의 디자이너들이 실력이 있는, ‘믿음’을 주는 디자이너들로 최초로 인정받게 된, 우리나라 자동차 디자인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된 겁니다. 기회가 되면 세피아 디자인 개발 비화를 한번 쓸까 생각 중입니다. 혹시 그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이 있다면 쓰는데 조금 더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구요.


1989년 세피아의 디자인이 완성된 후, 초기 설계를 위해서 영국의 설계 용역사의 엔지니어들과 "맞장뜨던" 장면.


이때 얻은 믿음은 수년 후 한국 최초의 승용형 미니밴인 카니발을 디자인할 때 큰 도움이 되게 됩니다. 그 전에도 소위 ‘봉고’로 불리던 트럭 베이스의 승합차들은 있었지만, 때맞추어 미국에서 시작된 승용형 미니밴을 우리도 개발하기로 하고, 초기에는 일본의 디자인 용역사에 의뢰를 해서 개발을 진행하였습니다. MUV 즉, Multi Utility Vehicle이라고 해서, 아직도 화물차량 같은 디자인이었던 그 디자인이 중단되고, 마침 영국 유학에서 돌아온 나에게 프로젝트가 맡겨졌습니다. 디자인을 진행하는 도중에 회사의 재무상태가 악화되었고, 더 이상 개발비를 충당하기 어려워졌던 모양입니다. 일선 디자이너로서는 이러한 상황을 알기 어려웠는데,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어느 날 오후, 회장, 사장 등이 참석한 큰 회의가 열렸고, ‘겨우’ 과장에 불과한 나는 말석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 회의의 주제는 개발을 중단하고 외국의 모델 하나를 가져다가 국내 생산을 하자는 것이었고, 그렇다면 어느 회사의 어떤 모델을 도입한 것인가를 정하는,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참으로 우울한 회의였습니다. 신차의 개발에는 엄청난 비용과 또 위험 부담이 있는데 반해서, 이미 성공이 확인된 모델을 들여오는 것은 라이선스 비용을 주는 것 외에는 초기 비용과 위험 부담이 없어서 경제적으로는 훨씬 유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미 세피아, 스포티지 등의 고유 모델을 연달아 개발해서 본격적인 자동차 회사로 세계시장에 막 명함을 내기 시작했는데, 다시 외국 자동차 조립 공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체면을 구기는 일일뿐더러, 해외 수출도 할 수 없는 최악의 선택이 될 거라는 거지요. 하지만 당시 분위기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던 상황입니다.


늦은 저녁까지 이어진 이 회의 말미에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규모의 회의에 과장에 불과한 내게 발언 기회가 오는 일은 없지요. 한데, 회장이 느닷없이 내게 생각을 물어온 것입니다. 기회를 놓칠세라 이런 기조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수년 전에 회장님의 지시로 개발한 세피아로 큰 성공을 했고, 우리 차로 해외 수출의 길도 열어서 본격적인 자동차 회사로 성장을 했는데, 어려움 때문에 미니밴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회사의 재무상태는 잘 모르지만, 담당 디자이너로써 약속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만일 개발을 계속하는 것으로 결정만 해 주신다면 밤을 새워 일해서 개발 기간과 개발비를 줄이는데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말은 듣던 회장의 눈동자가 흔들리던걸 지금도 기억합니다. 불과 몇년 전 세피아의 디자인을 담당했던 젊은 과장의 이야기가 그 성공의 기억을 떠오르게 만들고, 또 아마 그 ‘믿음’을 기억해 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하던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어서 참석한 중역들에게 개발을 계속한다면 얼마나 빠른 기간안에 디자인을 확정하고 개발을 끝낼 수 있는지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온 결과 세피아 때에는 총 5년 반이 걸렸던 개발기간을 3년 반으로, 그야말로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안이 나왔고, 나는 내 의견을 낸 덕분에 훨씬 더 많은 밤을 새우게 되었습니다. 카니발의 디자인 개발은 그대로 이어져서 1995년 출시되면서 몇 달을 기다려야 살 수 있을 정도의,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린 모델이 되었고, 아직까지도 한국을 대표하는 미니밴으로 성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1993년, 기아자동차 카니발의 풀 사이즈 클레이 모델 프레젠테이션 장면




다 죽었던 카니발 프로젝트를 그대로 진행하기로 한 것을 디자이너에 대한 믿음 한 가지에 국한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자동차는 디자이너 한 두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담당 디자이너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내게 의견을 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카니발은 아예 태어나지도 못했었을 거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믿음이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키워드인 이유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프로포즈를 해서 승낙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프로포즈를 받고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프로포즈 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요. Christopher Jones의 디자인이란 "performing of a very complicated act of faith"라는 정의를 제가 잊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사람을 사귀는 일이나, 결혼하는 일이나, 디자인하는 일이나 다 똑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Christopher Jones의 Design Methods의 3페이지.


디자이너는 단순히 연구하고, 생각하고, 그리고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음번에는 그런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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