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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an 25. 2022

나의 부엌 이야기

   

깜깜한 새벽 무렵이다. 온 집안이 고요한데 살금살금 찬방을 지나면 부엌이 나왔고 아궁이에는 불이 활활 타고 있다. 엄마는 큼지막한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아침 준비에 바쁘다. 엄마하고 부르며 작은 나무 방석을 들고 와서는 아궁이 앞에 앉았다. 어릴 적부터 부엌은 하루를 위해 제일 먼저 찾는 따뜻하고 신비한 공간이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남들보다 빨리 내 밥을 짓는 일이 시작됨을 예고했는지 모르겠다. 장작과 나뭇가지들이 타들어 갈 즈음 뚝딱하고 밥이 지어지고, 국을 만들어 한 상이 차려지는 과정이 신기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취를 했다. 더 넓은 세상에서 여러 경험을 하며  잘 컸으면 하는 부모님의 바람과 대입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결과를 위해 용기를 내었다. 친척 고모 집 방 한 칸과 작은 부엌을 세내어 살았다. 아침잠이 없어 일찍 일어나는 아이였지만 아침을 먹고 도시락을 챙기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학교에 다녀오는 길에 동네 작은 가게에서 장을 보고 도시락 반찬을 만들었다. 시골에서 부모님이 주는 용돈은 넉넉하지 않았다. 부지런함으로 삶을 일궈온 부모님을 보며 자연스럽게 절약해야 한다는 다짐이 자리 잡았다. 언제나 가성비가 높은 재료를 중심으로 장을 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이때 콩나물과 참치 통조림이 단골이었다. 시장 한편 콩나물 공장에서 키워낸 것이라 천 원 한 장만 내밀어도 비닐 가득이었다. 콩나물은 무침과 국은 물론 볶음까지 다양한 음식으로 변하는 팔방미인이었다. 


내 밥이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에 가장 친한 친구인 수정이를 만났다. 둥근 얼굴에 큰 눈, 여유가 있고 미소가 따뜻한 아이였다. 그 시절에는 아침 일찍 등교해야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게 있었다. 교실에선 일찍 오는 순서대로 원하는 곳에 앉았다. 나는 앞에서 세 번째 자리를 고수했고, 어느 날 그와 함께하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매일 일찍 학교에 갔고, 옆자리에 내 가방을 두었다. 다른 아이들이 오는 것을 거부한다는 일종의  영역 표시였다. 아이들은 그것을 알아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옆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친구는 지각 10분을 남겨놓고 헐레벌떡 등교한 다음 내 옆 자리에 앉았다. 하루 이틀 그렇게 매일 이어졌고 암묵적으로 공식적인 짝꿍이 되었다.     


1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네 자취방에 가고 싶어.”

친구의 말에 당황스러웠다. 별 것 없는 내 공간을 보여준다는 게 부끄러웠다. 한참을 망설였다. 건널목을 지나 답을 미룰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야 그리하자고 말하고 친구를 데려왔다. 방에는 책상과 의자, 이불, 3단짜리 서랍장, 라디오, 전기밥솥, 미니 냉장고가 전부였다. 친구는 별말 없이 방에 들어와 앉았다. 손님이 왔으니 무엇이라도 대접해야 하는데 집에 먹을 게 없었다. 


“너 밥 먹을래? 내가 반찬 만들어서 줄게.”

떨리고 긴장됐지만 달리 내놓을 게 없으니 밥을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안 된다. 친구가 배고프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희미해진 기억이다. 낡은 냉장고를 열어보니 두부와 달걀이 눈에 들어온다. 매일 아침 도시락 반찬을 만드는 내공이 반년 이상 쌓이다 보니 요리에 임기응변이 늘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것에 도전하기로 했다. 친구 앞에서 하려니 마음이 진정이 안 되고 왠지 쑥스럽다. 두부를 썰고 달걀 몇 개를 둥글고 오목한 그릇에 놓고 저은 다음 팬에 부었다. 실패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뒤에서 나를 바라보는 친구가 신경이 쓰였는지 온몸에 긴장이 흘렀다. 얼굴도 금세 붉어지고 뜨겁다.   

   

천천히 손에 힘을 빼고 달걀을 굴렸다. 함께 있는 두부가 으깨지지 않도록 손과 주걱이 함께 움직이는 동안 리듬을 잘 조절해야 한다. 그날따라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나를 도왔는지 썩 괜찮은 계란말이가 완성되었다. 완성된 그것을 보며 뿌듯했다.

“와 정말 대단하다. 맛있겠다. 나 이거 처음 먹는 거야.”

친구는 신기한 메뉴라며 감탄을 연발했다. 작은 밥상을 두고 마주 앉았다.  도시락을 싸고 남은 밥 조금을 공기에 담고 김치와 방금 한 그것을 상에 올렸다. 좀 심심한 것 같아 간장도 준비했다. 학교에서 가장 편한 친구지만 내 방 안에서 얼굴을 마주하니 어색했다. 친구는 밥그릇을 비울 때까지 폭풍 칭찬을 이어갔다. 감추고 싶던 내 삶의 모든 걸 보여준 듯했다. 친구는 매일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밥을 먹을 텐데 내가 차린 그 밥상이 어떻게 다가왔을지 두고두고 고민이 되었다. 나를 위한 밥이었는데, 친구가 오니 너무나 다른 기분이었다. 어린 내 삶을 위한 밥이었고 기꺼이 해야만 했다. 매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매점에서 사 먹는 것 역시 특별하지 않았다. 내 일로 굳어질수록  반찬 만드는 재미가 붙었다. 친구들의 호응이 큰 날에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우리 엄마가 만든 것보다 네 반찬이 더 맛있어.” “정말 네가 한 거야?” 아이들의 놀라움이 더해질 때 자신감도 쌓였다. 

    

엄마로 불리게 된 후에도 친구와 방학이 되면 만났다. 일 년에 한 번은 하룻밤을 꼬박 수다를 떨며 보냈다. 어느 겨울 부산에서 옛 추억을 꺼내놓았다. 

“내가 먹은 음식 중에 그때 우리 고등학교 때 네가 해준 두부 계란말이 있잖아. 정말 아직도 잊히지 않아.”

수정이는 그때를 재방송했고 웃음꽃이 피었다. 난 그때 친구와 작은 방에서 어색한 식사를 이어가며 음식이 단지 고픈 배를 채워주는 게 아님을 어렴풋이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열일곱에 내 부엌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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