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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an 26. 2022

첫 밥

 

부엌 아궁이에 장작과 작은 나뭇가지 몇 개를 집어넣었다. 바싹 마른 삼나무 잎을 불쏘시개 삼아 성냥개비를 들고 불을 붙였다. 어두컴컴했던 아궁이 안이 순식간에 환해지면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중앙에서 주변으로 불이 커지며 활활 타올랐다. 솥에는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솥에 처음으로 밥하던 날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부모님은 밭에 갔고 전기밥솥은 텅 비어 있다. 저녁이 되어 엄마가 돌아와서 밥을 하고 반찬을 해서 저녁을 차리기에는 너무 정신이 없을 게 분명했다. 

“해가 들어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솥에 밥해 놓아라.”

아침 일찍 과수원으로 향하던 엄마가 과제를 던져주고 갔다. 어찌나 떨렸는지 모른다. 엄마가 하는 걸 등 뒤에서 많이 봐 왔지만 직접 해보지 않았다. 혹시 새까맣게 타 버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불이 힘을 낼수록 솥 위에는 방울방울 수증기가 맺히기 시작하고 끓을 준비를 한다. 그러다 보글보글 소리가 강해지고 솥뚜껑이 넘치려는 순간이다. 뚜껑을 살짝 열어 두고 이때부터는 불을 적당히 다스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주걱을 들어 뜨거운 연기가 나는 솥을 휘휘 저으니 제법 쌀이 익어간다. 혹시나 밥이 타지 않을까 해서 나뭇가지 몇 개를 옆 아궁이로 대피시켰다. 은은한 불에 뜸 들이며 기다렸다. 삼십 여분을 달려서 밥을 완성했다.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혼자 불을 때고 밥이 끓는 소리가 날 때까지 기다림은 무서움과 두려움의 시간이었다. 하얀 쌀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는 순간 큰일을 해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내 생에 본격적인 요리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솥 바닥에는 제법 밥알이 다닥다닥 붙어있지만 걱정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다. 사람들이 오가는 큰 길가에 동네 경운기들이 하나둘 지난다. 이제 조금 있으면 엄마를 만날 시간이다. 내가 만든 밥을 보고 뭐라고 말할지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멀리서 우리 집 경운기 소리가 들린다. 신기하게도 비슷하면서도 우리 것이라는 확신이 설 때가 있는데 대부분 예감이 적중한다. 경운기가 긴 골목을 지나 창고에서 멈추고 부엌으로 엄마가 들어왔다.

“밥을 했구나. 정말 착하다.”

엄마의 짧은 한마디다. 얼마 동안 졸였던 마음에 온기가 돌았다. 솥을 열어 밥을 살핀 엄마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종일 힘들었을 엄마에게 작은 선물 같은 것이었을까 싶다.     


전업주부로 지낸 지 십여 년이 흘렀다. 동이 터오기 이른 시간부터 저녁이 되어가는 어스름이 질 무렵에는 언제나 내 공간으로 달려간다. 특별할 것 없는 부엌, 그곳에서 나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맛있는 식탁을 준비해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가득한 날도 있지만 대충 모양만 갖춘 밥상을 내놓을 때도 있다. 부엌은 나를 자유롭게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마음대로 펼쳐 보일 수 있다. 잠깐일지라도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매일 먹는 밥과 국이지만 다른 맛을 내고, 때로는 어제보다 훌륭하다. 부엌은 소박하지만 새로운 것들이 탄생하는 나만의 작업실이다.    


생에 첫 밥을 지었던 날은 가을이 막 문을 열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쌀을 씻는 일도 밥물을 맞추는 일에도 작은 떨림이 일었다. 작은 손으로 수돗가와 부엌을 오가며 열심이었던 건 엄마에 대한 마음이었다. 설령 잘되지 않더라도 흐뭇해했을 엄마의 얼굴을 그리며 용기를 내었다. 오랜만에 어릴 적 그을음이 새겨진 부엌에서 쪼그리고 앉아 타들어 가는 불을 보며 밥이 익어가는 소리를 들었던 나를 만났다. 다시 저녁을 위해 부엌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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