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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축구 Jul 10. 2015

와플의 도시에서 우박을 맞다

벨기에 브뤼셀, 스타드 루이-보두앵


브뤼셀, 첫인상


시작부터 난감했다. 


6월 초였는데 브뤼셀의 아침은 너무 추웠다. 시내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맡기고 바로 옷을 사러 갔다. 이른 아침이라 상점 문이 모두 닫혀 있던 까닭에 일단 맥도날드로 들어가 배를 채웠다. 오전 11시 정도에 다시 맥도날드 문을 나섰는데 이게 웬 걸, 춥지가 않다. 유럽 날씨가 변덕스럽다는 것은 이미 제네바에서 경험했는데도 좀처럼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브뤼셀의 첫인상이었다.


브라질 월드컵을 앞둔 브뤼셀은 축제 분위기였다. 최근 몇 년 사이 벨기에가 축구강국으로 거듭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거리에 줄서 있는 와플 가게도 저마다 월드컵을 입고 있었다. 거의 모든 신문이 1면에 월드컵, 혹은 벨기에 대표팀 소식을 담았다. 그들도 '붉은 악마'답게 붉은색 유니폼이나 티셔츠를 파는 상점이 많았다.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하긴, 동양의 이방인이 벨기에와 튀니지의 평가전을 보러 온 것만 봐도.


그랑 플라스로 가는 골목


축구 냄새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제네바에서 이미 극성인 알제리 축구 팬들을 만난 터라 좀 지쳐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랑 플라스(La Grand-Place)'는 나에게 최적의 휴식 장소였다. 


그랑 플라스는 브뤼셀의 상징이자 관광 중심지인 광장이다. 빅토르 위고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표현한 곳이기도 하다. 광장을 중심으로 골목이 뻗어 있다. 골목에는 와플과 초콜렛, 주류, 기념품 등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져 있다. 그 유명한 '오줌싸개 동상'도 근처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여행지에서 발자국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한 곳에 눌러 앉아 풍경을 관찰하고 사람 구경하는 걸 즐긴다. 그랑 플라스는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최고였다. 17세기에 지어진 아름다운 건물들이 사방에서 나를 품었다. 정교하게 묘사된 건물 장식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골목에선 행위 예술, 버스킹, 마술쇼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해가 지면 더 아름다웠다. 멋스러운 조명과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나는 꽤 행복했다. 혼자였음에도.


'오줌싸개 소년' 동상



와플의 도시


벨기에 브뤼셀은 와플의 도시다. 그랑 플라스 주변에도 수많은 와플 가게가 있다. 싸고 맛나다는데 내 입맛에는 '글쎄'였다. 아마 어떤 가게에서 먹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 먹는 비빔밥이 모두 괜찮은 것은 아닌 것처럼.


난 초콜렛이 더 좋았다. 고디바 초콜렛도 좋지만 좀 비싸다. 근처에서 이름 모를 초콜렛 몇 박스를 구입했다. 고디바와 견주어도 맛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저 달고 부드러웠다. 혼자 광장에 앉아 한 통을 다 먹고 또 먹었다. 살이 좀 쪘으려나. 


출장을 왔으니 일은 해야 했다. 브뤼셀 입성 둘째 날에 열리는 벨기에와 튀니지의 경기를 보기 위해 '스타드 루이-보두앵(Stade Roi-Baudouin)'으로 향했다. 이 경기장의 원래 이름은 헤이젤 스타디움이었다. 1985년 5월 29일 열린 리버풀과 유벤투스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서포터들의 다툼으로 39명이 사망한 장소로 유명하다. '헤이젤 참사'라 불리는 이 사건이 벌어진 후 10년이 지나 지금의 이름으로 재개장했다. 


브뤼셀 시내에서 트램을 타고 약 40분 정도를 달렸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5만명이 앉을 수 있는 경기장을 꽉 채울 기세였다. 다들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어 한국에 온 느낌마저 들었다. 경기장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더웠다.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살짝 땀이 날 정도였다. 오후 6시까지만 해도. 


붉은 물결 가득했던 보두앵 국왕 경기장


그런데 정확히 두 시간 후, 경기가 시작되자 난데 없이 우박이 내렸다. 비가 아니라 우박! 


처음 봤다. 경기장 지붕 위로 떨어지는 우박 소리가 무서웠다. 지붕이 뚫릴까봐 걱정될 정도였다. 멀리서 벨기에 수비수 얀 베르통헌이 우박을 집는 게 보였는데 딱 '페레로 로쉐' 초콜렛 크기였다. 옆에 앉은 벨기에 기자에게 물어보니 현지에서도 드문 일이란다.


결국 경기가 중단됐다. 우박은 30분 동안 내렸다. 경기는 약 40분 간 지연됐고, 내 퇴근 시간도 많이 늦어졌다. '하필 왜 오늘'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죽기 전에 다시 못볼 광경이라는 생각에 흐뭇하기도 했다. 


브뤼셀에서 우박 맞아본 사람?


벨기에 vs 튀니지 평가전 하이라이트 (1:30쯤 우박 등장)



글·사진 - 정다워 (풋볼리스트 기자)

교정 - 오늘의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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